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유래설

세균 유래설

[ Germ theory ]

모든 질병의 원인이 세균 감염이라는 이론. 세균 유래설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세균 원인설, 혹은 미생물 원인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현재도 많은 감염성 질병에 대해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이론이지만, 모든 질병이 미생물 감염에 의한 것은 아니므로, 절대적인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이 이론이 제기되었을 때는 기존의 질병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소위 "패러다임 이동(paradigm shift)"을 만드는 대단한 것이었다. 세균 원인설이 나오기 전까지는 질병이란 특정 개인 혹은 그 집단이나 선조의 죄에 대한 징벌로 믿는 종교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세균 원인설이 제기되던 당시는 천문학, 물리학, 화학 등 다방면에서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병의 원인에 대한 생각도 종교적인 믿음이 아닌,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조가 유행하였다.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가 점점 의심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세균 원인설이 제시된 것인데, 사실 세균 원인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독한 기운에 의해 질병이 발생한다는 독기 이론(Miasma theory) 같은 것도 제시되었었다. 이들은 지금 입장에서는 잘못되고 우습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모두 질병의 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원인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이론들이었다.

목차

용어의 의미

세균 원인설이라는 용어는 germ theory 혹은 germ theory of disease를 번역한 말이다. 즉, germ을 "세균"으로 번역한 것인데, germ은 사실 bacteria를 뜻하는 세균과 꼭 같은 용어는 아니다. Germ의 라틴어 어원인 "germen"은 새싹, 순, 씨, 종자 등을 의미하는 말로, 뭔가 새로 생겨나게 하거나 증식하게 하는 존재를 뜻한다("발아" 즉, 씨앗이나 포자로부터 개체가 생겨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germination을 생각하면 쉽다). Germ theory가 나오던 시기에는 지금과 같은 미생물 분류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고, 자연발생설생물속생설의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 조차도 음식이 부패할 때 그 속에서 미생물이 자연발생한다고 생각하였으니, 빠른 속도로 증식하는 미생물을 그냥 마구 생겨난다는 의미로 "germ"이라고 불렀고, 병균을 지칭할 때도 "germ"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임상분야에서는 병원균, 혹은 병균이라는 의미로 germ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미생물학에서 특정 미생물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germ을 꼭 bacteria를 의미하는 세균으로 번역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에는 세균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진균, 원생동물 등 세균이 아닌 미생물이 많기 때문에 정확히는 미생물 원인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세균이 감염성 질병의 가장 크고 위험한 원인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표현이 관용적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세균 원인설이라고 표현한다.

Animalcules (출처: GettyImagesKorea Alamy J7P9E7)

역사

세균 원인설의 초보적인 개념은 이미 11세기-14세기 경에 중동에서 먼저 생겨났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16세기경에 이탈리아로 넘어왔으나, 아직 미생물의 실체는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미생물의 발견은 1673년에서 1723년 사이 네덜란드 상인이자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안토니 판 레벤후크(Antonie van Leeuwenhoek)가 하나의 렌즈로 구성된 현미경을 통해 "미세동물(animalcule)"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레벤후크는 분변, 치아표면을 긁은 것, 빗물 등에서 관찰한 미세동물들의 형태를 그림으로 묘사하여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로버트 후크(Robert Hooke)에 의해 코르크에서 세포가 발견된 1665년 보다 약간 이후의 일이다. 비록 레벤후크는 자신이 발견한 "미세동물"과 질병사이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나, 그의 발견에 의해 사람의 몸에도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후 1760년대에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였던 마르쿠스 폰 플렌시즈(Marcus von Plenciz)에 의해 세균 원인설이 본격적으로 주장되었다. 그는 사람의 몸속에서 다른 종류의 생명체가 자람에 의해 병이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상 현장에 있던 여러 의사들에 의해 미생물 감염이 질병의 원인이 될 것이란 생각이 점점 생겨나게 되었는데, 역시 빈의 의사였던 이그나즈 세멜바이즈(Ignaz Semmelweis)는 1846에서 1848년 사이에 분만실에 들어가는 의료진의 손을 소독하게 하면 산모들에게서 발생하는 산욕 패혈증(puerperal sepsis)에 의한 사망이 크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는 소독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준 발견이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인 1848-1849년에 영국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였는데, 런던의 의사였던 존 스노우(John Snow)는 런던에 식수를 공급하던 여러 관정들 중 특정 관정 주변에서 콜레라가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관정을 폐쇄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콜레라 발생이 감소하여, 콜레라가 마시는 식수를 통해 전염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연구 사례는 이후 현대적 역학(epidemiology) 연구의 효시가 되었다.

