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토르

헥토르

영웅

[ Hector ]

요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영웅이다. 프리아모스 왕의 맏아들이자 트로이군 총사령관으로 지략과 용기를 겸비한 고귀한 성품의 장수다. 그리스 최고의 맹장 아킬레우스와의 결투에서 패해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트로이의 헥토르

트로이의 헥토르

외국어 표기 Ἕκτωρ(그리스어)
구분 영웅
상징 방어자
어원 지탱하는 자, 저항하는 자
관련 상징 아내와 어린 아들
관련 사건, 인물 트로이 전쟁

헥토르 인물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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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 인물관계도
프리아모스안드로마케파리스데이포보스헬레노스카산드라아스티아낙스

헥토르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파리스, 데이포보스, 헬레노스, 카산드라 등과 형제이다. 테바이 왕 에에티온의 딸 안드로마케와 결혼하여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낳았다.

신화 이야기

트로이 전쟁의 발발

헬레네와 파리스

헬레네와 파리스 자크 루이 다비드, 1788년. 루브르 박물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자기 나라에서 과실로 살인을 저지르고 스파르타로 피신해 오자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에서 자신을 환대해준 적이 있었던 파리스를 관대히 맞아주고 살인죄도 정화시켜주었다.

그리고 신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파리스를 남겨둔 채 외할아버지 카트레우스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크레타 섬으로 떠났다. 파리스는 그 틈을 타서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도망쳤다 (헬레네가 파리스에게 납치되었다는 설도 있다).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 등과 함께 트로이로 가서 아내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파리스와 헬레네는 아직 트로이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트로이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을 뻔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메넬라오스는 그리스 전역에 있는 헬레네의 옛 구혼자들에게 그들이 틴다레오스에게 했던 ‘구혼자의 서약’을 상기시키며 실추된 그리스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촉구하였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그리스연합군은 아울리스 항에 집결하여 1천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트로이 원정에 나섰다.

트로이군 총사령관

당시 트로이는 연로한 프리아모스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트로이의 주민들과 주변 우방들이 실제로 믿고 의지하는 인물은 그의 맏아들이자 트로이군 총사령관인 헥토르였다. 이는 적군인 그리스인들도 인정하는 바여서 아가멤논은 헥토르가 있는 한 트로이를 무너뜨릴 수 없다며 그를 먼저 제거할 방도를 모색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는 모두 그들의 서사시에서 헥토르를 고귀한 성품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헥토르는 전장에서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고 전세가 기울 때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한 장수였으며, 가족에게는 다정다감하고 애정이 깊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헥토르가 비극적인 싸움에 나서기 위해 아내 안드로마케와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에게 작별을 고하는 장면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 중 하나이다).

헥토르는 유부녀인 헬레네를 유괴한 파리스에게 분노했고, 트로이의 장로들에게도 헬레네를 남편 메넬라오스에게 돌려줄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가장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고별

헥토르와 안드로마케의 고별 샤를 앙투안 쿠아펠, 1737년. 에르미타슈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아킬레우스의 분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10년을 지루하게 끌던 전쟁은 아킬레우스의 사랑하는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창에 죽으면서 결정적인 반전을 맞이하였다. 그동안 총사령관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쟁에서 손을 떼고 있던 그리스군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여 다시 전장에 나와 용맹을 떨쳤기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천하무적의 용장이었으므로 헥토르는 그가 전투에 나설 때면 최대한 맞대결을 피하며 전략적으로 방어전에만 치중해야 했었다.

하지만 그가 아가멤논과의 불화로 전투에서 물러난 덕분에 헥토르와 트로이군은 한껏 기세를 올리며 그리스군을 다시 그들의 함대가 있는 해안까지 퇴각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의 출현으로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장수들과 병사들을 추풍낙엽으로 쓰러뜨리는 와중에도 연신 헥토르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의 복수를 부르짖었다. 헥토르는 그 동안 아폴론의 보호로 아킬레우스의 무시무시한 창을 용케 피할 수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일전을 미룰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와 맞서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헥토르의 운명이었고, 헥토르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대결

헥토르가 성문 앞에 홀로 나와 대결에 응하자 아킬레우스는 성난 사자처럼 헥토르를 향해 돌진했다. 이 모습을 보자 헥토르는 그만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두 영웅의 쫓고 쫓기는 경주는 성 주변을 세 바퀴나 돌도록 계속되었다. 그때 그리스군을 돕는 아테나 여신이 헥토르의 동생 데이포보스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나타나 자신이 도울 테니 그만 도망치고 맞서 싸우라고 독려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헥토르는 말머리를 돌려 아킬레우스와 마주섰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있던 데이포보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헥토르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깨달았다.

이 무렵 제우스는 올림포스 산에서 두 영웅의 운명을 저울에 달아보았다. 헥토르의 저울추가 곧 하데스의 나라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자 수호신 아폴론도 헥토르를 포기했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헥토르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시체를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를 청했지만 아킬레우스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죽음도 멀지않았다고 예언하며 숨을 거두었다.

헥토르를 찌르는 아킬레우스

헥토르를 찌르는 아킬레우스 파울 루벤스, 1630-35년. 보이만스 판 보닌헨 미술관, 암스테르담

헥토르의 죽음

헥토르를 죽인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시체의 발뒤꿈치에 구멍을 뚫고 가죽끈으로 꿰어 전차에 묶은 다음 트로이 성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헥토르의 부모인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 그리고 아내 안드로마케와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헥토르의 시체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처참하게 훼손되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아프로디테암브로시아를 발라 보호해준 덕분에 헥토르의 시체는 오랜 시간 질질 끌려 다니고 방치되어 있었지만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가엾이 여긴 제우스는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를 불러 헥토르의 시체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도록 아들을 설득하게 하였다. 프리아모스 왕이 늙은 종 한 명만 데리고 직접 아킬레우스의 진영으로 찾아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받아 돌아오자 헬레네는 모두들 자기를 적대시하는 가운데 오직 헥토르만이 자신을 보호해주었다며 슬퍼하였다.

헥토르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로이는 결국 패배하였다. 트로이성은 불길에 휩싸이고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살해당하고 안드로마케는 노예로 끌려갔다. 그리고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불타는 트로이 성벽 아래로 던져졌다.

트로이로 옮겨지는 헥토르의 시신

트로이로 옮겨지는 헥토르의 시신 로마 시대 석관 부조, 180-200년. 루브르 박물관

참고자료

  • 호메로스, 『일리아스』
  •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 히기누스, 『이야기』
  • M. 그랜트, J. 헤이즐, 『』, 범우사
  • 피에르 그리말, 『』, 열린책들
  • W. H. Roscher, 『Ausführliches Lexikon der griechischen und römischen Mytholog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