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노대도 유적

상노대도 유적

[ 統營 上老大島 遺蹟 ]

지역 통영
상도대도 유적 출토 토기, 석기

상도대도 유적 출토 토기, 석기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면 노대리(현재 경상남도 통영시 욕지면)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으로, 1978년 연세대학교·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상리 유적과 1988년 부산수산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산등 유적이 있다. 상리 조개더미는 맞은 편의 하노대도를 바라보는 남쪽의 바닷가에 비스듬히 펼쳐져 있으며 바닷가에서 5~10m 정도 떨어져 있다. 산등 유적은 상리에서 서북쪽으로 깃대봉의 연봉을 넘어 섬의 끝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상리 유적의 층위는 연세대학교가 발굴한 구덩에서 잘 나타난다. 전체 층위는 10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조가비층은 8·7·6·4·2층이다. 가장 아랫층인 10층은 중석기시대층으로 추정되었고 9~2층까지가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상노대도 유적 출토 조합식작살

상노대도 유적 출토 조합식작살

신석기 이른 시기(初期)에 해당하는 9·8·7·6층에서 보면 9층에서는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와 민토기가 주체를 이루나 점차 윗층으로 갈수록 찍은 무늬가 많아지고 있다. 9층에서는 납작밑(平底) 토기가 대부분이나 위로 가면서 점차 둥근밑(圓底)도 나오고 있다. 석기를 보면 9층에서는 간석기(磨製石器)와 숫돌(砥石)도 출토되지만 밀개, 긁개, 찌르개, 톱니날 긁개, 콧날등 밀개 등 후기 구석기의 전통이 남아있는 석기들이 출토된다. 이것이 상노대도 석기에서 특히 주목할 점이다.

뼈연모를 보면 긁개가 가장 많고 그밖에 송곳, 긁개, 찌르개, 밀개와 덜된연모 등이 나왔다. 동물뼈 가운데에는 사슴과, 고래과, 멧돼지, 물개, 바다사자 등의 뼈가 나타난다. 9층에서는 색가오리, 참돔, 양놀래기 등 물고기 종류는 있으나 조개류는 나오지 않아 바다자원 이용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8·7·6층으로 갈수록 차츰 물고기와 조개류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8·7·6층에서 보면, 난류성인 도미과의 여러 종이 가장 많이 잡힌 것으로 나타나며 조개는 전 층위에 걸쳐 홍합, 소라 등이 굴 보다 우세하여 동삼동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상노대도 5층은 신석기 전기(부산기)에 해당된다. 5층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값은 6430 B.P.로 부산기보다 약간 이르게 나타난다. 토기는 촘촘히 찍은무늬(押捺文·押印文)가 주체를 이루며 무늬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여전히 소량의 덧무늬토기가 나온다. 뗀석기의 비율은 줄어드나 뗀돌도끼, 뗀돌자귀 등 크고, 나무를 다루는 공구가 많아지며 뗀화살촉과 그밖에 석기의 종류는 다양해진다. 뼈연모로는 낚시, 묶음낚시가 가장 많으며 뼈송곳, 삿바늘, 창끝찌르개, 새기개 등이 나오며 긁개 등 일반 뼈연모의 수도 이전보다 훨씬 많다. 대체로 5층의 토기무늬가 다양하듯이 뼈연모나 치레걸이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낚시도구의 증가인데 이들은 여러 종의 도미뼈가 출토되는 것과 관계 깊다고 보인다. 조개류는 전복, 소라, 홍합, 눈알조개, 굴, 개조개 등 21종으로 늘어났다. 짐승상을 보면 멧돼지, 사슴 이외에 수달, 고래과, 물개, 바다사자 등의 바다짐승이 늘어나는데 이러한 현상은 동삼동의 부산기에 바다자원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산우렁이, 제주나사 산우렁이, 번데기 우렁이 등 뭍달팽이 3종도 보고되었다.

상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중기의 전형적인 새김무늬(陰刻文)토기 시기(두도기)가 빠져 있다. 유적의 층위를 보면 4-3층 사이에 개펄층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 흙은 퇴적물분석 결과 바닷물에 의한 퇴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결국 개펄층은 당시의 해수면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해발고도로 미루어 당시의 바닷물은 지금보다 약 5m가량 높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한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상리에서 두도기가 보이지 않음은 이러한 해수면 상승과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신석기 후기에 속하는 4·3·2층에서는 겹입술 토기가 출현하고 있다. 이 토기는 남해안지방의 거의 모든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신석기시대 마지막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퍼져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토기는 순모래질로 크고 무겁게 만들었으며, 그을리는 방법으로 구워 검은 색을 띈다. 석기에서는 돌도끼, 대패날 등 간석기의 비중이 크며 이들을 만드는 숫돌과 그밖에 공이, 공이판, 갈돌(石棒), 갈판(碾石), 주먹괭이 등이 나타난다. 홈자귀(有溝手斧)와 곰배괭이, 흑요석 화살촉 등이 나오는데 후자는 흑요석 끼움낫의 일부로서 일본의 후까호리·아까마스 유적 등에서 나오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4층에서 나온 죠몽(繩文)토기와 함께 당시 일본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뼈연모도 다양하고 많으며 바늘, 눈금자 등의 뛰어난 연모제작 솜씨를 보여준다.

