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배럴 오르간

여러 가지 배럴 오르간

요약 배럴 오르간(Barrel organ)은 사용된 공간과 용도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교회의 예식에서 오르가니스트를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교회용’ 배럴 오르간이고, 다른 하나는 오디오가 없던 시절 마치 가정의 오디오와 같은 역할을 했던 ‘실내용’ 배럴 오르간이다. 이와는 별도로, 시계장치 배럴 오르간이 독일어권에서 인기를 끌었다.

1. 교회용 배럴 오르간과 실내용 배럴 오르간

배럴 오르간은 일상의 공간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배럴 오르간은 사용 장소에 따라 교회용 배럴 오르간과 실내용 배럴 오르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배럴 오르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악기의 규모이다. 일반적으로 교회용 배럴 오르간은 실내용보다 규모가 크다. 교회용 배럴 오르간의 경우, 하나의 배럴이 대개 7곡에서 10곡 정도를 담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하나의 배럴 오르간에 네 개의 배럴이 설치된다면, 그 배럴 오르간이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상당히 방대할 것이다.

또한 교회용과 실내용 배럴 오르간에 담긴 레퍼토리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 교회용 배럴 오르간이 주로 주일 교회 예배에서 사용되는 찬송가들을 담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일상 공간에서 사용되는 실내용 배럴 오르간은 대개 오페라에서 발췌한 유명한 선율이나 민요 등이 배럴에 프로그램 되었다.

특히 녹음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 가정에서 사용되던 실내용 배럴 오르간은 마치 가정용 오디오와 같은 기능을 했다. 실내용 배럴 오르간에 프로그램 되었던 음악들은 그 시대에 유행한 음악들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18세기와 19세기 초반 실내용 배럴 오르간에 담겼던 음악들이 당시의 공공음악회에서 연주되던 심각한 음악이 아닌, 대개 밝고 경쾌한 가벼운 곡들이었다는 점은 배럴 오르간이 당시 대중들의 정서를 밀접하게 반영하는 악기임을 보여준다.

19세기 런던에서 베이츠 앤 선(Bates & Son)사가 제작한 교회용 배럴 오르간

19세기 런던에서 베이츠 앤 선(Bates & Son)사가 제작한 교회용 배럴 오르간 더글라스의 세인트 매튜 교회(St Matthew Church, Douglas)에서 사용되었다.

교회용 배럴 오르간의 역사는 영국 교회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영국 교회에서 배럴 오르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0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배럴 오르간은 영국 교회 내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18세기 중엽까지 배럴 오르간은 교회의 관악 밴드의 대체물로, 혹은 마땅한 오르간 주자가 없을 경우 오르가니스트를 대신해서 음악을 연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국 교회용 배럴 오르간의 절정기는 1760년에서 1840년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 130여 개의 배럴 오르간 제조사들이 수백 개의 배럴 오르간을 만들었고, 주로 그들의 근거지는 런던이었다. 이들 초기 제조업자들 중에는 택스(John Tax), 로스트랜드(E. Rostrand) 등이 있었다. 이들이 만든 오르간은 대개 네 개의 스톱과 여덟 개의 곡을 수록한 배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이 만든 오르간들 중에는 오늘날까지 작동되는 악기들도 있다.

2. 시계장치 배럴 오르간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배럴 오르간이 거의 손을 이용해서 작동되고 자동 연주되는 것이었다면, 오스트리아에서 제조되는 배럴 오르간들 중에는 시계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것도 있었다. 시계의 추가 회전하는 에너지를 전환시켜 그 힘으로 오르간의 배럴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때로 오르간을 작동시키는 하강 무게는 60kg에 달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시계장치 배럴 오르간은 매우 정교한 기계여야 했다. 이러한 오르간은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남부 독일 지방의 정교한 시계 제작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만들었다. 그들의 수공예 기술은 당시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고, 이러한 기술은 배럴 오르간을 넘어, ‘음악 시계’(musical clock)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오르간과 스피넷이 장착된 음악 시계 (1625년경, 독일 제작)

오르간과 스피넷이 장착된 음악 시계 (1625년경, 독일 제작)

음악 시계의 발전을 주도했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빈이었다. 당시 런던이 단순한 종소리를 내는 시계를 선호하는 곳이었던 반면, 오스트리아의 시계장인들은 파이프를 통해 소리나는 음악을 주로 만들었다. 특히 빈에서 만들어지는 오르간 시계는 ‘플루트 시계’(Flötenuh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빈에서 제작되던 많은 오르간 시계들이 18세기 빈의 특수한 형태의 목관 파이프인 ‘빈 플루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1720년대에서 1820년까지가 빈의 음악 시계의 황금기였다. 이 오르간 시계에서 연주되던 음악들은 오페라 서곡, 아리아, 플루트 협주곡, 행진곡, 춤곡 등 당시 인기를 끌던 음악들을 편곡한 것이었고, 때로는 플루트 시계를 위해 별도로 작곡된 음악이 들어가기도 했다.

1780년경, 독일에서 제작된 플루트 시계

1780년경, 독일에서 제작된 플루트 시계

배럴 오르간의 전성기였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 거의 모든 파이프 오르간 제조업자들이 배럴 오르간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계몽주의와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교회의 권력이 예전과 같지 않던 시기, 파이프 오르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들자 배럴 오르간은 거대한 대형 오르간의 대체물이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최초의 음악사가 중 한 명인 찰스 버니(Charles Burney, 1726~1814)는 영국에서의 배럴 오르간의 인기를 두고 이런 글을 남겼다. "몇몇 영국 오르간 장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은 배럴을 일류 연주자의 손가락에 못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을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스웨덴의 오르간 제작자인 페어 슈트란트(Pehr Strand)가 만든 음악 시계

스웨덴의 오르간 제작자인 페어 슈트란트(Pehr Strand)가 만든 음악 시계

참고문헌

  • Nwanazia, Chuka. “” Dutch Review(2018. 12. 10).
  • “Barrel organ.” .
  • “Barrel organ.” (Grove Music Online).
  •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 “Mechanical instrument.” (Grove Music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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