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

[ Louis Pasteur ]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년 12월 27일~1895년 9월 28일)는 프랑스의 생화학자/ 미생물학자이며,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파스퇴르의 과학적 업적은 전체 과학사와 산업사에서 가장 다양하고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는 미생물발효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광견병·탄저병·닭콜레라 등에 대한 백신을 처음으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질병에서 구했고, 저온살균법을 알아내어 프랑스의 맥주업·포도주업·양잠업을 구했고, 후속 연구를 위해 파스퇴르연구소를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게 하였다.

파스퇴르는 19세기의 과학적 연구 방법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다. 실험실에서 나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질병의 인자(因子)를 연구함으로써 질병을 일으키는 인자들을 찾아냈을 뿐만 아니라, 치료법까지도 제시하여 주어진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전통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천부적으로 큰 호기심과 뛰어난 관찰력을 부여받은 재능 있는 실험가였던 파스퇴르는 커다란 열정으로 평생을 과학과 의학, 농학, 산업에 헌신했다. 그는 즉각적이고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방어했으며, 반대자들에 대해서는 종종 매우 거친 글과 말로써 논박했다. 그가 의학자 집단과 언론으로부터 가장 강한 반대를 받았던 것은 주로 자연발생과 광견병에 대한 연구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거짓을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져 현재 수준의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험중인 루이 파스퇴르(출처: Gettyimages GRANC0030871 H)

실험중인 루이 파스퇴르(출처: GettyImagesKorea SPL C037 2921)

목차

자연발생설 비판

1854년 파스퇴르는 한 기업가로부터 곡물과 사탕수수에서 술을 만드는 것에 관한 질문을 받은 다음부터 발효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그는 일정량의 효모가 소비하는 포도당의 양이 공기 중에서 배양할 경우에 비해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배양할 경우에 훨씬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는 나중에 파스퇴르 효과라고 알려진 것으로, 산소 없는 인공배지에서도 효모가 자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57년 그는 발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발효는 작은 미생물이 활동한 결과이며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꼭 필요한 미생물이 없거나 적절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하였다. 이 발표 전에 나온 발효에 관한 이론은 대체적으로 정확한 실험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었다. 즉, 그는 버터나 맥주로부터 추출된 미생물을 우유에 넣으면 우유의 맛이 시게 변하지만 미생물이 없으면 신선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였다. 발효에 대한 연구의 논리적인 귀결로 그는 자연발생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과학자들을 대립되는 두 진영으로 나뉘게 하였던 문제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들이 자연 상태의 공기에 항상 존재하는지, 또는 저절로 발생되는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그것이다. 

파스퇴르는 1861년의 저작 《자연발생설 비판》에서 발효미생물의 성장 때문이란 사실을 보였고, 동시에 영양분을 포함하는 고깃국물에서 미생물이 자라는 것은 자연발생에 의한 것이라는 종래의 설을 뒤집어 보였다. 즉, 먼지가 통과하지 못하는 여과 필터를 통해 바깥 공기를 접촉할 수 있는 플라스크에 새로 끓인 고깃국물을 놓아두거나, 필터는 없지만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일명 백조목 플라스크를 사용해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장치하여 공기와 접촉하게 하면, 고깃국물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고깃국물에서 자라는 미생물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먼지에 붙은 포자 등에 의한 것이며, 고깃국물 중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거의 2,000여 년간 이어진 자연발생설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가하고, 세균설 나아가 생물속생설을 지지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였다. 이후 공기를 여과하는 방법과 발효되지 않은 액체를 높은 알프스 산, 지하실, 광장 등 다양한 장소의 공기 중에 노출하는 실험들을 통해, 액체가 공기 중에 존재하는 균과 접촉하게 되면 분해되어 발효/부패하는 것이지, 액체 자체에서 새로운 미생물이 저절로 발생하여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파스퇴르가 세균설을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고,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 프리드리히 헨레 등에 의해서 주창되고 있었다. 즉, 파스퇴르는 세균설이 옳다는 것을 실험으로 명백하게 보여주어, 반대 진영의 과학자들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그 당시 파스퇴르가 넘어야 할 장벽은 미생물을 이루는 유기분자가 고열에 취약하고, 공기가 없으면 자랄 수 없다는 자연발생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장벽을 넘기 위해 파스퇴르는 플라스크에 고기 수프를 넣고, 플라스크의 목 부분을 가열하여 길게 잡아 늘여 S자로 구부러진 백조의 목처럼 구부려서 공기가 통할 수 있게 하였고, 플라스크 안의 고기 수프를 수증기가 올라올 정도로만 살짝 끓여 살균하여 자연발생설이 주장하는 장벽을 넘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고기 수프에서는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았다. 그 원인으로 파스퇴르는 플라스크의 구부러진 목 부분에는 수프를 끓일 때 나온 수증기가 맺혀 물이 고이게 되는데, 이 물방울은 외부의 공기와 수프 사이에 벽처럼 작용해서 미생물이 수프로 들어가는 걸 막아 주었고, 미생물들이 구부러진 축축한 벽에 잡혀 있게 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또한, 파스퇴르는 시간이 지나도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는 플라스크를 기울여서 수프가 구부러진 목까지 출렁이게 하자, 다음 날 수프는 뿌옇게 오염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원인으로 파스퇴르는 물방울 안에 갇혀 있던 미생물들이 고기 수프와 만나 번식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심지어는 당시에 만든 플라스크가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채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실험을 통해서 파스퇴르는 모든 생물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 부모로부터 발생한다는 ‘생물속생설’을 증명하였다.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과정(그림: 서창완/서울대)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도구 사진()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을 하는 파스퇴르의 그림()

