포지티브 오르간의 역사

요약 포지티브 오르간(Positive organ)의 기원은 로마의 워터 오르간과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오르간으로 볼 수 있다. 로마의 오르간은 서구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이교도적인 이미지 때문에 중세 말에 가서야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5세기부터 정교한 악기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포지티브 오르간은 17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그 이후 사용이 뜸해졌으며 20세기 중반 오르간 개선 운동으로 재관심을 받았다. 현재는 전기로 동력을 공급하는 포지티브 오르간이 생산되며 애호가 그룹에서는 스스로 포지티브 오르간을 제작하기도 한다. 포지티브 오르간은 어린이를 위한 음악 교육용으로도 쓰인다.

1. 포지티브 오르간의 기원

포터티브 오르간과 마찬가지로 포지티브 오르간의 기원은 로마 시대에 사용했던 워터 오르간(water organ)으로 볼 수 있다. 워터 오르간은 히드라울루스(hydraulus)라고도 하며 물의 낙차를 이용하여 오르간 내부로 공기를 유입시켜 소리를 내는 오르간이다. 워터 오르간이 풀무를 손으로 조작하여 공기를 넣는 대신 물의 낙차를 이용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포지티브 오르간과 구조와 원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로마 시대의 워터 오르간 <출처: (CC BY-SA) Nacéra Benseddik@Wikimedia>

로마 시대에는 워터 오르간 이외에도 풀무를 이용한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오르간이 있었다. 이것은 원시적인 형태의 포지티브 오르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로마 시대의 화병에 그려진 포지티브 오르간이다.

로마 시대의 포지티브 오르간 <출처: Wikimedia>

테오도시우스 1세의 오벨리스크 부조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포지티브 오르간을 볼 수 있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오벨리스크에 묘사된 포지티브 오르간 <출처: (CC BY-SA) Dosseman@Wikimedia>

2. 중세의 포지티브 오르간

로마 제국의 영토 확장에 따라 로마에서 사용되던 오르간은 서방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바로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로마의 오르간이 검투사의 결투를 비롯한 이교도적이고 퇴폐적인 문화에 사용된 악기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교회에서는 중세 후기까지 오르간 사용을 금지했다.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포지티브 오르간에 대한 중세의 기록은 826년 독일의 경건왕 루드비히(Louis le Débonnaire)에 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루드비히 왕이 자신의 궁전에는 워터 오르간을 설치하고 아헨(Aachen)의 교회에는 공기압으로 작동하는 오르간(포지티브 오르간)을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10세기 이후에는 포지티브 오르간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록들을 찾을 수 있다. 아래는 14세기 오르간 연주자를 묘사한 그림이다. 오르간의 뒤편에는 두 개의 풀무를 조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연주자는 파이프와 건반으로 이루어진 포지티브 오르간을 연주한다. 지금의 건반에 비해 건반의 폭이 상당히 넓으며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같은 모양의 직사각형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포지티브 오르간 연주자를 묘사한 그림, 14세기 <출처: Wikimedia>

1361년 할버슈타트(Halberstadt)에서 제조된 오르간에는 반음계적으로 배열된 건반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반음계적으로 배열된 오르간은 14세기까지도 보편적인 형태는 아니었다.

3. 15~17세기의 포지티브 오르간

포지티브 오르간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5세기 이후 포지티브 오르간은 보다 정교한 악기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견고한 목재 케이스 안에 여러 부속 장치가 들어갔으며 현대의 건반처럼 반음계로 배열된 건반이 사용되었다.

아래는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의 겐트 제단화(Gent Altarpiece)이다.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되는 포지티브 오르간을 그렸으며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있는 반음계적 배열을 볼 수 있다.

얀 반 에이크의 겐트 제단화에 묘사된 포지티브 오르간 <출처: Wikimedia>

아래는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사용되던 포지티브 오르간을 복원한 것이다.

15세기 포지티브 오르간을 복원한 모델, 이탈리아 <출처: (CC BY-SA) Guido Magnano@Wikimedia>

이 시기 뛰어난 오르간 연주자에 대한 자료도 찾을 수 있다. 파울 호프하이머(Paul Hofhaimer, 1459~1537)는 오스트리아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그는 특히 장시간의 오르간 즉흥연주로 명성을 날렸으며 오르간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기술자로도 유명했다.

아래는 카트를 타고 가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연주자 외에 오르간의 뒤편에 달린 두 개의 큰 풀무를 조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14세기 그림에 묘사된 포지티브 오르간에 비해 풀무와 파이프, 건반, 케이스 등이 훨씬 정교하다.

포지티브 오르간을 연주하는 파울 호프하이머, 15세기 <출처: Wikimedia>

포지티브 오르간은 포터티브 오르간과 함께 가톨릭에서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세실리아(St. Cecilia)가 연주하는 대표적인 악기로 묘사되었다. 특히 17세기에는 성 세실리아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묘사한 상당수의 그림이 등장하였다. 아래의 그림도 그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와 지오반니 란프랑코(Giovanni_Lanfranco, 1582~1647)가 완성한 회화 《성 세실리아와 천사》(Saint Cecilia and an Angel)로 성 세실리아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포지티브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렸다.

《성 세실리아와 천사》에 묘사된 포지티브 오르간, 17세기 <출처: Wikimedia>

이러한 형태 이외에 몸체가 작은 체스트형 포지티브 오르간도 사용되었다. 아래는 17세기에 사용되던 체스트형 포지티브 오르간이다. 여러 개의 랭크(rank)가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수의 파이프가 장착되어 있다. 매뉴얼에는 49개의 건반이 달렸고 여섯 개의 스톱이 장착되어 있다. 직육면체 모양이며 보는 바와 같이 전면에 화려한 조각 장식이 있다.

17세기의 포지티브 오르간 <출처: Met Museum, Accession Number 1978.6>

제한된 공간 때문에 길이가 긴 파이프는 비스듬하게 배열되어 있다.

17세기 포지티브 오르간의 내부 <출처: Met Museum, Accession Number 1978.6>

17세기 이후 대형 오르간이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며 포지티브 오르간은 교회에서의 사용이 점차 뜸해졌다.

4. 20세기 이후의 포지티브 오르간

20세기 중반 오르간 개선 운동(Orgelbewegung)으로 포터티브 오르간과 포지티브 오르간 같은 소형 오르간이 재관심을 받았다. 포지티브 오르간은 소규모의 교회에서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에 생산되는 포지티브 오르간은 사람이 직접 풀무를 조작하지 않고 전기 모터의 동력을 통해 공기를 공급한다. 롤랜드사(Roland)에서는 디지털 포지티브 오르간 모델들을 생산하였다. 애호가 층은 자신의 오르간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카슨 큐맨(Carson Cooman)은 현대 생산되는 포지티브 오르간을 위한 레퍼토리들을 전문적으로 작곡한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2009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오르겔키즈(orgelkids)가 개발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포지티브 오르간의 구조를 공부하고 직접 이를 제작하는 활동을 통하여 아동들의 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2013년부터는 오르간 만들기(Do-organ)라는 키트를 제작하여 오르간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조립하여 포지티브 오르간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아래는 네덜란드의 한 초등학교에서 오르겔키즈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키트를 조립하며 포지티브 오르간을 제작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