사실 존 스노우의 발견 이전까지는 이 시기에 런던에서 자주 발생하였던 콜레라의 원인에 대한 주된 학설은 독기 이론(Miasma theory)이었다. 독기 이론은 유독한 기운(miasma)에 의해 병이 생긴다는 것으로, 당시 런던에는 생활 하수와 분뇨가 재대로 처리되지 못하여 악취가 진동하였는데, 이 역한 냄새가 유독한 기운으로 콜레라는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이 독기 이론이 지금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콜레라가 퍼지는 이유는 분변에 의해 오염된 물에 의한 것이므로, 분변과 지저분한 하수가 콜레라 발생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러한 독기 이론에 기반하여 악취를 풍기는 하수와 분변을 탬즈강 하류로 빼내기 위한 거대 하수도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설계, 지휘한 사람이 공학자인 조셉 바잘제트(Joseph Bazalgette)이다. 이 하수도 공사의 결과로 런던의 환경은 크게 개선되고, 콜레라와 같은 질병 발생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후 1860년대에 영국의 외과 의사였던 조셉 리스터(Joseph Lister)는 수술 기구를 소독하면 수술 중 감염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리스터는 세균 원인설을 믿고 강력히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와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에 의해 1860년대부터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강력한 생물학적 증거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파스퇴르와 독일의 코흐는 당시 새로운 분야였던 미생물학을 처음 개척해 나가던 라이벌이었는데, 코흐보다 20년 정도 먼저 태어난 파스퇴르가 초기 연구를 이끌었다. 사실 파스퇴르는 질병관련 미생물 연구뿐만 아니라 포도주 발효저온 살균법산업 미생물 방면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겨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나 세균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최초의 증거는 1876년에 코흐가 탄저병의 원인이 막대기 모양의 세균(지금은 Bacillus anthracis라고 알려짐)임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이 후 질병의 원인이 되는 진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등이 차례로 발견되어, 세균 원인설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흐의 가설(Koch’s postulation)

코흐는 어떤 질병의 원인이 특정 미생물임을 증명하기 위한 논리적 과정을 제안하였는데, 그것을 코흐 가설(Koch’s postulation)이라고 한다(그림 참조). 코흐 가설은 논리적으로 완전해 보이고, 많은 감염성 질병의 원인균을 밝히는데 매우 유용하였지만, 실제로는 예외나 실험적인 한계도 있다. 가장 큰 실험적인 한계는 병원균이 순수 배양되지 않는 경우이다. 현재의 인공 배지에서 배양이 불가능한 미생물도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코흐 가설은 병과 원인균이 1대1로 대응될 때는 명확하지만, 한가지 병원균이 여러 질병을 일으키거나, 여러 병원균이 같은 질병을 일으키거나, 혹은 여러 병원균이 함께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코흐의 가설에 대한 단계별 실험에 대한 설명 (출처: 강원대 최형태 교수님 제공)

"마법의 탄환(Magic bullet)"

세균 원인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자, 당연히 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제거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생물을 소독할 수 있는 많은 소독제들이 인체에도 매우 유독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에게 직접 투여할 수가 없었다. 독일의 미생물학자였던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는 인체에는 해가 없이 미생물만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는 물질을 상상하여 이를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항생제의 기본 개념이 된 것이다. 그는 당시에 알려졌던 수백 개의 화학물질들을 테스트하여 마법의 탄환을 찾고자 하였으며, 결국 1910년에 salvarsan이라는 비소 화합물을 발견하였다. 이 물질이 매독에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매독으로부터의 구원(salvation)이라는 뜻으로 salvarsan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 후 수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페니실린을 비롯한 많은 항생제들이 발견되어 인류의 "마법의 탄환"으로 쓰이게 되었다.

관련용어

루이 파스퇴르, 파울 에를리히, 생물속생설, 저온살균법, 코흐의 가설, 산업미생물, 로버트 후크, 자연발생설, 순수배양, 원생동물, 미생물학, 바이러스, 미생물, 현미경, 항생제, 탄저병, 패혈증, 병원균, 발효, 진균, 소독, 세균, 부패, 포자, 탄저, 역학, 로버트 코흐

집필

이준희/부산대학교

감수

이진원/한양대학교

참고문헌

  1. 미생물학 1st edition, 한국 미생물학회 저, 범문에듀케이션
  2. Microbiology, an introduction 12th edition, Gerard J. Tortora, Berdell R. Funke, Christine L. Case. Pea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