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원랑

요원랑

분류 문학 > 인물 > 화랑

기본정보

신라의 화랑(花郞).

생몰년 : 미상

일반정보

요원랑(邀元郞)은 신라의 국선(國仙)으로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다른 국선들과 함께 유람하다가 왕을 위해 노래 세 수를 지어 왕에게 바치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칭찬하고 상을 내렸다고 한다.

전문정보

요원랑(邀元郞)은 신라의 국선(國仙)으로 제48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대에 활동한 인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四十八景文大王)조에 따르면 그는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의 다른 국선들과 함께 금란(金蘭, 현 강원도 통천)을 유람하였다가 경문왕을 위해 노래 세 수를 지었다. 이들이 지은 노래는 대거화상(大炬和尙)에 의해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 등 세 가지 노래로 만들어졌는데, 왕에게 바치니 왕이 크게 기뻐하여 칭찬하고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같은 경문왕대 네 국선의 행위는 당시 활동했던 여러 화랑들이 왕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행한 결의로 이해하기도 한다. 경문왕은 본래 국선이었다가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재위 857-861)의 사위가 되었는데, 헌안왕에게 후사가 없자 왕의 유조(遺詔)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다. 즉위 후 경문왕은 자신의 왕위 계승에 반발하는 일부 귀족들을 진압하고 왕경 귀족들의 세력을 규합하는데 진력함으로써 왕권의 안정을 꾀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현실적으로 경문왕의 세력 기반이 된 집단은 바로 화랑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경문왕대 국선인 요원랑, 예흔랑, 계원, 숙종랑 등이 모여 경문왕을 지지하는 결의를 행했던 사실은 당시 화랑집단들의 동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전기웅, 1994)

참고문헌

전기웅, 1994, 「新羅下代의 花郞勢力」『新羅文化』10·11合.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2 기이2 사십팔경문대왕)
… 國仙邀元郞譽昕郞桂元叔宗郞等 遊覽金蘭 暗有爲君主理邦國之意 乃作歌三首 使心弼舍知 授針卷 送大炬和尙處 令作三歌 初名玄琴抱曲 第二大道曲 第三問群曲 入奏於王 王大喜稱賞 歌未詳 (『三國遺事』 卷2 紀異2 四十八景文大王)
(전략) 국선(國仙)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할 때 몰래 임금을 위하여 나라를 다스릴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를 지어,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 공책을 주고 대거화상의 처소에 보내어 세 가지 노래를 짓게 하였다. 첫 번째 곡의 이름은 “현금포곡(玄琴抱曲)”이요, 두 번째는 “대도곡(大道曲)”이며, 세 번째는 “문군곡(問群曲)”이다. 왕에게 들어가 아뢰니 왕은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