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네온의 역사
- 요약
반도네온(Bandoneón)은 독일의 악기 제작자 하인리히 반트가 콘서티나를 개량하여 만든 악기이다. 반도네온은 발명 초기 화성을 연주하기 편리하고 휴대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교회의 오르간이나 하모늄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로 전해지고 이 지역에서의 탱고 탄생과 맞물리며 반도네온은 탱고의 반주 악기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20세기 독일과 아르헨티나에서 모두 반도네온이 전성기를 누리며 현대식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었으나, 독일에서 나치정권의 출현 이후 반도네온을 금지하였으며 반도네온 공장은 국영화된 후 쇠퇴일로를 걸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걸출한 반도네온 전문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가 형성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연주자로 반도네온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1. 반도네온의 기원
반도네온은 저먼 (concertina)의 일종으로 독일의 하인리히 반트(Heinrich Band, 1821~1860)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인리히 반트는 독일 크레펠트(Krefeld) 출신으로 음악교사 겸 악기 제작자였다. 그는 마을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도 활동하였는데 여기에서 콘서티나를 접한 후 콘서티나의 매력에 빠졌다. 그러나 콘서티나의 음역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여 음역을 넓히려는 시도를 하였고 1846년 콘서티나를 개량한 반도네온을 발명하였다.
반트가 제작한 초기의 반도네온은 각 면에 14개씩 모두 28개의 버튼이 달린 바이소노릭(bisonoric)으로 56개의 음을 낼 수 있었다. 반트가 고안한 반도네온은 원래 그가 살던 지역의 교회에서 하모늄(harmonium) 대체 악기로 쓰이기도 했다.
반도네온의 기원이 된 콘서티나
그러나 반도네온이 하인리히 반트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앨버트 비어(Albert Wier)는 반도네온은 원래 1830년대에 독일의 켐니츠에서 울리히(Carl Friedric Uhlig)가 만든 것인데 당시 악기 판매상이었던 하인리히 반트가 ‘반도네온’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일의 반도네온 제작자인 해리 게운스(Harry Geuns)는 또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1835년 울리히가 저먼 콘서티나를 발명한 이후에 짐머만과 반트가 저먼 콘서티나와 키의 배열이 다른 콘서티나를 출시하였는데, 이 세 종류의 콘서티나가 각각 반트의 라이니시 시스템(Rheinische system), 울리히의 켐니츠 시스템(Chemnitz system), 짐머만의 칼스펠트 시스템(Carlsfelder system)으로 발전되었고 반트의 라이니시 시스템이 곧 반도네온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마이클 샤피로(Michal Shapiro)는 반도네온은 짐머만(C. Zimmernan)이 발명해서 1849년 파리에서 열린 산업 박람회에 출품하였으며 원래 이름이 칼스펠트 콘서티나(Carlsfelder Konzertina)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1850년 하인리히 반트가 이 콘서티나를 광고했을 뿐 그가 반도네온을 발명했다는 근거는 없으며, 단지 반트의 고향인 크레펠트(Krefeld)에서 이 악기가 반도네온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반도네온이 콘서티나를 모체로 만들어진 악기라는 것에 대해서는대체로 이견이 없으며 단지 반트가 콘서티나를 참조하고 개량하여 독자적으로 만든 것인지, 명칭을 붙이고 보급에만 관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 1850~1900년의 반도네온
1) 독일
반트는 초기의 반도네온을 제작한 후 이를 더 개량하여 64개의 음, 88개의 음을 내는 반도네온을 제작하였다. 64개의 음을 내는 반도네온에는 오른쪽에 17개, 왼쪽에 15개, 모두 32개의 버튼이 있다. 88개의 음을 내는 반도네온에는 오른쪽에 23개, 왼쪽에 21개, 모두 44개의 버튼이 달렸다. 반도네온은 제작 이후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가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인해 오르간이나 하모늄이 없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담당하는 악기로 많이 쓰였다.
반트는 반도네온 레퍼토리를 만드는 일에도 공헌하였다. 피아노곡을 반도네온용으로 편곡하기도 하였고 반도네온으로 연주할 수 있는 왈츠, 폴카도 작곡하였다. 반트가 죽은 후 반도네온 공장은 그의 아들이 물려받았는데 그는 반도네온 연습을 위한 스케일과 코드 집을 펴냈으며 이는 반도네온 최초의 교습서가 되었다.
에른스트 루이스 아놀드(Ernest Louis Arnold, 1828~1910)는 자기 이름의 이니셜을 딴 반도네온 공장 ELA사를 설립하였다. 그는 독일뿐 아니라 아르헨티나로 반도네온을 수출하여 반도네온의 사용 지역을 확장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2) 아르헨티나
1870년경 독일의 선원과 이민자들에 의해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아메리카로 유입되었다. 독일에서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선교사들 역시 예배 때 오르간을 사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휴대가 편리한 반도네온을 사용하였다.
