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코흐

로버트 코흐

[ Robert Koch ]

하인리히 헤르만 로버트 코흐(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1910)는 독일의 의사이자 미생물학자로 현대 세균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 세균이며, 세균의 감염을 통해 질병이 확산될 수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또한 여러 미생물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각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균만을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배양하는 순수배양(pure culture) 방법의 기초를 설립하였다. 실험을 통해 탄저균결핵균, 콜레라균전염병의 원인균을 발견하였으며, 많은 연구 중 특히 결핵균의 발견으로 인류의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Robert Heinrich Hermann Koch (출처: )

목차

생애

1843년 12월 11일 독일의 하노버 클라우스탈(Clausthal, Hannover, Germany)에서 광산 기술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코흐는 다섯 살 때 신문을 보고 스스로 글을 깨우치는 등 어릴 때부터 뛰어난 지적 능력과 천재성을 보였다. 코흐는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우수성을 보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62년 괴팅겐 대학(University of Göttingen)에 입학하여 자연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나 3학기를 마친 후 의사가 되고자 의학으로 전공을 변경하였다. 1840년 의과대학 재학시절 그는 전염병은 살아있는 기생유기체에 의해 발생한다는 논문을 낸 해부학자 프리드리히 헨레(Friedrich Gustav Jacob Henle)의 연구에 참여하면서 그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1866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6개월 동안 화학을 공부하였는데 이때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의 영향도 받게 된다

그는 1866년 졸업 이후 함부르크 종합병원에서 보조 의사 생활을 마친 후 랑겐하겐 병원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일반의로 진료하였고, 1870년부터 2년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에 군의관으로 참여하였기도 하였다. 그 후 1872년부터 1880년까지 볼슈타인(Wollstein) 지역의 공의로 근무하였는데, 여유 있던 시골의사로서의 생활은 그를 과학자로서 획기적인 연구로 이끌어 탄저병을 비롯한 많은 전염병 연구에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1880년부터 1885년까지 왕실보건과(Imperial Department of Health)의 정부 고문역을 맡기도 하였는데 이때 Löeffler, Gaffky 그리고 다른 조교들과 함께 연구를 하게 되었고 볼슈타인에서 하던 세균학적 방법을 개선하여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게 되고 이때 코흐의 4원칙을 발표하였는데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미생물학의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당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던 결핵에 대한 연구도 시작하게 된다. 그는 혈액에서 세균배양 기술을 개발하였고, 1882년에는 결핵을 일으키는 바실러스(Bacillus) 간균(rod)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였다.

1883년 독일 콜레라위원회 대표로 콜레라가 만연한 이집트를 방문해 콜레라를 일으키는 비브리오(Vibrio) 균을 발견하였는데, 이집트에서 콜레라가 잠잠해지자 순수배양액을 독일로 가져오고, 그 후 인도에서 지속적으로 콜레라를 연구하여 콜레라의 전염 경로와 그의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콜레라의 전염을 통제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이것은 1893년 드레스덴(Dresden)에서 의해 승인 된 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1885년 베를린대학(Berlin University)의 위생학 교수가 되었고 새로 설립된 위생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1891년 베를린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프로이센(Prussian) 감염증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결핵균 연구로 돌아가 결핵 치료제인 투베르쿨린(Tuberkulin)을 개발하였다. 결핵 치료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매우 높았으나 치료제 효과가 기대한 만큼 미치지 못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고 코흐의 명성은 잠시 주춤한다. 그 후 1896년 코흐는 새로운 투베르쿨린을 발표했으나 이 역시 치료제로서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결핵 진단제로서의 가치가 높아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1896년 코흐는 우역(cattle plague)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남아프리카로 갔는데 원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감염된 동물의 담낭에서 채취한 담즙을 건강한 동물에 주입함으로써 전염을 막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 후 인디아와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 흑수열 소와 말의 수라병에 대해 연구하고 1898년 이 병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독일에 돌아온 후 이탈리아와 열대지방으로 가서 말라리아에 대한 Ronald Ross 경의 연구를 검증하고 다양한 말라리아에 대한 병인학과 퀴니에(quinine)를 이용한 치료에 관한 연구를 한다.

