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진각간

헌진각간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신라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
생몰년: 미상

일반정보

신라 제 38대 원성왕(元聖王)의 셋째아들인 예영의 아들로 신라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이다.

전문정보

원성왕(元聖王)의 셋째아들인 예영의 아들로 신라 제43대 희강왕의 아버지이다.『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 10 희강왕 원년조에서는 희강왕의 아버지를 헌정(憲貞)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헌진(憲眞)과 헌정(憲貞)은 동일인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권10 신라본기10 애장왕(哀莊王) 8년(807)조를 보면 “이찬 김헌창[혹은 헌정이라고 한다]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伊湌金憲昌[一作貞] 爲侍中)”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 기사에 등장하는 김헌창이 김주원의 아들인 김헌창인지 혹은 예영의 아들 김헌정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김헌창은 헌덕왕 5년(813)에 무진주(武珍州) 도독(都督)에 임명되었고, 헌덕왕 6년(814)에 정식으로 시중에 임명된 기사가 나오고 있어 애장왕 8년에 시중에 임명된 것은 김헌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이기백, 1974) 한편 이를 헌덕왕 2년(810)에 견당사로 입당한 金憲章과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이기동, 1984)

『삼국사기』를 보면 헌덕왕 11년(819)에 이르러 김헌정이 병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희강왕 2년(837)에 익성대왕(翌成大王)으로 추봉되었는데『삼국유사』왕력편에서는 그의 시호를 흥성대왕(興聖大王)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이기백, 1974,『新羅政治社會史硏究』, 일조각.
이기동, 1984,『新羅 骨品制社會와 花郞徒』, 일조각.

관련원문 및 해석

第四十三 僖康王 [金氏 名愷隆 一作悌顒 父憲眞角干 諡興聖大王 一作(翌)成 禮英匝干子也 母美道夫人 一作深乃夫人 一云巴利夫人 諡順成太后 忠衍大阿干之女也 妃文穆王后 忠孝角干之女 一云重恭角干 丙辰年立 理二年]
제43 희강왕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개륭, 혹은 제옹이다. 아버지는 헌진각간이고 시호는 흥성대왕 혹은 익성이라고 하며 예영잡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미도부인 혹은 심내부인 또은 파리부인이라고 하며 시호는 순성태후로 충연대아간의 딸이다. 비는 문목왕후로 충효각간의 딸이며 혹은 중공각간이라고도 한다. 병진년에 즉위하여 2년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