독일에서 수입된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즉각적인 인기를 끌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우루과이의 항구에 위치한 카페 등지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 시기가 탱고의 탄생과 맞물리며 반도네온은 탱고 오케스트라인 오르케스타 티피카(orquesta tipica)에서 가장 돋보이는 악기로 자리잡았다.
3. 20세기의 반도네온
1) 독일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반도네온의 키보드 시스템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결과 라이니시 시스템을 토대로 하여 124개의 음을 내는 아인하이츠 콘서티나 시스템(Einheits-Konzertina system)과 144개의 음을 내는 아인하이츠 반도네온 시스템(Einheits-Bandoneon system)이 살아 남았다. 라이니시 시스템은 아르헨티나에서만 건재하였는데 130개, 142개, 156개의 음을 내는 모델에 사용되었다.
1920년대에 통일된 시스템을 받아들인 이후에 반도네온 밴드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 때의 반도네온은 피콜로(piccolo), 노말(normal), 베이스(bass)의 세 가지 크기로 제작되었다.
아래는 1927년 ELA사에서 생산한 모델이다. 장미목(rosewood) 커버에 진주층(mother of pearl)으로 만든 꽃 모양 장식이 있는 아르 누보 데코(Art Nouveau decor) 양식을 볼 수 있다.
ELA(Ernst Louis Arnold)사의 모델
진주층으로 만든 꽃 모양 장식
ELA사에서는 ELA와 Premier 등의 모델을 제작하였다. ELA사 외에도 반도네온의 인기에 발맞추어 현대식 공장들이 설립되었고 다양한 모델이 제작되었다. 1910년 독일에서는 에른스트 루이스 아놀드의 아들인 알프레드 아놀드(Alfred Arnold)가 에른스트 폴(Ernst Paul)과 함께 자신 이름의 이니셜을 딴 반도네온 공장 AA사를 설립하였고 AA(Double A), Premere, Campo 등의 모델을 출시하였다. AA사의 반도네온은 그 이후에 제작된 반도네온 음색의 기준이 될 만큼 품질이 뛰어났다.
ELA사와 AA사 외에 대표적인 20세기 초 반도네온 제작자 및 제작사로는 마티스 호너(Mathis Hohner), 매이너 앤드 헤롤드(Mainer and Herold) 등이 있다. 호너는 Germania, Tango, La Tosca, El Pentagrama, Cardenal 등의 모델을 제작하였다. 한편 브라질 제작사인 대니얼슨(Danielson)에서도 반도네온을 생산하였으나 브라질 외의 남미 국가로 수출하지는 못하였다.
아래는 AA사의 반도네온으로 독일 칼스펠트(Carlsfeld)에 있는 알프레드 아놀드(Alfred Arnold)의 공장에서 1929년 제작한 것이다. 이 반도네온의 왼쪽에는 33개의 버튼이 있는데 그중 31개는 두 개의 음을 내는 바이소노릭(bisonoric)이고 두 개는 유니소노릭(unosonoric)이다. 이 반도네온은 모델명 Premier로 AA사의 반도네온 중 가장 고품질의 리드가 장착되어 있다.
1929년 생산된 AA사의 반도네온
반도네온은 휴대가 간편하고 음악적인 지식이 없어도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 시기에 특히 대중적인 악기로 인기를 끌었고 그 결과 독일 전역에 많은 반도네온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졌다. 1939년 독일 내에는 686개의 반도네온 오케스트라가 있었는데 이는 독일 전역의 풋볼 클럽의 수보다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반도네온은 특히 노동자 계층에서 성행하였기 때문에 반도네온 오케스트라들은 대부분 좌파 성향이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독일 내 모든 반도네온의 연주가 금지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구의 감소와 독일 제조사의 파산으로 반도네온의 대량 생산은 중단되었고 그 이후 대중음악에서 간헐적으로만 출현하였다.
AA사 반도네온은 1948년까지 칼스펠트의 공장에서 생산되다가 동독 정부에 의해 국영화되었다. ELA사는 1950년까지 반도네온을 생산하였다. 오버트하우젠(Obertshausen)에 있는 아르노 아놀드(Arno Arnold)사에서는 1970년대까지 반도네온을 제작하였으나 여기에서 생산된 반도네온은 탱고 음악가들에게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그 후 독일에서의 반도네온 생산은 거의 멈추었다.
현재는 새로운 반도네온 제작사들이 독일의 몇몇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베를린에는 프리미어(Premere)사와 클라우스 구트야르(Klaus Gutjahr)사가, 작센(Saxony)주에서는 우웨 하르텐하우어(Uwe Hartenhauer)와 반도니온 앤 콘서티나 팩토리(Bandonion and Concertina Factory)가, 칼스펠트에는 로버트 볼슐레거(Robert Wallschläger)사가 있다.