1901년 코흐는 런던에서 열린 국제결핵의학회에서 소와 인간의 결핵을 유발하는 세균이 같지 않다는 결론을 발표하는데 이로 인해 큰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코흐의 견해가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발진티푸스의 경우에도 원인이 물을 마셔서 걸리는 것보다 사람을 통한 전염이 더 많이 이루어진다는 결과를 도출하면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도 했다,

1904년 코흐는 소의 이스트코스트열병(East Coast of Fever)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이동하여 이 병뿐만 아니라 바베시아(Babesia) 그리고 트리파노라마의 병원체 종 그리고 진드기로 전염되는 스피로헤타병에 대한 중요한 발견을 이뤄냈다. 아프리카 재귀열의 병원체와 전염 경로를 밝히고 체체파리(Tsetse fly)에 의해 매개되는 수면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다양한 전염병에 대한 획기적인 연구로 코흐는 많은 상과 메달을 받았는데, 결핵균을 발견한 공로로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1906년에는 프로이센 공로훈장, 1908년에는 로버트 코흐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1906년 중앙아프리카로 돌아가 인간의 트리파노소마증을 연구했고 이 병에 대한 아톡실의 효과를 입증하였다.

그 이후로도 코흐의 혈청학과 세균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었는데, 전염병을 일으키는 수많은 세균의 발견과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코흐의 업적이 현대 미생물학과 의학에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수많은 업적을 남긴 코흐는 1910년 5월 27일 독일의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탄저균의 발견과 세균의 질병 원인 이론

코흐가 공의로 진료를 보던 불스타인 지역의 농장 동물들 사이에 탄저병이 유행하게 되는데, 탄저병은 가축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 질병으로 당시 인간의 피부와 호흡기, 소화기 등에 감염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과학적인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지만 코흐는 탄저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탄저병 병원균은 1850년 레에(Pierre Rayer), 다벤느(Casimir-Joseph davaine)에 의해 발견되었고, 폴렌더(Aloys Pollender)에 의해 1855년 논문으로 출판되었지만 정확한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코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균이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코흐는 염색(stain)과 현미경 관찰을 통해 특정한 세균 즉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이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피 속에 항상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코흐는 탄저병에 걸린 동물에게서 늘 동일한 세균이 발견된다는 점이 질병과 세균의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보다 정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 탄저균과 실험용 쥐를 이용하여 감염 질병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이후 거의 모든 전염병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첫 번째로 코흐는 탄저병을 앓고 있는 동물의 비장에서 채취한 혈액을 건강한 쥐에 주입하였고 이 때 빠른 시간 내에 탄저병이 발병하여 쥐가 죽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리고 건강한 동물의 비장에서 채취한 혈액을 쥐에게 주입했을 때는 건강함을 확인하였다. 두 번째로 탄저병에 감염된 쥐로부터 얻은 혈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탄저병의 원인균으로 예상되는 세균을 분리해 고체배지에 배양하였다. 이 배양체를 연구하고 사진촬영함으로써 세균의 증식을 기록하였고, 배양조건이 세균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때 적대적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세균이 그 내부에서 둥근 포자를 만들어내고, 우호적인 환경이 되었을 때는 포자가 다시 세균으로 변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이 순수배양체에서 자란 예상 병원균 집락(콜로니, colony)을 건강한 쥐에게 주사하자 건강한 쥐가 탄저병에 걸렸으며 그 쥐의 혈액에서도 같은 세균이 발견되었다. 즉 탄저균이 숙주 외부의 환경에서 필요한 영양 요구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으며 또한 실험실에서 수 차례의 계대배양과 다른 숙주(host)로의 이동을 거친 후 세균이 건강한 동물에게 접종된 경우에도 여전히 그 질병을 일으킬 수 있음을 밝혀내었다.

탄저병에 걸린 동물에게서 분리된 탄저균은 숙주의 혈액 속에서 간상체를 형성하는데, 관찰된 간상체는 실 모양으로 늘어지거나, 작고 둥근 모양으로 떨어져 나와 포자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이후 연구를 통해 탄저균은 환경 변화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포자를 형성하는 경우 주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 극한 환경에 노출되어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어 감염과 확산의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탄저병의 원인균인 탄저균(Bacillus anthracis) (출처: )

코흐의 원칙

코흐는 일련의 연구를 토대로 감염 질환에서의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연결하기 위한 코흐의 원칙(Koch’s postulate)으로 알려진 기준을 마련하였다. 그는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을 격리하는 데 있어서 순수배양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네 가지 가정을 이용한 방법을 통해 질병을 유발하는 세균을 분리하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1. 의심되는 병원균은 질병에 걸린 모든 개체에 존재해야 하며 건강한 동물에게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2. 의심되는 병원균은 순수배양을 통해 독립 배양이 가능해야 한다
  3. 의심되는 병원균의 순수배양에서 얻어진 세포를 건강한 동물에 감염시킨 경우 같은 질병을 유발해야 한다.
  4. 의심되는 병원균은 감염된 개체에서 재분리되어 처음에 분리한 균과 같은 균임이 확인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침으로 삼아 이후로 수많은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발견하였으며 이러한 발견은 많은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성공적인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코흐의 원칙 (제작: 전체옥/중앙대)

세균의 순수 배양

코흐는 의심되는 병원균을 다른 미생물과 분리하고 독립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순수배양(pure culture) 방법을 개발하였다.

