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사

도림사

분류 문학 > 건축 > 사찰

기본정보

신라 왕경(王京) 내에 위치한 사찰

일반정보

도림사(道林寺)는 신라의 왕경(王京) 내에 위치했던 사찰이다.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은 즉위 후 귀가 당나귀처럼 커졌는데, 이 사실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알고 있었다. 평생 왕의 비밀을 지켰던 장인은 죽기 전에 도림사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고 전한다. 현재 도림사의 정확한 알 수 없다.

전문정보

도림사(道林寺)는 신라의 왕경(王京) 내에 위치했던 사찰이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에는 도림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를 전하고 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은 즉위 후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는데, 이 사실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알고 있었다. 평생 왕의 비밀을 지켰던 장인은 죽기 전에 도림사 대나무 숲 속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쳤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부터 바람이 불 때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하여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는데, 이후에는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삼국유사』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 세주(細註)에는 도림사의 위치에 대하여 “예전의 입도림 주변에 있었다.(舊在入都林邊)”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삼국유사』 이외의 다른 사료에서 경주지역 내 도림사나 입도림(入都林)과 관련된 기록이 보이지 않아 그 구체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도림사를 현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폐탑지에 비정한 견해가 제시된 바 있지만(齋藤忠, 1973), 그에 따른 근거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참고문헌

齋藤忠, 1973, 『新羅文化論攷』, 吉川弘文館.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
… 王之寢殿 每日暮 無數衆蛇俱集 宮人驚怖 將驅遣之 王曰 寡人若無蛇 不得安寢 宜無禁 每寢吐舌滿胸鋪之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頭匠一人知之 然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唱云 吾君耳如驢耳 其後風吹 則竹聲云 吾君耳如驢耳 王惡之 乃伐竹而植山茱萸 風吹 則但聲云 吾君耳長[道林寺 舊在入都林邊] …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景文大王)
(전략) 왕의 침전에는 매일 저녁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 안의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그것들을 몰아내려 하자 왕이 말하기를, “과인은 만약 뱀이 없으면 편안히 잘 수 없으니 마땅히 쫓아내지 말라.”라고 하였다. 매번 (왕이) 잘 때마다 (뱀들이) 혀를 날름대며 온 가슴을 덮었다. 왕위에 오른 후에 왕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후나 궁 안의 사람들 모두 알지 못했고 오로지 복두장(?頭匠) 한 사람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평생동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도림사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나무를 향해 외치기를,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하였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것이 싫어서 이내 대나무를 베고 산수유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단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났다.[도림사는 예전의 입도림 주변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