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곡

양장곡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경주의 옛 지명으로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의 능(陵)이 위치해 있다고 전하는 골짜기이다.

일반정보

양장곡(楊長谷)은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등장하는 경주(慶州)의 옛 지명으로,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의 능(陵)이 위치해 있다고 전한다.

전문정보

양장곡(楊長谷)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등장하는 경주(慶州)의 옛 지명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 왕력편의 성덕왕릉(聖德王陵)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능은 동촌 남쪽에 있는데 양장곡이라고도 한다.(陵在東村南 一云楊長谷)”라고 하여 양장곡이 동촌(東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또한 “후에 양장곡 안에 (경덕왕의 능을) 이장하였다.(後移葬楊長谷中)”라고 하여, 양장곡에는 성덕왕릉 외에 경덕왕의 무덤도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양장곡은 동촌의 남쪽에 있으며, 두 개의 왕릉이 위치한 골짜기이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경주시 남산동 일대를 양장곡으로 비정한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월성(月城)의 동쪽인 경주시 보문동과 배반동 일대를 동촌으로 비정한 뒤, 그 남쪽에 두 기의 신라 왕릉이 위치한 남산 북쪽 골짜기를 양장곡으로 추정한 것이다. 현재 이 곳에는 헌강왕릉(憲康王陵)과 정강왕릉(定康王陵)으로 전하는 신라시대 왕릉 두 기가 존재하는데, 이를 각각 성덕왕릉과 경덕왕릉으로 보았다.(강인구, 2000)

반면에 『삼국유사』 왕력편이 찬술된 고려시대 경주의 동촌 범위는 보문동·배반동은 물론 동방동까지도 포함된다고 하여, 왕력에 언급된 양장곡을 전 성덕왕릉(傳聖德王陵)이 위치한 지금의 동방동 남쪽의 조양동 일대로 보기도 한다.(이근직, 2006)

참고문헌

강인구, 2000, 『古墳硏究』, 학연문화사.
이근직, 2006, 『新羅 王陵의 起源과 變遷』,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十三 聖德王 [名興光 本名隆基 孝昭之母弟也 先妃陪炤王后 諡嚴貞 元大(阿)(干)之女也 後妃占勿王后 諡炤德 順<元>角干之女 壬寅立 理三十五年 陵在東村南 一云楊長谷]
제33 성덕왕 [이름은 흥광이며 본명은 융기로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첫째 비는 배소왕후인데, 시호는 엄정으로 원대아간의 딸이다. 둘째 비는 점물왕후로 시호는 소덕이고 순원 각간의 딸이다. 임인년에 즉위하여 35년간 다스렸다. 능은 동촌 남쪽에 있는데 양장곡이라고도 한다.]

第三十五 景德王 [金氏 名憲英 父聖德 母炤德大后 先妃三毛夫人 出宮無後 後妃滿月夫人 諡景垂王后 垂一作穆 依忠角干之女 壬午立 理二十三年 初葬頃只寺西岑 鍊石爲陵 後移葬楊長谷中]
제35 경덕왕 [김씨이며, 이름은 헌영이다. 아버지는 성덕왕이고 어머니는 소덕태후이다. 처음 왕비는 삼모부인으로, 궁중에서 폐출되어 후사가 없다. 다음 왕비는 만월부인으로, 시호는 경수왕후이다. 수(垂)는 혹은 목(穆)이라고도 한다. 의충 각간의 딸이다. 임오년에 즉위하여 23년간 다스렸다. 처음에는 경지사 서쪽 봉우리에 장사 지내고서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는데, 후에는 양장곡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