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기원 및 역사

첼로의 기원 및 역사

현악기

1. 첼로 명칭의 역사적 의미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비올로네(violone)’는 첼로의 현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첼로의 현은 본래 양의 창자로 만들어졌다.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들어진 현은 저마다 그 굵기가 달랐는데, 두꺼운 현은 울림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께가 가는 현에 비해 음량도 크지 않았다. 당시에는 길이가 긴 현이 굵기도 가늘고 더 좋은 소리를 냈기 때문에, 첼로의 전신인 비올로네는 가능한 길게 제작되었다. 따라서 비올로네는 ‘큰 비올’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현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거트현에 미세한 철선을 감은 현이 개발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철선을 감은 현은 가늘면서도 길이가 짧았으며 이러한 현의 변화로 악기의 크기도 작아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악기에 ‘비올론첼로(violoncello)’ 즉 ‘작은 비올’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으며, 이로써 첼로는 큰 비올과 작은 비올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명칭을 지니게 된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올론첼로’라는 명칭으로 악기를 지칭하는 출판물도 많아졌지만, 18세기까지도 ‘비올로네’라는 명칭은 여전히 사용되었다.

2. 18세기까지의 첼로

1534-36년경. 페라리의 그림 <출처: Wikimedia>

시대와 장소에 따라 악기의 명칭과 크기가 달랐던 첼로는 그 전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프스 산맥의 남쪽 지역에서 오늘날과 같은 첼로가 등장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명칭과 크기, 그리고 조율법에 있어서 오늘날과 같은 첼로의 모습이 나타났던 유럽 남부 지역은 첼로 발전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로 전해진다. 16세기 악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가우덴치오 페라리(Gaudenzio Ferrari, 1471년경-1546)의 그림을 들 수 있는데, 이 그림에서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악기의 형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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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였던 미하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1571-1621)의 논문 『신타그마 무지쿰(Syntagma Musicum)』에 소개된 베이스 바이올린. 5개의 현으로 된 첼로의 전신을 보여준다. 1619년경<출처: Wikimedia>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악기의 모습. Pieter Claesz, 1623년 <출처: Wikimedia>

가스파로 다 살로가 제작한 베이스 비올. 16세기 후반 <출처: Wikimedia>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악기를 제조한 제조가로 크레모나에서 활동한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1511년경-1577)와 그의 후손들, 그리고 브레시아에서 활동한 가스파로 다 살로(Gasparo da Salo, 1540-1609)와 그의 제자 지오 파올로 마지니(Gio Paolo Maggini, 1580-1630년경)를 들 수 있다. 초기의 첼로도 바이올린의 전신과 마찬가지로 악기의 목(Neck)이 몸통과 평행하게 뻗은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첼로의 목을 뒤쪽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제작하면서 브릿지에서 몸통 아래로 내려가는 힘이 증가되어 현에서 악기로 전해지는 힘이 커지게 되었으며, 이로써 더 큰 음량의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는 몸통의 길이가 75-76cm인 첼로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 이 길이는 첼로의 표준이 된다. 지금까지도 후대의 많은 제작자들이 현악기 제조의 명가라 할 수 있는 스트라디바리의 첼로를 모방하여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750년대까지도 스트라디바리의 첼로보다 더 큰 사이즈의 첼로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18세기에도 다양한 사이즈의 첼로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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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rd Dou, 클라비코드 앞에 앉아 있는 여인, 1665년경.
오른편에 17세기의 첼로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Wikimedia>

첼로(왼쪽)와 비올(오른쪽) <출처: Wikimedia>

첼로와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비올은 꽤 많은 차이를 보인다. 눈으로 보이는 외관상의 차이는 악기 몸통의 모양과 현의 개수의 차이다. 첼로는 바이올린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비올은 몸통 부분이 바이올린 족의 모양과 다른 곡선을 그리고 있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첼로는 현이 4개, 비올은 보통 현이 6개라는 점도 확연한 차이라 할 수 있다. 비올의 경우 4개, 5개 현을 갖는 악기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위의 그림과 같이 저음을 내는 7번째 현이 있는 것도 있다. 또한 오늘날의 기타와 같이 비올의 지판이 ‘프렛(Fret)’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도 두드러지는 차이다.

16세기에는 첼로를 바닥이나 스툴에 내려놓고 비스듬하게 연주했는데, 이러한 연주 자세는 175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1700년 가까이 되면서 연주자가 무릎 사이에 악기를 두고 연주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악기를 몸에 더욱 밀착시켜 연주하는 자세를 통해 연주자는 왼손의 운지법(fingering)과 오른손의 활 테크닉을 더욱 민첩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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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의 첼로 연주 자세:
첼로를 스툴 위에 올려 놓고 연주 <출처: Wikimedia>

오늘날의 첼로 연주 자세:
연주자가 무릎 사이에 첼로를 두고 몸에 밀착하여 연주.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의 연주 모습(1978년) <출처: Wikimedia>

