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후크

로버트 후크

[ Robert Hooke ]

로버트 후크(Robert Hooke FRS, 1635년 7월 28일~1703년 3월 3일)는 대표적인 영국 과학자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er)·박물학·건축학·화학·물리학·천문학 분야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최초로 세포(cell, 細胞)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현대 현미경학의 기반으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출판하였으며, 시계의 유사(balance spring, 遊絲)·용수철 등의 탄성체 복원력과 변형력의 물리적 비례관계를 수학적 용수철상수로 정리하여 후크의 법칙(Hooke’s law)으로 정의하였다.

로버트 후크 (출처: )

목차

생애

출생·유년기 및 성장기

로버트 후크는 17세기 유럽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년 2월 15일 ~ 1642년 1월 8일)가 타계하기 7년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그레고리력 1643년 1월 4일 ~ 1727년 3월 31일, 율리우스력 1642년 12월 25일 ~ 1727년 3월 20일)의 출생 7년 전인 1635년 7월 18일 영국 와이트섬(Isle of Wight) 프레시워터(freshwater)에서 목사인 존 후크(John Hooke)와 어머니인 세실리 가일(Cecily Gyles) 사이의 2남2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로버트 후크는 기계역학적 특성과 응용에 관심과 재능이 많았고 그림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으나 병약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유년시절에 아버지가 자살한 이후 런던으로 유학하여 왕궁 화가였던 피터 랠리(Sir Peter Lely) 및 사무엘 카우퍼(Samuel Cowper)에게 차례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수학하기도 하였으나 병약한 체질적 문제로 포기하고 오래 머물지 못했다. 같은 해에 로버트 후크는 웨스트민스터공립학교(Westminster School)의 교장이자 영국성공회 목사인 리처드 버스비(Reverend doctor Richard Busby) 박사에 의해 이 학교에 입학하고 그의 밑에서 수학하였다. 로버트 후크는 이곳에서 어학과 수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그의 생애에 중요한 분야인 기계역학(mechanics)에 대해 본격적으로 접하며 공부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성년기·옥스포드

웨스트민스터공립학교에서 학문적 기초를 다진 로버트 후크는 이후 옥스퍼드대학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Wadham College, Oxford)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졸업하였으나 입학과 졸업년도는 불분명하다. 그의 대학 졸업연대로 추측되는 1653년을 기점으로 그의 일생은 이 대학에서의 크리스토퍼 렌(Sir Christopher Wren)과 같은 친구와 당시의 저명한 과학자들과의 인연에서 출발한 중요한 연구와 실험에 대한 수행을 통해 후일 업적의 기반이 되었다. 졸업 전후의 삶은 동대학에서 의사인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의 화학조교로 고용되어 일했으며, 1663년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 자연철학자·화학자·물리학자인 로버트 보일(Robert Boyle)의 실험에 참여하고 연소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진공 펌프(에어 펌프)의 기계적 고안으로 보일의 법칙(Boyle's law)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왕립협회·중년기와 말년기

유년시절부터 기계 제작과 원리에 큰 열정과 재능을 보였던 로버트 후크는 정확한 시간을 역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진자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시계와 시계의 유사(balance spring, 遊絲)를 이용한 회중시계를 고안하였다. 또한 최초로 기상학 분야에 공기의 속력, 바람의 속력, 바람의 세기에 관련된 기계적 측정기기로 판 풍속계를 제작하였다. 1660년 런던 왕립협회(Royal Society)가 설립된 후 1662년 로버트 보일의 강력한 추천으로 왕립협회의 실험 관리자(curator)를 맡아 일했고, 1663년 왕립 학회 회원(Fellow of Royal Society)을 거쳐 1665년 왕립학회 관리직(Curator by Office)에 종신직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실험을 수행하게 되는데, 중력과 관련된 물체의 낙하, 사람의 체중 측정, 기압 측정, 진자 실험 등이 그 예이다. 1665년부터 1703년까지 그레샴 대학(Gresham University in London)의 기하학 교수로 재직하며 이곳에서 평생을 연구에 매진하였다. 17세기 유럽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턴 등에 의한 고전역학의 확립과 그에 따른 자연상·세계상의 변혁의 시대였던 과학 혁명기에 과학적 이론과 실험에서 크게 공헌한 화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인 로버트 후크는 이 시기에 현미경을 만들어 코르크를 관찰하면서 현대 현미경학의 기반으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를 출판하였으며 세포(cell, 細胞)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현미경을 사용하여 화석을 분석 및 관찰하고 초기 진화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1674년에 연주시차와 관련해서 지구의 운동을 분석하여 인력에 관한 역제곱 법칙(inverse square law, 逆二乘法則)을 연구하였다. 이는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에 대한 수리(數理)적 전개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축학에 있어서도 관여하였는데,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을 위한 책임자로 뛰어난 행정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빛의 굴절 현상을 관찰하여 빛의 파동성 이론을 지지하였고, 그레고리안식(Gregorian) 망원경을 제작하여 화성과 목성, 금성의 자전을 관찰하기도 하였으며, 뉴턴의 고리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기가 다른 물질에 비해 구성 요소 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의 소립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또한 로버트 후크는 중력의 작용이 역제곱 법칙을 따를 것이라 추론하였는데, 이는 후에 아이작 뉴턴에 의해 중력의 법칙으로 증명되었다. 1678년에는 탄성체와 응력이 비례한다는 내용의 훅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703년 3월 3일 그레샴 대학에서 사망하고 St. Helen's Bishopsgate에 매장되지만 실제 묘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연구분야와 업적

