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리 유적

굴포리 유적

[ 雄基 屈浦里 遺蹟 ]

지역 웅기

북한의 중기·후기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두만강과 동해안이 만나서 발생한 석호가 발달되어 있는 지역의 서포항 해안을 낀 얕은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해방된 이후 한반도의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가장 먼저 발굴되었다.

굴포리 유적에는 모두 7개의 지층이 확인되었는데 그 중 5지층과 6지층에서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보고자는 석기의 형태학적인 분석을 기초로 6지층은 제1문화층으로서 중기구석기시대로 편년하고 있으며 굴포리 I기 문화로 분류하였다. 이 층위에서는 돌시설물과 함께 석영암제 석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층위의 석기문화는 면목동 유적, 석장리제 6문화층과 함께 비교된다. 석재는 주로 석영을 사용했으며 모루떼기기법(Anvil Technique)을 활용하여 석기를 제작하였다.

이 유적의 석기로는 찍개, 칼, 긁개, 뾰족개 등이다. 이 유적의 석기들은 석영제 석재를 활용한 석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잔손질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박편들 중에는 상당히 얇고 예리한 것들이 있다.

5지층은 2문화층으로서 굴포리 Ⅱ기 문화라고 하며 이를 후기구석기시대로 편년하고 있다. 주요 석재로는 대리석과 각암이 있다. 이러한 석재는 보다 정교한 석기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제작기법으로는 직접떼기 뿐만 아니라 간접떼기과 눌러떼기도 사용되었다. 이와 유사한 양상은 부포리 덕산에서 지표채집된 석기들에서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유적의 석재도 주로 각암이며 간혹 부싯돌(Flint)도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끝날긁개, 찍개, 부정형의 석기 등이다.

발굴자는 굴포리Ⅰ기와 Ⅱ기를 문화적 연속선상에서 보려고 하였지만 납득할 만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위의 두 문화간의 채택된 석재가 다르고 그 석재에 대한 기법이 현격히 다른 점을 고려한다면 굴포리Ⅰ기와 Ⅱ기를 문화적 연속선상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 굴포리 I기 문화층에서 발견된 석기들이 실제 석기인가 하는데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 유적에서 석기로 추정되는 것들은 산사면에서 붕괴된 석괴가 자연적인 과정을 밟으면서 만들어진 자연석일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굴포리 Ⅱ기 문화에서 출토된 석기들과 석재로 판단할 때, 이 유적의 석기문화는 새로운 석재를 채택하여 석기를 제작하였으며 후기구석기의 진보된 양상이 뚜렷한 격지석기전통을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

돌날(blade)이나 돌날제작과 연관된 석기나 돌날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아직 이 유적에서 돌날떼기 기법을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유적에서 보여지는 석기는 주로 격지이며, 주로 원석에서 격지를 떼어낸 후 그 박편의 주변을 돌아가며 단순하게 타격을 하여 날을 만든 양상이 뚜렷하다. 주로 단면가공의 격지석기류가 우세하고 양면가공도 상당히 적용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편 보고된 석기들 중에는 눌러떼기나 간접떼기의 기술적인 특성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양상은 한반도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 중에서 청원샘골 유적과 창내 유적과 마찬가지로 격지석기전통을 갖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여진다.

참고문헌

  • 韓國의 舊石器(鄭永和, 韓國考古學報 19, 韓國考古學會, 1986년)
  • 朝鮮半島(後藤 直, 日本の舊石器文化 4, 1976년)
  • 서포항 원시유적 발굴보고(김용간·서국태, 고고민속론문집 4, 1972년)
  • 서울 面牧洞遺蹟 發見 舊石器의 形態學的 調査(黃龍渾, 慶熙史學 2輯, 1970년)
  • 조선의 구석기시대 문화인 굴포문화에 관하여(도유호, 고고민속 2, 196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