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패

양패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의 막내아들.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의 막내아들로서 당에 사신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궁사 거타지를 남겨두고 항해를 하여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전문정보

『삼국유사』권2 기이2 진성여대왕 거타지조에서는 궁사 거타지(居陁知)가 당에 사신으로 가는 진성여왕의 막내아들 양패(良貝)를 따라 항해하던 도중 곡도(鵠島)에 이르러 풍랑을 만나 이를 잠재우기 위해 섬에 남겨지는 것으로 나온다. 이 때 서해바다의 신인 서해약(西海若)이 나타나 거타지에게 가족의 간과 창자를 빼먹는 승려로 변한 늙은 여우를 죽여 줄 것을 요청한다. 서해약은 활로 늙은 여우를 쏘아 죽인 거타지에게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고 용 두 마리로 하여금 당으로 가는 사신 일행을 호위하게 하였다.

진성여왕의 나이를 고려하여 여왕의 막내아들인 양패가 당에 사신으로 간 것을 의심하는 견해가 있다. 진성여왕은 경문왕의 딸로서 경문왕이 헌안왕 4년(860)에 혼인한 후 5년 후쯤에 태어났기 때문에 865년 전후가 출생연도이며, 887년 즉위할 무렵에는 많아야 20대 초반, 897년 죽을 때에는 30대 초반정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진성여왕에게 당에 사신으로 갈 정도로 장성한 막내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하였다. 따라서 『삼국유사』의 해당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하였다.(권영오, 2004)

그러나 양패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진성여왕에게 양패 위로 몇 명의 장성한 아들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김창겸, 2003)

