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물왕후

점물왕후

분류 문학 > 국가 > 신라

기본정보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이다.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점물왕후(占勿王后)는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로 시호는 소덕(炤德)이며, 아버지는 순원(順元) 각간(角干)이다. 성덕왕 19년(720)에 왕비(王妃)로 책봉되어 같은 왕 23년(724)에 사망하였다. 성덕왕과의 사이에서는 왕자(王子) 승경(承慶)과 헌영(憲英)을 낳았는데, 이들은 후에 각각 신라 제34대 효성왕(孝成王)와 제35대 경덕왕(景德王)으로 즉위하였다.

전문정보

점물왕후(占勿王后)는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의 두 번째 비(妃)로 시호는 소덕(炤德)이다. 『삼국유사』 왕력편과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성덕왕 19년(720)조에는 모두 점물왕후의 아버지를 순원(順元)이라고 하였다.

성덕왕이 점물왕후를 두 번째 비(妃)맞이한 것은 성덕왕 19년(720)의 일로, 첫 번째 비(妃)였던 배소왕후(陪炤王后)가 출궁 당한지 4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점물왕후의 입궁(入宮)은 그녀의 아버지인 김순원이 신라 정계에서 득세하는 과정과 관련 있는 듯하다. 배소왕후의 출궁에 즈음하여 점물왕후의 아버지인 김순원은 자신의 세력과 대립하던 김원태 세력을 제거하였고, 그 후 자신의 딸인 점물왕후를 성덕왕의 두 번째 비(妃)로 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김순원 세력의 성격에 대해서는 효소왕대에 몰락했다가 성덕왕대 재등장한 왕당파(王黨派)로 보기도 하고,(김수태, 1996) 성덕왕을 옹립한 진골 귀족 세력 중 하나로 파악하도 한다.(박해현, 2003)

점물왕후는 성덕왕과 혼인한지 4년 만인 성덕왕 23년(724)에 사망하였다. 성덕왕과의 사이에는 왕자(王子) 승경(承慶)과 헌영(憲英)을 낳았다. 승경은 성덕왕 23년(724)에 태자(太子)로 책봉되었다가 737년에 선왕(先王)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신라 제34대 효성왕(孝成王)으로 즉위하였다. 헌영 또한 형인 효성왕이 재위 6년만인 742년에 후사(後嗣)없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으로 즉위하였다.

참고문헌

김수태, 1996, 『新羅中代政治史硏究』, 일조각.
박해현, 2003, 『신라 중대 정치사 연구』, 국학자료원.

관련원문 및 해석

第三十三 聖德王 [名興光 本名隆基 孝昭之母弟也 先妃陪炤王后 諡嚴貞 元大(阿)(干)之女也 後妃占勿王后 諡炤德 順<元>角干之女 壬寅立 理三十五年 陵在東村南 一云楊長谷]
제33 성덕왕 [이름은 흥광이며 본명은 융기로 효소왕의 친동생이다. 첫째 비는 배소왕후인데, 시호는 엄정으로 원대아간의 딸이다. 둘째 비는 점물왕후로 시호는 소덕이고 순원 각간의 딸이다. 임인년에 즉위하여 35년간 다스렸다. 능은 동촌 남쪽에 있는데 양장곡이라고도 한다.]

第三十四 孝成王 [金氏 名承慶 父聖德王 母炤德大后 妃惠明王后 眞宗角干之女 丁丑立 理五年 法流寺火葬 骨散東海]
제34 효성왕 [김씨이며, 이름은 승경이다. 아버지는 성덕왕이고, 어머니는 소덕태후이다. 왕비는 혜명왕후로, 진종각간의 딸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5년간 다스렸다. 법류사에서 화장하여 뼈를 동해에 뿌렸다.]

第三十五 景德王 [金氏 名憲英 父聖德 母炤德大后 先妃三毛夫人 出宮無後 後妃滿月夫人 諡景垂王后 垂一作穆 依忠角干之女 壬午立 理二十三年 初葬頃只寺西岑 鍊石爲陵 後移葬楊長谷中]
제35 경덕왕 [김씨이며, 이름은 헌영이다. 아버지는 성덕왕이고 어머니는 소덕태후이다. 처음 왕비는 삼모부인으로, 궁중에서 폐출되어 후사가 없다. 다음 왕비는 만월부인으로, 시호는 경수왕후이다. 수(垂)는 혹은 목(穆)이라고도 한다. 의충 각간의 딸이다. 임오년에 즉위하여 23년간 다스렸다. 처음에는 경지사 서쪽 봉우리에 장사 지내고서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는데, 후에는 양장곡으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