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현

용강현

분류 문학 > 국가 > 고구려

기본정보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출신지

일반정보

용강현(龍岡縣)은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출신지이다. 고구려때에는 황룡국(黃龍國)으로 고려때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이라고 하였으며, 이후 이름을 용강(龍岡)으로 바꾸고 현(縣)이 되었다.

용강현 본문 이미지 1

전문정보

용강현(龍岡縣)은 고구려 승려 보덕(普德)의 출신지이다. 『삼국유사』 탑상4 고려영탑사(高麗靈塔寺)조에 따르면, “『승전』에 이르기를 스님 보덕(普德)의 자(字)는 지법(智法)이요, 예전 고려(고구려)의 용강현(龍岡縣) 사람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용강현(龍岡縣)이 승려 보덕(普德)의 출신지임을 알 수 있다.

승려 보덕(普德)의 행적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유사』 탑상4 고려영탑사(高麗靈塔寺)조에 따르면, 보덕(普德)은 평양성(平壤城)에 살았는데 한번은 산방의 노승이 찾아와서 불경 강의를 청하였다. 보덕 스님은 굳이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가서 『열반경(涅槃經)』 40권을 강의하였다. 자리가 파한 후에 성의 서쪽 대보산(大寶山) 바위 구멍 아래 있는 수행하는 암자에 이르니, 신령한 사람이 와서 이곳에 살아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석장을 앞에 놓고 땅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 땅 속에 8면의 7층의 석탑이 있다.”하니, 거기를 파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절을 지어 영탑사(靈塔寺)라 부르고 여기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51 평안남도 평양부 용강현 건치연혁에 따르면 용강현은 “옛날 황룡국(黃龍國)이었는데 고구려가 합병하였으며, 고려에서는 황룡성(黃龍城)이라고 하였다. 일명 군악(軍岳)이라고도 한다. 후에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현(縣)으로 하였는데,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고구려가 합병하기 이전에는 용강현(龍岡縣)이 황룡국(黃龍國)으로 불리어졌으며, 고려시기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으로 불리어지다가 용강(龍岡)으로 이름을 바뀌었고, 현(縣)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3 탑상4 고려영탑사)
高麗靈塔寺
僧傳云 釋普德 字智法 前高麗龍岡縣人也 詳見下本傳 常居平壤城 有山方老僧 來請講經 師固辭不免 赴講涅槃經四十餘卷 罷席至城西大寶山嵓穴下禪觀 有神人來請 宜住此地 乃置錫杖於前 指其地曰 此下有八面七級石塔 掘之果然 因立精舍 曰靈塔寺 以居之

고려영탑사
『승전(僧傳)』에 이르기를 “스님 보덕(普德)의 자(字)는 지법(智法)이요, 예전 고려(고구려)의 용강현(龍岡縣) 사람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 아래 『본전(本傳)』에 자세히 적혀 있다. 그는 늘 평양성(平壤城)에 살았는데, 산방의 노승이 하나 있어 (그가) 찾아와서 불경 강의를 청하였다. 보덕 스님은 굳이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가서 『열반경(涅槃經)』 40권을 강의하였다. 자리가 파한 후에 성의 서쪽 대보산(大寶山) 바위 구멍 아래 이르러 수행을 하는데, 한 신령한 사람이 와서 이곳에 살아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지팡이를 앞에 놓고 땅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 땅 속에 8면의 7층의 석탑이 있다.”하였는데, 거기를 파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이에 절을 지어 영탑사(靈塔寺)라 부르고 거기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