로버트 후크의 생애는 1696년 그의 자서전을 통해 일부 알려져 있지만, 일생 동안의 정확한 행적에 대한 연대는 부정확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다양한 분야의 연구업적은 현재까지 잘 알려져 있으며 많은 과학자들의 귀감이 될 정도로 방대한데, 거의 모든 자신의 시간을 실용적 학문을 연구하고 이에 필요한 기구를 제작하며 보냈다고 보여진다. 특히 선구적인 실험적·학문적 관점에서의 과감하고 획기적인 가설에 의한 기기의 제작과 측정방법 구축은 근세와 현대 과학 발달에 매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다.

현미경학

1665년 출판된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 or some physiological descriptions of minute bodies made by magnifying glasses : with observations and inquiries thereupon)에서는 현미경과 망원경을 생물체의 관찰을 집대성함으로써 현대 현미경학의 기초를 이루었다. 생물 개체의 단위를 표현하기 위한 용어로 세포라는 명명을 최초로 하였기에 현재 많은 사람들이 로버트 후크를 다른 과학 분야보다 생물학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현미경을 개량하여 보다 미세하고 정교한 관찰을 할 수 있도록 현재의 단순한 광학현미경과 유사한 구조로 접안렌즈와 경통 부위를 획기적으로 개량함으로써, 곰팡이를 비롯한 미생물과 작은 곤충, 식물세포와 같은 생명 유기체와 무생물·천체에 이르기까지 60가지 주제의 다양한 사물을 관찰한 결과를 그림으로 묘사하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마이크로그라피아는 단순한 현미경학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로버트 후크 연구의 많은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저서이자 이를 통한 관련 분야에 과학적 영감을 심어준 중요한 기록이다. 예를 들면 기체에 대한 보일의 실험과 관련하여 연소를 일으키는 원인물질인 산소의 존재를 제시하기도 하였고 이는 마이크로그라피아의 뒷부분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로버트 후크의 현미경 (출처: )

물리학

기계역학의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정의한 후크의 법칙은 용수철과 같은 탄성력(elasticity)을 지닌 물체가 외력에 의한 길이 변화와 같은 물리적 변화시 본래의 길이로의 복원력과의 물리역학적 본질을 정의한 것이다. 로버트 후크는 탄성력과 복원력의 고체역학에서 탄성체의 특성을 정리하였는데 응력의 정도가 탄성체에 의해 정해지는 비례 한도를 초과하지 않을 때 응력과 그에 의해 생기는 변형률 사이의 비례는 탄성체에 의해 정해지는 비례상수를 용수철 상수로 제시하였다.

