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양서원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숭양서원

[ 崧陽書院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향교 · 서원>서원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황해북도>개성시>선죽동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28호

황해북도 개성시 선죽동에 있는 옛 건물. 고려말에 고려의 대관료였고 유능한 군사가, 외교가였던 포은 정몽주(1337~1392년)가 살던 집터에 처음 세웠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조선시대인 1573년(선조 6년)에 고쳐 지은 서원이다. 여기서는 정몽주를 제사지내다가 그 후 고려 때의 시중이었던 우현보(1333~1400년)를 함께 제사지냈고 조선시대의 이름있는 학자들인 서경덕(1489~1546년), 김육(1580~1658년) 등 개성출신인물들도 아울러 제사지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숭양서원은 본래의 사명인 교육과 함께 대표적인 유교성리학자들을 내세우는 방법으로 유교를 선전 보급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1575년(선조 8년)에 조선왕은 그때까지 정몽주의 시호를 붙여 ‘문충당’이라고 불러오던 이 서원을 숭양서원이라 사액(서원의 이름을 쓴 액자를 내려보내는 것)하였으며 1864년(고종 1년)의 대대적인 서원철폐 때에도 이 서원은 그대로 남았다. 16세기말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도 잘 보존되었는데, 지난 6 · 25전쟁시기 심히 파괴되었다. 전후에 다시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숭양서원은 자남산을 등지고 그 동남쪽 경사지에 대칭적으로 규모있게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으로 둘러막힌 담장의 앞에 난 바깥3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좌우에 학생들의 합숙이었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있으며 다시 그 뒤로 안3문을 지나면 사당(문충당)이 있다.

강당은 높은 기단 위에 흘림기둥을 세우고 두공없이 지은 정면 5칸(12.79m), 측면 3칸(6.96m)의 홑처마합각집이다. 건물 안의 가운데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양편 옆칸은 앞쪽 한칸을 마루방과 이어진 퇴로 하고 그 뒤에 온돌방을 꾸렸다. 사당은 그보다 더 높은 단 위에 세운 정면 4칸(9.43m), 측면 2칸(4.83m)의 겹처마뱃집이다. 동재, 서재는 다 정면 5칸, 측면 2칸이며 사당 앞의 좌우에는 비석 2개가 있다. 숭양서원은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형식과 건축구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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