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귀리 유적

심귀리 유적

[ 時中 深貴里 遺蹟 ]

지역 시중
반달돌칼, 그물추

반달돌칼, 그물추

자강도 시중군 심귀리에 있는 선사~고대시기 유적으로 1958과 1983년에 발굴하였다. 심귀리에는 독로강 중류에서 가장 넓은 벌판 지대가 펼쳐 있고, 유적은 심귀리 벌판 끝 쪽 강언덕 위에 놓여 있다.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가까이에 노남리(魯南里) 남파동 유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청동기시대 집자리(住居址)와 노남리 미타골·간평·남파동 및 내평 고분군이 확인되어 주변에 유적이 많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귀리 유적 청동기시대 문화층은 고구려시기 무덤과 철기시대 문화층 아래에서 나왔다. 집자리 2기가 확인되었는데 집자리 바닥이 표토층 아래로 1.2m 깊이에서 나타났다. 집자리는 장방형(長方形) 평면에 깊이 0.6~0.8m의 움집이었다. 2호 집자리는 장축, 단축이 10.6×8.6m 크기로 90㎡가 넘는 대형 유구이다. 동남쪽 벽에는 집자리 바닥보다 조금 높게 만든 출입구시설이 있다.

단지. 높이 23cm

단지. 높이 23cm

집자리에서 나온 유물돌도끼(石斧),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끌(石鑿), 달도끼(環狀石斧), 돌낫(石鎌), 돌화살촉(石鏃) 등의 석기와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紡錘車), 그물추(漁網錘)가 있다. 토기는 강계 공귀리(公貴里) 유적에서 나온 것들과 유사하다. 항아리, 단지, 보시기, 사발 등 여러 가지 기형의 토기들이 나왔고 팽이형토기(角形土器)의 바닥과 닮은 납작바닥 그릇도 있다. 토기의 크기는 큰 것과 중간형이 있고 1호 집자리에서는 집자리 바닥에 박혀 있는 그릇에 도토리가 가득 담긴 채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1호 집자리와 2호 집자리는 유물갖춤새로 보아 시기가 다른 것으로 나타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유적의 연대는 B.C. 1000년기 전반기로 보고 있으나, 1호 집자리는 B.C. 2000년기 늦은 시기에 드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심귀리 유적은 중강 토성리(土城里) 유적, 강계 공귀리 유적과 함께 압록강 중상류 지역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구려시대 고분군은 독로강 유역의 가장 넓은 들판에 자리하며, 돌무지무덤(積石塚)과 돌방봉토분(石室封土墳) 등 180여 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으며, 돌무지무덤은 강변 대지에 줄지어 늘어서 있고, 돌무지무덤의 뒤쪽으로 돌방봉토분이 자리한다. 1983년도 조사시 돌무지무덤 16기와 돌방봉토분 24기를 발굴하였다.

돌무지무덤은 1·7·20·21·27·49·50·52·73·75·78·84·91·92·99호분 등 16기로 대개 한 변 6m 내외의 작은 무덤들이다. 돌무지무덤의 외형은 기단이 없는 것과 기단이 있는 것, 계단을 이룬 것 3종류가 있고, 무덤 내부는 모두 돌덧널(石槨)이다. 그 중 78호분은 계단돌무지무덤(階段積石塚)으로 검은 간그릇과 갈색간그릇 및 오수전(五銖錢)이 1점씩 출토되었다.

73호분은 합장(合葬)한 돌무지무덤으로 철제 도끼와 손칼, 꺾쇠와 점토질에 그릇 표면을 마연한 로남리형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무기단돌무지무덤(無基壇積石塚)으로, 무덤에서 청동팔찌와 귀걸이 1쌍이 출토되었다, 84·91·92호분은 심하게 파괴되었는데, 92호분에서는 철제손칼(鐵刀子)이 출토되었고, 84호분에서는 금박판의 장식조각이 출토되었다. 99호분은 합장한 계단돌무지무덤으로 한변 12m, 9m 정도로 심귀리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이다. 그 외 돌무지무덤들은 장방형 평면의 무덤으로 파괴정도가 심하여 원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1호분에서는 교구(鉸具)가 출토되었다. 20호분과 21호분은 서로 연접된 무덤으로 20호분에서는 회색 단지 1점이 출토되었고, 21호분에서는 철제 꺾쇠가 출토되었다.