광학(optics)과 천문학

로버트 후크는 현미경의 고안 및 개량과 함께 천체 관측의 정밀성을 위해 광학에 기초한 망원경을 제작하여 지구 바깥의 행성을 관찰하고 지구와 행성간의 거리를 계산하여 제시하였다. 그의 마이크로그라피아에는 달 표면의 충돌 분화구(impact crater)에 대한 관찰도 기록되어 있다. 로버트 후크는 태양과 별의 거리를 항성간의 시차를 측정하여 지구 밖의 항성과의 거리를 제시하였고 플레이아데스 성운(Pleiades star cluster)을 관찰하였다. 1664년에는 두 천체가 공통의 질량 중심을 기준으로 만유인력에 의해 일정한 공전 주기를 가지는 쌍성계(binary star, 雙星系) 중 하나인 감마 아리에티스(Gamma Arietis)를 망원경으로 관찰하였다. 1663년 그레고리가 원리를 고안하고 1668년 뉴턴이 완성한 반사망원경(reflecting telescope, 反射望遠鏡)은 대물렌즈 대신 오목 거울로 물체로부터 오는 빛의 반사를 접안렌즈로 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천체를 관측하게 되는데, 로버트 후크는 이러한 그레고리안식 망원경을 개량하여 화성과 목성의 공전과 토성의 고리를 관찰하였고 1665년에는 목성의 대적점(The great red spot of Jupitar)을 확인하였고 다음해에 지오반니 카시니(Giovanni Cassini)에 의해 다시 대적점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중요한 다른 관찰로, 로버트 후크는 1662년 중력을 측정하는 기구를 고안하였고 1666년에는 진자(추)를 이용하여 중력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1674년부터 모든 물체에 대한 중력 작용을 궤도와 인력에 의한 운동을 연구하여 1680년대 초반 역제곱 법칙을 주장하였으나, 분석방법과 측정오차 등으로 인하여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1687년 아이작 뉴턴의 저서로 뉴턴의 물리학과 역학을 소개한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중력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 발표되기 전에 로버트 후크의 역제곱 법칙은 뉴턴의 물리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로버트 후크는 뉴턴에게 자신의 중력에 대한 이론을 전파하였다.

화학

앞에서 그의 옥스퍼드 대학교 졸업 전후에 로버트 후크는 당시의 저명한 과학자였던 로버트 보일의 유능한 실험조교였고, 로버트 보일의 이름을 따서 지은 물리 법칙으로서 기체의 양과 온도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 기체의 부피와 압력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연소에 관한 실험으로 새로운 이론을 주장하여 산화 과정에서 산소의 작용, 산화나 호흡 간의 정량적인 유사점 등에 의해 연소와 호흡에 필요한 요소인 산소의 발견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게 되는데 후일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와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로랑 드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는 프랑스의 화학자 등에 의해 산소의 존재를 입증하게 되었다.

기상학

기록에 의하면 로버트 후크는 최초의 기상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왕립협회에서 다양한 선구적 실험을 수행하면서 뛰어난 기계 제작 능력을 발휘하여 압력계, 풍속계, 개량된 온도계, 습도계 등을 고안하고 시연하였다.

건축학

로버트 후크의 천재성은 1666년 런던 대화재(the Great Fire in London)에 대한 도시재건의 수장으로 활동하면서 건축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크리스토퍼 렌의 도움과 협조로 많은 건축물을 디자인하거나 건축에 참여하였는데, 대표적인 건축물로 그는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at Greenwich), 몬태규 하우스(Montagu House in Bloomsbury), 소아병원인 베들렘 왕립 병원(Bethlem Royal Hospital, St Mary Bethlehem, Bethlehem Hospital, Bedlam), 왕립 외과 협회(The Royal College of Physicians), 워릭셔의 래글리 홀(Ragley Hall in Warwickshire), 윌트셔의 램스베리 마노어(Ramsbury Manor in Wiltshire), 밀톤 케인즈의 생 마리-마들렌 성당(Church of St. Mary Magdalene), 페피스 도서관(Pepys Library), 웨스터민스터 공립학교의 리처드 버스비 기념 건축물인 버킹엄셔(Buckinghamshire)의 윌렌 처치(Willen Church)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많은 건축물을 고안해 내기도 하였다.

주요 저서

로버트 후크의 대표적인 저서인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이며, 1667년 혜성에 관한 코메타(Cometa), 1674년에는 낮시간의 항성 운동에 관한 최초의 관찰저서인 ‘지구의 운동을 입증하려는 시도(An Attempt to Prove the Motion of the Earth by Observations)’, ‘태양관측 망권경에 대한 기술(A Description of Helioscopes)’ 등이 알려져 있다.

로버트 후크가 저술한 마이크로그라피아의 겉표지 (출처: )

관련 용어

현미경학,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 후크의 법칙(Hooke’s law),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피터 랠리(Sir Peter Lely), 사무엘 카우퍼(Samuel Cowper), 리처드 버스비(Reverend doctor Richard Busby), 크리스토퍼 렌(Sir Christopher Wren), 토마스 윌리스(Thomas Willis),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보일의 법칙(Boyle's law), 역제곱 법칙(inverse square law), 그레고리안식(Gregorian) 망원경, 중력의 법칙, 코메타(Cometa), An Attempt to Prove the Motion of the Earth by Observations, A Description of Helioscopes, 미생물, 현미경, 진화

집필

곽민규/을지대학교

감수

정원희/중앙대학교

참고문헌

  1. Morgan, J. 1930. ROBERT HOOKE (1635-1703). Science Progress in the Twentieth Century (1919-1933), 25(98), 282-294. Retrieved f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