살균법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

파스퇴르는 음식이 공기 중에 존재하는 균과 접촉하게 되면 분해되어 부패하는 것이지 음식 자체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되어 썩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론적인 기초를 세운 다음, 자신의 발견을 식초와 포도주에 대한 연구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는데, 이 두 상품은 프랑스 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파스퇴르는 우유 등의 액체를 가열해 그중에 포함된 세균이나 곰팡이를 모두 죽이는 방법을 발명했고, 그와 클로드 베르나르는 1862년 4월 20일에 최초로 실험하였다. 이 방법은 곧바로 저온살균법으로 알려지게 되어, 식초와 포도주 생산품들을 상하지 않게 생산·보관·운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음료 오염으로부터 미생물이 동물이나 인간에게 감염된다는 결론을 내린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인체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 죠제프 리스터가 외과 수술 소독법을 개발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 (그림: 서창완/서울대)

높은 열을 가해 살균하면 식품의 맛이 변하거나 영양소까지 파괴할 수 있어서, 식품 살균의 경우, 온도와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파스퇴르는 포도주나 맥주, 우유같이 미생물 발효가 중요한 식품을 63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30분간 가열하는 ‘저온살균법’을 개발했다. 저온살균법은 식품의 맛과 영양소는 지키면서 세균을 없앨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저온살균법은 ‘파스퇴르법’이라고도 불리며, 지금까지도 식품 분야의 살균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고압증기멸균(autoclave sterilizer)

Steam digester라는 이름으로 1679년 Denis Papin에 의해 유사한 장치가 고안된 적은 있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고압증기멸균기는 1884년 Charles Chamberland에 의해 최초로 고안되었다고 공인받았다.

고압증기멸균은 용기 안을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채움으로써 안에 둔 물질을 빠른 속도로 멸균하는 방법이다. 통상 120℃, 1.2~1.5 kg/cm2의 조건하에서 10~20분간 유지하면 멸균된다. 무균배양을 할 때에 사용하는 배지나 실험기구, 병원 수술 도구의 멸균 등 광범위한 목적에 사용한다.

면역학과 백신(Immunology and vaccination)

누에병 치료

 1865년 파스퇴르는 당시 프랑스 경제에서 주요한 부문이었던 비단 생산을 종식시킬 위험이 있는 누에의 미립자병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양잠업의 중심지이던 남부 프랑스로 이사했다. 이 도중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반신불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에 걸친 조사 결과 병의 원인이 누에알에 대한 2가지 다른 병을 일으키는 세균(간균)의 감염 때문임을 증명하였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세균을 죽여 누에를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고, 예방법은 찾아낼 수 있었다. 즉, 이 병은 누에에게는 발생하지만 알에는 생기지 않아서, 병든 누에를 모두 폐기하면 병의 전염을 막을 수 있었고,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좋은 불결한 환경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닭콜레라, ·탄저병, 광견병 백신