이 문화층에서는 바다짐승으로 고래, 물개, 바다사자, 바다거북의 뼈가 나오며, 사슴과와 멧돼지 이외에 여우나 개, 집쥐 등 뭍짐승의 수가 무척 늘어난다. 바다거북, 수염고래처럼 열대-아열대지방 동물의 뼈가 나오는 것은 궁산의 물소뼈나 동삼동의 말전복과 함께 한국 신석기시대에 기후 극상기-온난기가 있었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이다. 조개따기는 더욱 늘어나 2층에서 30종의 조개류가 나오는데 이는 상노대도 전 층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이다. 2층 조가비의 위에쓰 문화는 3430±60 B.P.로서 동삼동 영도기, 수가리 3문화층의 탄소연대와 잘 맞아든다. 사람의 어금니 1점이 나와서 이를 전자현미경 등의 도움을 받아 분석·조사한 결과 45세 가량의 남자이며 육식과 채식을 함께 했다고 보고되었다.

산등 유적은 조개더미와 무덤이 확인된 곳이다. 전체 6개의 퇴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4층이 순조가비층이다. 최하층인 6·5층에서 찍은 무늬와 함께 덧무늬토기가 약간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리 5층, 부산기 등의 시기에 해당할 것으로 보이며 최상층인 1층과, 그 아래 2층에서 퇴화된 겹입술 계통의 토기가 나와 신석기 후기에 해당된다.

즉 산등 유적은 신석기 전기 끝 무렵-중기로부터 후기에 걸친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석기로는 긁개·밀개 등의 뗀석기와 도끼, 돌끌, 공이 및 많은 격지들이 나왔다. 짐승뼈, 물고기 및 조개와 고둥류는 모두 상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종류와 같다. 산등에서는 왼팔에 팔찌 3개를 끼고 바로펴묻기(伸展蔣)를 한 인골이 나왔는데 13-15세 정도의 여자로 분석되었다. 산등 유적의 집석유구(集石遺構)는 조가비를 구워먹던 곳으로 추정된다. 방사성탄소 측정연대에 따르면 산등 4층의 것은 4660±110, 4,360±110 B.P.로 나타났다.

상노대도 유적의 토기발달 순서는 동삼동의 토기변천과정과 유사하며 9·8·7·6층의 덧무늬 및 민토기(조도-목도기에 해당)→5층의 찍은무늬 토기(부산기에 해당)→4·3·2층의 겹입술토기(영도기에 해당) 순으로 나타난다. 이밖에 돌산 송도나 욕지도, 연대도 등 남해안의 조개더미 유적에서도 비슷한 발달순서를 거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상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그 양이 많을 뿐 아니라 잘 분류되어 지금까지 빈약한 신석기시대의 석기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특히 신석기 초기에 해당하는 아래문화층들에 있어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제작기법이 남아있다는 관찰은 한국 선사문화의 연속성을 시사해줄 수 있는 것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신석기 후기에 가서 늘어나는 일본과의 교류 혹은 교역의 자료로서도 의미가 크다. 이와 아울러 남해안지방 유적에서 자주 등장하는 흑요석의 원산지가 어딘가 하는 문제도 앞으로 밝혀나가야 할 문제로 보인다.

상노대도의 살림살이는 이웃한 동삼동과 매우 유사한데 이는 외해성의 바다에 면한 남해안지방의 바닷가 살림살이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동삼동은 또다시 서포항 유적과 자주 견주어지는데서 이들의 상사성(相似性)과 상이성(相異性), 그리고 한국 신석기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 산등패총(부산수산대학박물관, 1989년)
  • 상노대도 유적의 석기(장호수, 손보기박사 정년기념 고고인류학논총, 1988년)
  • 상노대도(동아대학교 박물관, 1984년)
  • 상노대도 유적의 토기연구(신숙정, 백산학보 28, 백산학회, 1984년)
  • 상노대도의 선사시대 살림(손보기, 19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