3. 18세기에서 19세기의 첼로

1700년 이전 마지니와 아마티 가문이 작은 크기의 첼로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이 보다 작은 크기의 첼로 전형을 제시한 제조가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였다. 스트라디바리는 1707년경, ‘forma B’, ‘forma B piccola’ (piccola는 이탈리아어로 ‘작은’이라는 뜻이다)라는 라벨의 악기를 제작하여, 첼로의 크기를 축소시키는데 성공했다. ‘forma B’ 라벨의 모델은 스트라디바리가 1680년에서 1701년 사이에 제작했던 30개의 첼로보다 길이가 더 짧고 폭이 좁은 것으로, 길이는 75-6cm, 최대폭은 44.5cm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18세기에 첼로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첼로 내부의 는 더욱 강화되었으며 목 부분은 더 가늘고 길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는 연주자가 4옥타브의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지판의 길이가 길어졌다. 엄지손가락을 지판 아래에 대는 것은 물론 줄 위에 수직으로 위치시키는 을 이용해, 높은 음역대의 소리도 연주할 수 있었다. 또한 18세기에는 ‘작은 첼로’라는 의미의 ‘피콜로 첼로’도 제작되었으며, 피콜로 첼로는 오늘날과 같은 4개의 현이 아닌 5개의 현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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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ais Stradivari(세르베 스트라디바리), 1701년 스트라디바리가 작은 모델로 제작하기 이전에 만들었던 큰 모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악기 길이가 79cm, 폭이 47cm로 제작 <출처: Wikimedia>

5개의 현으로 제작된 피콜로 첼로 <출처: Wikimedia>

어느 음악 애호가의 초상화(1736년) Cornelis Troost의 작품 <출처: Wikimedia>

1680년에서 1740년 사이의 이탈리아에서는 첼로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던 것으로 기록된다. 현악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현악기 레퍼토리가 늘어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스트라디바리는 물론이고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우수한 첼로가 제작되었다. 또한 오스트리아 티롤(Tirol)에서 활동했던 야콥 슈타이너(Jacob Stainer, 1617년경-1683)가 독일-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제조가로 활동했으며, 훗날 미텐발트 공방(Mittenwald School)을 설립한 클로츠 가문(Klotz family) 역시 오스트리아 지역을 대표하는 제조가로 꼽힌다.

영국에서는 윌리엄 베이커(William Baker, ?-1685)가 옥스포드에서 ‘영국식’이라 할 수 있는 초기의 첼로를 제작하였다. 이후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의 제조가들이 첼로 제작에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데, 18세기 후반에는 루포 가문(Lupot family)이, 19세기에는 장 밥티스트 비욤(Jean-Baptiste Vuillaume, 1798-1875)이 수준 높은 악기를 제작한 제조가로 명성을 떨쳤다.

19세기의 첼로는 18세기에 완성된 기본적인 첼로 디자인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19세기의 첼로 제작자들 역시 이탈리아의 이전 모델, 특히 스트라디바리의 ‘forma B’ 라벨의 모델을 기초로 제작했으며, 이전에 제작된 악기들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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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감상: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1악장


(1) 안너 빌스마(Anner Bylsma)의 바로크 첼로 연주

(2)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현대 첼로 연주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그 시대의 관습대로 연주하는 ‘’도 많은 청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전의 연주방식을 재현하는 정격연주는 기준 음높이를 현대의 음높이보다 더 낮게 조율하며, 현대 연주에 비교할 때 민첩성은 떨어지지만 음색이 따뜻한 특징을 보인다.

4. 20세기의 첼로

19세기에 전형이 만들어진 첼로는 20세기에도 큰 변화 없이 이전의 모습을 이어가게 된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제작된 올드 첼로가 여전히 최고의 악기로 평가되지만, 새롭게 제작된 우수한 악기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세기 첼로의 가장 큰 특징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첼리스트의 수가 증가하고 첼로의 테크닉이 발전하면서, 첼로라는 악기가 솔로 악기로 더욱 확고한 위치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첼로 솔로를 위한 레퍼토리도 이전에 비해 두드러지게 증가하게 되었다.

20세기 첼로의 주요한 변화는 첼로 몸통을 바닥에 고정시키는 이 첼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여성 첼리스트도 위엄 있는 자세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엔드핀의 발명은 곧 20세기에 활동하는 여성 첼리스트의 활약을 약속하게 되었다. 또한 20세기에 대규모의 콘서트 홀이 지어지면서 음량이 큰 악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으며, 연주자들은 보다 큰 음량을 얻기 위해 금속으로 만들어진 현 혹은 금속으로 를 감은 현을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Violoncello”,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Campbell, The Great Cellists, Trafalgar Square Publishing, 1988.
Cowling, The Cello, Charles Scribner’s Sons, 1975.
Lusterman, 21st-Century Cellists, String Letter Publishing, Inc., 2001.
Pinksterboer, Tipbook Cello, The Tipbook Company bv, 2004.
Stowell,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Cello,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Walden, One hundred years of Violoncello: A History of Technique and Performance Practice, 1740-1840,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Samuel Adler, 윤성현 역, 『관현악 기법 연구』, 수문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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