참고문헌

김창겸, 2003, 『新羅 下代 王位繼承 硏究』, 경인문화사.
권영오, 2004, 「김위홍과 진성왕대 초기 정국 운영」『大丘史學』76.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진성여대왕 거타지)
眞聖女大王 居陁知
第五十一眞聖女王 臨朝有年 乳母鳧好夫人與其夫魏弘匝干等三四寵臣 擅權撓政 盜賊蜂起 國人患之 乃作陁羅尼隱語書投路上 王與權臣等得之謂曰 此非王居仁 誰作此文 乃囚居仁於獄 居仁作詩訴于天 天乃震其獄 <因>以免之 詩曰 燕丹泣血虹穿日 鄒衍含悲夏落霜 今我失途還似舊 皇天何事不垂祥 陁羅尼曰 南無亡國 刹尼那帝 判尼判尼蘇判尼于于三阿干 鳧伊娑婆訶 說者云 刹尼那帝者 言女<主>也 判尼判尼蘇判尼者 言二蘇判也 蘇判爵名 干干三阿<干>(者 言三四寵臣)也 鳧伊者言鳧好也 此王代阿<飡>良<貝>王之季子也 奉使於唐 聞百濟海賊梗於津<島> 選弓士五十人隨之 舡次鵠島[鄕云骨大島] 風濤大作 信宿<浹>旬 公患之 使人卜之 曰 島有神池 祭之可矣 於是 具奠於池上 池水湧高丈餘 夜夢有老人 謂公曰 善射一人 留此島中 可得便風 公覺而以事諮於左右曰 留誰可矣 衆人曰 宜以木簡五十片 書我輩名 沈水而鬮之 公從之 軍士有居陁知者 名沈水中 乃留其人 便風忽起 舡進無滯 居陁愁立島嶼 忽有老人從池而出 謂曰 我是西海若 每一沙彌 日出之時 從天而降 誦陁羅尼 三繞此池 我之夫婦子孫 皆浮水上 沙彌取吾子孫肝腸 食之盡矣 唯存吾夫婦與一女爾 來朝又必來 請君射之 居陁曰 弓矢之事 吾所長也 聞命矣 老人謝之而沒 居陁隱伏而待 明日扶桑旣暾 沙彌果來 誦呪如前 欲取老龍肝 時居陁射之中 沙彌卽變老狐 墜地而斃 於是老人出而謝曰 受公之賜 全我性命 請以女子妻之 居陁曰 見賜不遺 固所願也 老人以其女變作一枝花 納之懷中 仍命二龍 捧居陁趁及使舡 仍護其舡入於唐境 唐人見新羅舡有二龍負之 具事上聞 帝曰 新羅之使 必非常人 賜宴坐於群臣之上 厚以金帛遺之 旣還國 居陁出花枝 變女同居焉
진성여대왕 거타지
제51대 진성여왕이 나라 정사에 임한 지 몇 해만에 유모 부호부인과 그의 남편 위홍잡간 등 서너 명의 총신이 권세를 잡고 정사를 휘두르니, 도적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나라 사람이 이를 근심하여 다라니의 은어를 지어 써서 길바닥에 던져 두었다. 왕과 권신들이 이를 얻어 보고 말하기를, “왕거인이 아니고야 누가 이 글을 지었겠는가?”라고 하고, 곧 거인을 옥에 가두었다. 거인이 시를 지어 하늘에 호소하니, 하늘이 곧 그 옥에 벼락을 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시에 이르길, “(연나라태자)단의 피눈물에 무지개가 해를 뚫고 (제나라사람)추연의 품은 원한 여름에 서리 내렸네. 지금의 내 신세 예전과 같건만 황천은 어찌하여 아무 조짐을 내리지 않는가.” 다라니에는 “나무망국 찰니나제 판니판니소판니우우삼아간 부이사파하”라고 하였다. 풀이하는 이가 말하기를, “찰니나제는 여왕을 말하고, 판니판니소판니는 소판 두 사람을 말한다. 소판은 벼슬 이름이다. 우우삼아간은 (서너 사람의 총신을 말하고) 부이는 부호를 말한다.”고 하였다. 이 왕의 시대에 아찬 양패는 왕의 막내아들로서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백제의 해적이 진도에서 막고 있다는 말을 듣고, 궁사 50인을 뽑아 데리고 갔다. 배가 곡도[우리말로 곡대도라고 한다]에 이르니, 풍랑이 크게 일어나 열흘 남짓 묵게 되었다. 공이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 점을 치니, 말하기를, “섬에 신령한 못이 있으니 그곳에 제사지내야 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못 위에 제사를 지냈더니, 못물이 한 길 남짓 솟아올랐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공에게 말하기를,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머물게 하면 순풍을 얻을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공이 꿈에서 깨어나 좌우에게 이 일을 묻기를, “누구를 머물게 하면 좋을까?”라고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나무조각 50쪽에 우리 이름들을 써서 물에 띄워 가라앉는 것으로 제비를 뽑읍시다.”고 하였다. 공이 이에 따랐다. 군사 중에 거타지란 이가 있어 그의 이름이 물에 가라앉았으므로 그를 머물게 하니, 순풍이 갑자기 일어나 배는 지체없이 나아갔다. 거타지가 수심에 쌓여 섬에 서있었더니, 갑자기 한 노인이 못에서 나와 말하기를, “나는 서해약(西海若)인데, 매번 한 승려가 해 돋을 때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외우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에 떠오릅니다. 승려는 내 자손의 간과 창자를 다 취해 먹고, 우리 부부와 딸 하나가 남았을 뿐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반드시 올 것이니, 청컨대 그대는 이를 쏘아 주시오.”라고 하였다. 거타가 말하기를, “활 쏘는 일은 나의 장기이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고 하였다. 노인이 감사하고 물 속으로 돌아가고, 거타는 숨어서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승려가 과연 와서 전과 같이 주문을 외워 늙은 용의 간을 취하려고 하였다. 이 때 거타가 활을 쏘아 맞추니 승려는 즉시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 때 노인이 나타나 감사하며 말하기를, “공의 덕택으로 우리 목숨을 보전하였으니, 내 딸을 아내로 삼아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거타가 말하기를, “따님을 주시고 저버리지 않으시니 진실로 원하던 바입니다.”고 하였다. 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 꽃으로 바꿔 그의 품 속에 넣어 주고, 또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를 받들고 사신이 탄 배를 따라가 그 배를 호위하게 하여 당나라 경계에 들어갔다. 당나라 사람들이 두 용이 신라의 배를 지고 오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아뢰니, 황제가 말하기를, “신라 사신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일 것이다.”고 하고, 잔치를 베풀어 여러 신하들의 위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 본국에 돌아와서 거타가 꽃가지를 꺼내니, 꽃이 여자로 변하였으므로 함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