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트럼펫

요약 키 트럼펫은 자연 배음열만 연주할 수 있었던 내추럴 트럼펫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음역 내 반음계를 모두 연주할 수 있었던 최초의 트럼펫이다. 음색은 내추럴 트럼펫보다 더 부드럽고 듣기 좋아, 종종 오보에나 클라리넷에 비견되기도 한다. 19세기 초 안톤 바이딩거가 연주하면서 독주 악기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나, 1840년 이후 밸브 트럼펫으로 대체되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다시 제작되었다. 키 트럼펫을 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하이든의 이 있다.

키 트럼펫

분류	관악기 > 금관악기
호른보스텔-작스 분류	공기울림악기(Aerophone, 氣鳴樂器)
주요 사용 시기	18세기 말~19세기 초
주요 사용 명칭	Keyed trumpet(영어), Klappentrompete(독일어)
주요 개발자	안톤 바이딩거(Anton Weidinger, 1766~1837)
관련 악기	바로크 트럼펫(Baroque trumpet), 스톱 트럼펫(Stop trumpet), 슬라이드 트럼펫(Slide trumpet)

1. 키 트럼펫

키 트럼펫(Keyed trumpet)은 의 관에 여러 개의 구멍(holes)을 내고 그 구멍을 키(keys)로 덮어, 트럼펫의 음역 내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도록 한 트럼펫이다. 18세기 후반에 내추럴 트럼펫으로 반음계를 연주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등장했다.

G조 키 트럼펫

키 트럼펫은1770년경 드레스덴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 키 트럼펫이 독주 악기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오스트리아의 트럼펫 연주자 안톤 바이딩거(Anton Weidinger, 1766~1837)가 연주하면서부터이다. 안톤 바이딩거는 1793년 키 트럼펫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798년 처음으로 공공 연주회에서 키 트럼펫을 연주했다. 그리고1800년에는 키 트럼펫을 완벽하게 개량하여 콘서트에서 연주했는데, 당시 연주했던 작품 중에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1796)이 포함되어 있었다. 1820년경, 키 트럼펫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군악대에도 편성되었으나, 1840년 이후 밸브 으로 대체되었다.

키 트럼펫은 대부분 E♭조이며, G조와 A♭조 악기도 있다. 관의 한 면에 네 개에서 여섯 개의 키가 배열되어 있어, 한 손으로 키를 조작하고 나머지 손으로는 악기를 지지한다. 전통적으로 트럼펫은 기병이 사용했던 악기이다. 기병들은 대개 왼손으로 말의 고삐를, 오른손으로 무기를 잡았는데, 군악대 트럼펫 연주자의 경우 무기 대신 트럼펫을 들었다. 다시 말해, 군악대 트럼펫 연주자는 왼손으로는 고삐를, 오른손으로 악기를 들었고, 말을 타지 않을 경우 왼손은 자유롭게 두었다. 키 트럼펫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제작한 악기들은 왼손으로,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악기들은 오른손으로 키를 조절한다.

말을 탄 경기병 왼손으로는 고삐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트럼펫을 들고 있다.

2. 키 트럼펫의 구조

키 트럼펫은 마우스피스(mouthpiece)와 관(tubing)과 벨(bell)로 이뤄져 있다. 관은 원통형이고, 벨 섹션은 원뿔형이다. 키 트럼펫의 관은 일반적으로 두 번 감겨 있다. 관의 한 면에 네 개에서 여섯 개의 키가 있는데, 각각의 구멍(holes), 혹은 사운드홀(sound holes)을 덮고 있다. 키를 열면 음정은 높아진다. 키가 다섯 개일 경우, 벨과 가장 가까운 키부터 각각 반음, 두 개의 반음, 세 개의 반음, 네 개의 반음, 다섯 개의 반음만큼 음정을 높인다.

키 트럼펫의 구조

키 트럼펫으로 음역 내 모든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었으나, 일부 음들은 음높이가 부정확했다. 각 배음열에서 음역이 높을수록, 구멍(혹은 사운드홀)이 벨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키를 조절했을 때 음정이 정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음역이 낮을수록, 구멍이 벨과 가까울수록, 키를 조절했을 때 더 견고하고 정확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또한 키 트럼펫에 크룩(crook)을 부착하여 악기의 조성을 바꾸기도 했는데, 그에 맞게 운지법도 달라졌다.

키가 네 개일 때 다섯 개의 배음열을 소리 낼 수 있고, 다섯 개의 배음열을 소리 낼 경우 음역 내 모든 반음계를 연주할 수 있었다. 키의 수가 늘어날수록 연주할 수 있는 배음열의 수도 늘어났는데, 키는 다섯 개인 경우가 가장 흔했고, 최대 일곱 개까지 부착되었다. 이후 밸브 시스템이 개발되어, 세 개의 밸브를 일곱 가지 방식으로 조합하여 일곱 개의 배음열을 연주할 수 있게 되자, 키 시스템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3. 키 트럼펫 레퍼토리

키 트럼펫이 등장했을 무렵, 음악에서 트럼펫의 역할은 바뀌고 있었다. 바로크 시대에 트럼펫은 예술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받아들여지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트럼펫의 높은 음역을 연주하는 클라리노 주법은 난해하지만 세련된 것으로 여겨져, 실력이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들은 음악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음악 양식이 변화하면서 트럼펫은 높은 음역에서 화려한 선율을 연주하기 보다,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을 채우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다시 말해 트럼펫 연주자의 역할이 독주자에서 오케스트라 투티 연주자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안톤 바이딩거는 유럽 전역에서 키 트럼펫을 연주하여 명성을 얻었는데, 이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트럼펫 연주자들은 그 정도의 테크닉을 익힐 기회가 없었고, 오케스트라에서 화음을 연주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추럴 트럼펫

또한 트럼펫 연주자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다. 이는 금관악기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밸브를 장착한 악기가 트럼펫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키 트럼펫이 등장했을 무렵 대부분의 트럼펫 연주자들은 내추럴 트럼펫의 음색이 키 트럼펫의 음색보다 더 월등하다고 생각했고, 당시에 작곡된 대부분의 트럼펫 파트는 내추럴 트럼펫으로도 연주가 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이 키 트럼펫을 외면했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 마디 44~54

이러한 이유로, 키 트럼펫의 레퍼토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의 <트럼펫 협주곡>(1796), 레오폴트 코젤루흐(Leopold Kozeluch, 1752~1818)의 (1798), 요제프 바이글(Joseph Weigl, 1766~1846)의 (1799),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의 <트럼펫 협주곡>(180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