구트야르사의 반도네온
초기의 반도네온 오케스트라 작곡가로는 하인리히 베를(Heinrich Werle, 1887~1955)이 있는데 그는 〈Aeltere Gebrauchsmusik〉과 〈네 대의 반도네온을 위한 Musik zu neueren Volksweisen〉을 작곡하였다. 쿠르트 바일(Kurt Weil, 1900~1950)과 하인리히 월레(Heinrich Werle)도 반도네온곡을 작곡하였다. 마우리치오 카겔(Mauricio Kagel)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로 독일에서 활동하였는데 반도네온곡인 <Pandorasbox>(1960), <Aus zungen stimmen>(1972), <Praeludium fuer Bandoneon>(1978), <Tango Aleman>(1978) 등을 작곡하였다.
독일 외의 반도네온 작곡가로는 일본의 도루 다케미츠(Toru Takemitsu)와 미국의 고든 머마(Gordon Mumma)가 있다. 다케미츠는 <Crosstalk>(1972)를, 마마는 <Mesa>(1966)를 발표하였다. 반도네온 오케스트라에 관한 문헌은 베를린의 코스터 출판사와 라이프치히의 슈베르트사(Schubert and Co.), 프리츠 칼(Fritz Kahle)사, 피베크(Viehweg)사에서 출판하였다.
초기에 생산되었던 반도네온 모델들은 현재 리히텐베르크에 있는 프로이스가(Preuss family)의 반도네온 박물관과 프라이부르크(Freiburg)의 키르히차르텐(Kirchzarten)에 있는 슈타인하르트가 (Steinhart family) 컬렉션에 소장되어있다.
2) 아르헨티나
독일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142개의 음을 내는 반도네온과 라이니시 시스템으로 된 바이소노릭 반도네온을 제작하여 수출하였다. 1920~30년대에 AA사와 ELA사에서 제작한 3만여 대의 반도네온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수출되며 사랑을 받았다.
193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모습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은 거의 독일에서 수입한 것들이며 수입상이 독점권을 얻어 판매하였다. 수입상은 독일에서 들여온 반도네온에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를 붙여 판매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AA사의 반도네온은 에밀리오 피처(Emilio Pitzer)에 의해 수입되었다. 샵 앤 벨트렌(Shrp and Veltren)사도 AA사의 모델 중 하나인 Premere를 수입하였는데 이 모델들은 매우 견고하고 마감이 뛰어난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 반도네온의 광고에는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완벽하게 해석한 유일한 악기”라는 문구가 실릴 정도로 독일 제작사들은 탱고에 최적화된 악기를 제작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 외의 제작사와 모델로는 마이넬 & 헤롤드(Meinel & Herold)사의 Tres B, 호너(Hohner)사의 Tango와 Cardenal 등이 있다.
아래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광고인데, “합법적인 브랜드 AA”이며 악기마다 고유의 등록된 트레이드마크가 새겨져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점 판매상들은 수입한 반도네온에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와 시리얼 넘버를 붙여 정통성을 지닌 악기로 여기게 하여 비싼 값에 거래하였다.
아르헨티나의 판매상들이 낸 반도네온 광고
반도네온이 대중들의 폭넓은 호응을 얻으면서 반도네온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작곡가로는 반도네온 소나티나를 비롯한 반도네온 소품들을 작곡한 후안 호세 카스트로(Juan Jose Castro, 1895~1968)와 반도네온을 위한 프렐류드와 푸가를 지은 비르트 마라뇨(Virt Maragno, 1928~), 알레얀드로 바를레타(Alejandro Barletta, 1925~)와 그의 제자인 르네 마리노 리베로(Rene Marino Rivero, 1936~)를 들 수 있다. 바를레타는 “클래식 반도네온의 아버지”로 불리며 <Preludios Cosmicos>, <Luna 1&2>, <Suites para Ninos>, <Venus 1-18> 등 반도네온과 기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플루트, 타악기 등과의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반도네온 오케스트라와 뛰어난 기량의 전문 연주자도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아니발 트로일로(Aníbal Troilo)는 20세기 유명한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의 거장으로는 아스토르 피아졸라(Ástor Piazzolla, 1921~1992)를 들 수 있다. 그는 활동 초기(1939~ 1944년)에 트로일로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피아졸라는 탱고에 클래식 음악에서 따온 작곡 방식과 재즈를 결합하여 누에보 탱고(nuevo tango)라는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반도네온을 탱고의 반주 악기에서 콘서트홀의 악기로 격상시킨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외의 걸출한 연주자로는 페드로 로렌츠(Pedro Laurenz), 페드로 마피아(Pedro Maffia), 레오폴도 페데리코(Leopoldo Federico), 네스토르 마르코니(Nestor Marconi), 후안 호세 모살리니(Juan Jose Mosalini) 등이 있다.
한편 독일에서의 반도네온 생산이 거의 멈추고 반도네온이 비싼 값에 거래되자 2014년 아르헨티나의 라누스 대학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자체 생산하는 반도네온을 기획하여서 기존 값의 절반이나 1/3 정도의 가격으로 보급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Carlos G. Groppa. The Tango in the United States: A History. Jefferson, North Carolina & London: Mcfarland & Company, Inc. 2004.
- Zuccchi, Oscar. “” Todotango.
- “Bandoneon.” .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