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 유적

상리 유적

[ 大同 上里 遺蹟 ]

지역 대동

평남 대동군 용악면 상리 희창동에서 발견된 곳으로, 이곳은 평양-원산간 철로 중 마람(馬嵐)에서 원산(元山) 방향 5㎞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1922년 철로공사를 위한 채토작업 중 발견되었다. 유적은 남북으로 길고 낮은 구릉의 동사면에 위치해 있는데, 당시 지표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고 한다. 공사 도중 절개된 단면을 보면 표토 아래 약 90㎝ 내외로부터 20㎝ 정도의 유물 포함층이 있었다. 유물은 목곽묘로 추정되는 동서 약 2m, 남북 1.5m 내외의 장방형(長方形) 범위 내에서 발견되었는데, 대체로 동서방향으로 놓여있다. 동측에서는 거마구(車馬具)와 토기가, 남반부에는 무기가 산란되었으며 일부 유기질흔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두 차례에 걸쳐 수습되었는데, 철부(鐵斧) 2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첫 번째 조사 때 발견된 것들이다.

유물은 한국식동검을 비롯하여 다수의 철제무기와 공구, 청동제 거마구 등이 출토되었으며, 화분형토기편과 단경호도 확인되었다.

한국식동검은 길이 31.4㎝이며 등날이 경부(莖部)까지 발달하고 봉부(鋒部)가 길며 전체적으로는 세장한 형태이다. 결입부(抉入部)는 현저하지 않고 인부(刃部)와 경부는 직각으로 만난다. 이 동검의 부속구로 추정되는 백동질의 검파두식(劍把頭飾)도 1점 출토되었는데, 평면은 십자형이고 표면에 계단모양의 주름이 잡혀져 있다. 편평통형동기(扁平筒形銅器)는 길이 4.9㎝이고, 한면에는 삼각형문양이, 다른 면에는 못구멍이 있는데 칼집의 끝부분에 부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탁은 3점이 출토되었는데 길이는 9.3∼10.3㎝이다. 단면은 볼록렌즈형이며 상부에는 반원형의 뉴(뉴)가 측면과 연결되어 붙어있다. 상면과 측면에는 주조시 내형(內型)을 고정시켰던 고정못 자국(型持孔)이 있으며, 3점 중 1점에는 철제 혀가 남아있다.

철검(鐵劍)의 길이는 1m가 넘는데, 검신의 단면은 능형(菱形)이다. 목질의 칼집이 일부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칠(漆)의 흔적도 보인다. 경부에는 표면에 말았던 끈의 흔적도 확인된다. 철모(鐵矛)는 2점 출토되었는데 봉부의 단면은 능형이고 그 아래쪽는 편육각형이다. 공부는 단면 사각형인데 아래쪽으로 가면서 원형을 이룬다. 철부는 장방형이지만 크기가 서로 다른 2점이 출토되었는데, 공부에는 나무자루의 흔적이 남아있다.

마구로는 철제 재갈 2점과 재갈멈추개 1점이 있는데, 재갈은 이연식(二連式)으로 2줄의 철선을 꼬아서 만들었다. 재갈멈추개는 ‘S’자형이면서 양끝을 편평하게 만든 프로펠라 형태를 띠고 있다. 수레부속구로는 각각 2점씩 출토된 삿갓형동기와 권총형동기(車衡頭)가 있다. 삿갓형동기는 각각 높이 16.4㎝와 17.1㎝로, 내부에 주물 시 사용되었던 사형(砂型)과 목제 자루가 남아있다. 권총형동기는 구멍이 있는 쪽의 단면이 타원형이며, 반원형의 고리에 있는 원형 구멍에는 끈의 마찰흔이 남아 있다.

단경호는 높이 16.6㎝로 직립한 구연부의 중간에 2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져 있으며, 동체 하부와 바닥에는 타날흔이 남아 있다. 이와 함께 서북한지역의 목곽묘에서 단경호와 조합을 이루는 화분형토기편도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을자형동기 4점, 청동제 대구편 1점, 환두도자편 1점, 원추형동기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대동군 상리출토 일괄유물은 서북한지역에 낙랑군의 설치 이후 귀틀무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이전인 B.C. 2∼1세기에, 철기를 공반한 한국식동검문화 계통의 목곽묘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上里遺蹟(李康承, 日韓交涉の考古學, 六興出版, 1991년)
  • 平安南道大同郡龍岳面上里遺蹟調査報告(榧本龜次郞, 博物館報 6, 193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