1881년 동물은 한번 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다음에 그 병이 다시 침입할 때는 면역이 생긴다는 것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독성을 감퇴시킬 기법을 완성하였고, 가금류를 닭콜레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즉,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분리해서 배양한 뒤 약화시켜서 가금류에 접종함으로써 질병에 대해 동물의 자체 면역력을 높일 수 있었다.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대해 접종한 예를 참고하여, 약하게 만든 세균을 ‘백신(vaccine)’이라 이름 붙이고, 닭콜레라 백신을 개발하여 동물에 백신을 주사함으로써 축산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 주었다. 

1882년 무엇보다도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밝혀진 광견병의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병에 걸린 동물의 타액을 접종하는 실험을 한 뒤에 그는 이 바이러스가 신경중추에도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광견병에 걸린 개의 연수(延髓)의 일부를 건강한 동물에 접종하면 광견병 증세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감염된 동물의 건조 조직과 이 조직에 대한 시간과 기온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그는 접종에 사용할 수 있는 약화된 형태의 바이러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신경계에 미치는 광견병 바이러스의 효과를 통해 그것을 찾아내고 약화시킨 뒤에, 이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1885년 7월 6일 그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9세 된 소년의 생명을 구했다. 이 실험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어 무서운 질병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혐기성균 발견

파스퇴르는 혐기성균, 즉 공기 없이 증식하는 미생물도 발견했다. 즉, 파스퇴르는 발효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며 관련 연구를 계속 이어갔으며, 부티르산의 발효를 연구하던 중, 혐기성균, 즉 공기 없이 증식하는 미생물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를 통해 파스퇴르는 발효는 공기가 없는 환경에서 일어난 생명활동의 결과라 결론지었다.

연구윤리 논란

최근에 실험 노트가 공개됨으로써 파스퇴르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거짓을 말하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했다는 것이 밝혀져 현재 수준의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즉, 푸이 르포르에서 탄저병 백신을 공개 실험할 때, 그는 자신이 탄저병균을 산소에 노출시켜 백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경쟁자인 장 투생이 사용한 방법 즉 중탄산칼륨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백신을 만든 것이었고, 산소를 이용해 백신을 만든 것은 그가 백신 생산 독점권을 획득한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조제프 메이스테르에게 백신을 접종하기 전, 그는 자신이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광견병에 걸린 개 오십 마리를 치료했다고 보고 했지만, 실제로 메이스테르에게 접종한 백신은 그가 개를 치료할 때 썼던 백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 것이었다.

파스퇴르연구소(Pasteur Institute)

파스퇴르는 1887년 프랑스 파리에 광견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근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스퇴르연구소(Institut Pasteur)를 정부의 도움을 받아 설립하였고, 이제는 과학 분야와 공익사업에 대한 헌신적 이념을 근간으로 세계적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는 건강이 나빠졌지만 죽기 전까지 이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파스퇴르연구소는 최초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 이래 현재까지 10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파스퇴르의 열정과 비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5개 대륙 33개소로 구성된 파스퇴르연구소 국제 네트워크(Institut Pasteur International Network)로 이어졌다. 파스퇴르연구소 국제 네트워크는 탁월한 기초연구와 교육 활동을 통한 공중보건 증진에 앞장서고 있다. 2004년 4월에 한국과학기술원 KIST 內에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설립되어 현재는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내 독립연구시설로 이전하였다.

집필

나종욱/민족사관고등학교

감수

석영재/서울대학교

참고문헌

  1. 자연발생설 비판, 1998. 루이 파스퇴르, 김학현. 서해문집.
  2. 파스퇴르, 2006. 르네 뒤보, 이재열, 김사열. 사이언스북스.
  3. 장석봉. 네이버 지식백과-인물세계사, 루이 파스퇴르 [Louis Pasteur]-프랑스의 미생물학자.
  4. 이병언. 네이버 지식백과-고교생이 알아야 할 생물 스페셜, 파스퇴르의 실험.
  5. 천명선, 박재현, 강희철. 네이버 지식백과-재미있는 미생물과 감염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