돌방봉토분은 대부분 도굴을 당하였다. 8호분은 널길(羨道)과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단칸 구조 무덤이다. 널길은 서남쪽을 향하였고, 입구는 폭 0.4m이고, 길이는 3m이다. 널길은 널방의 한쪽에 치우쳐 있다. 널방은 지상에 마련되었고, 길이, 너비, 높이가 2.7×1.7×1.6m이다. 무덤 내에서는 동쪽에 머리를 둔 2개체 분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무덤에서는 뚜껑에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달린 토기 합(盒)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의 무덤으로는 19호분이 있다. 81호분은 화강암으로 축조되었고, 흙과 돌을 섞어서 분구를 형성하였다. 무덤은 널길과 널방으로 된 단칸구조이다. 널길은 서남향을 하였고, 널방 한쪽에 치우쳐 있다. 널방은 모래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고, 무덤 내부에는 널받침대로 쓰였던 돌 2개가 북벽에 나란히 붙어있다. 널받침대로 쓰였던 돌 옆에 두개골 1점과 다리뼈 2개가 놓여있었다. 널방은 2.45×1.55×1.1m이다.

88호분은 냇돌(川石)로 축조한 무덤으로, 방향이나 규모는 81호분과 유사하다. 150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뒤쪽에 위치한다.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단칸구조 무덤이다. 널길은 서쪽에 가까운 방향이며, 널방 중앙에 위치한다. 널방 입구에는 문지방석이 있다. 널방 바닥에는 5~7㎝ 정도의 냇돌을 20㎝ 두께로 깔았고, 천장은 삼각고임식이다. 벽면에 회를 발랐으나 대부분 탈락되고 구석에 조금 남아있다. 널방은 길이 2.45m, 폭 2.3m이다. 널방 중앙에 1사람 분의 인골에 있어 동쪽에 머리를 두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널방에서 많은 양의 관못이 수습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의 무덤으로는 90·149호분이 있다.

151호분은 매장부가 지상에 놓였으나 널길이 없는 앞트기식(橫口式) 구조 무덤이다. 널방 길이 1.4m, 폭 0.7m이고, 0.2~0.3m정도 높이의 벽이 남아있다. 널방 바닥에는 잔 냇돌을 깔았다, 이와 같은 구조의 무덤으로는 89호분이 있다.

152~157호분은 매장부가 지하에 놓여 지상에 천장석만이 노출되었다. 무덤은 모두 서남향이나 서향을 하였고, 천장은 삼각고임식이다. 그 중 156호분은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단칸구조무덤이다. 널길은 널방의 한쪽에 치우쳐있다. 널방의 규모는 2.65×1.8×0.9m이다. 널방에는 널받침대 돌 2개가 있다. 널받침대의 서쪽 부분에 다리뼈가 있어 동쪽에 머리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심귀리의 돌방봉토분에서는 이혈합장(異穴合葬) 무덤이 확인되었다. 11·14·103호분은 하나의 분구 내에 2개나 3개의 널방을 가진 무덤이다. 무덤은 모두 서남향을 하였다. 널길은 널방 한쪽에 치우쳐 있으며, 널방은 작은 규모로 대개 장방형 평면이고, 천장은 대부분 평천장이다.

심귀리 고분군의 고분들은 독로강발전소댐에 수몰되었지만, 돌무지무덤에서부터 돌방봉토분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고분은 고구려 고분의 변천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준다.

참고문헌

  • 북한의 선사고고학 3-청동기 시대와 문화(장호수, 백산문화, 1992년)
  • 압록강, 독로강 류역 고구려유적발굴보고(정찬영,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3년)
  • 기원 4세기까지 고구려 묘제에 관한 연구(정찬영, 고고민속논문집 5, 1973년)
  • 자강도 시중군 심귀리 원시유적발굴 중간보고(정찬영, 문화유산 61-2, 196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