처음에는 세균을 배양하기 위해 감자 조각 위에 접종을 하거나, 감자 조각에 젤라틴을 섞은 고체 배지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후 감자와 젤라틴을 섞은 배지의 경우 대부분의 병원균을 배양하는 37'C에서 젤라틴이 물러지는 것을 발견하고 병원균들을 키우는 최적의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한천을 이용하여 고체배지를 제작하여 37'C에서도 안정적이고 재현성 있는 배지를 개발하게 된다. 고체 배지에서 균을 배양하는 경우 배지 표면에서 독특한 모양과 색을 가진 집락이라 불리는 대량의 세균 군집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했으며 각 집단이 한 가지의 단일 세균으로부터 생겨났다고 추정하였다. 코흐는 각각의 집락이 똑같은 세포군, 즉 순수한 하나의 동일 세균으로부터 유래함을 주장하면서 고체 배지를 이용한 경우 순수한 배양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처드 페트리(Richard Petri)는 코흐의 또 다른 동료로서 1887년 투명하고 납작한 플라스틱 접시를 개발하였는데 이는 페트리 접시(Petri dish)로 불리며 현대까지도 순수배양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코흐가 발명한 순수 배양 방법은 미생물 분류하는 영역에 많은 기여를 했다. 색과 크기가 다른 집락을 비교하여 관찰한 후, 각기 다른 집락의 세균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였을 때 전형적으로 세균의 크기와 모양이 달랐고 종종 영양 요구성 또한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코흐는 이러한 차이가 식물이나 동물 종과 같은 거대 생물의 분류를 위한 분류학적 지표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각기 다른 종류의 세균들은 적합한 분류학적 기준을 통해 분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핵 연구

코흐의 가장 큰 과학적 성취로 여겨지는 것은 결핵의 원인이 되는 병원균을 발견한 것에 있다. 1880년대 베를린의 보건부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였던 코흐는 당시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하고 있던 결핵 연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코흐가 결핵의 원인 규명에 착수했을 당시(1881), 도시 전체적으로 결핵 문제가 심각해, 보고된 사망자의 7분의 1이 결핵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당시 결핵이 전염성 질병이라는 의심이 있었으나, 병이 있는 조직 등을 배양하였을 때 의심되는 병원체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한 전염성에도 불구하고 유전적 질병으로 널리 인식되어 왔었다. 코흐는 탄저병에 대한 성공적인 연구 이후 같은 원리를 통해 기니피그(Guinea pig)를 사용하여 결핵균 실험이 위의 4가지 코흐의 원칙을 모두 만족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1882년 결핵의 원인균은 느린 속도로 자라는 Mycobacterium tuberculosis라고 발표하였다. 결핵의 원인균을 밝혀낸 코흐는 의학 분야에서의 기여를 인정받아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결핵치료제인 투베르쿨린을 개발해 내지만, 당시에는 성공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지 못했으며, 현재는 결핵 치료약이 아닌 진단에 사용하고 있다.

콜레라 및 기타 연구

1883년 독일의 콜레라 위원회의 대표로 당시 콜레라가 만연하던 이집트를 방문한 코흐는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콜레라의 원인균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였으나 이집트의 콜레라가 진정되면서 독일로 돌아왔고 이후 인디아로 옮겨 연구를 지속한 결과 1884년 원인균인 Vibrio cholerae를 밝혀냈다. 1904년에는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이동하여 아프리카 재귀열의 병원체와 전염 경로를 밝혀냈으며 이후로도 우역, 이집트 눈병, 말라리아, 수면병 등에 대한 연구 또한 진행하였다. 또한 말라리아 연구 원주민은 혈액 내에 기생충이 있음에도 말라리아 발작이 경미하고 무증상이지만 이주자들의 경우 감염 즉시 말라리아 발작이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후천성 면역 현상을 관찰하기도 하였다.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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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전체옥/중앙대학교

감수

이충호/동국대학교

참고문헌

  1. Koch. Random House 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
  2. Madigan, M.T., Martinko, J.M., Bender, K.S., Buckley, D.H., and Stahl, D.A. 2016. Brock Biology of Microorganisms, 14th edn, pp. 16-18. Pearson Education Ltd. Boston, Massachusetts.
  3. Lerner, K.L. and Lerne, B.W. 2013. World of Microbiology and Immunology. The Gale Group.
  4. Kaufmann, S.H. and Schaible, U.E. 2005. 100th anniversary of Robert Koch's Nobel Prize for the discovery of the tubercle bacillus. Trends Microbiol. 13, 469-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