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오르간의 역사

요약 극장오르간(Theatre organ)은 무성영화를 반주하던 영화관의 오케스트라를 대체하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1900년대 초에 로버트 호프존스가 극장오르간의 원형인 유니트 오케스트라를 고안하였다. 1910년 월리처사에서 그의 아이디어를 매입하여 월리처 극장오르간을 탄생시켰다. 극장오르간의 웅장한 소리와 실용성에 매료된 극장주들은 앞다투어 극장오르간을 설치하였다. 1920년대 무성영화의 전성기에 맞추어 극장오르간도 전성기를 누리며 미국 전역에서 약 7~8천여 대의 극장오르간이 설치되었다.

특히 월리처사의 극장오르간은 마이티 월리처라고 불리며 극장오르간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1927년 유성영화가 등장하며 극장오르간은 자리를 잃게 되었고 많은 수의 극장오르간들이 옮겨지거나 제자리에서 방치되었다. 1950년대 LP레코드의 발명과 하이파이 기술의 등장으로 극장오르간은 잠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오늘날 극장오르간협회인 ATOS는 극장오르간의 보존과 홍보를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현재 몇 백 대 정도의 극장오르간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보존되어 있다.

1. 영화의 탄생과 극장오르간

1900년대 초반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는 새로운 예술 형태인 ‘영화’가 탄생하여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영화는 픽처쇼(picture show)라고도 불리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대규모의 화려한 외관을 갖춘 영화관이 인기를 끌었다. 대도시에 생긴 이러한 영화관들은 ‘무비 팰리스’(movie palace), ‘활동 사진의 대성당’(cathedral of the motion picture)이라 불릴 만큼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영화의 매력에 빨려 들었다. 더구나 전쟁의 위협 등으로 어두운 사회 분위기에서 화려한 영화관과 영화 속의 또 다른 현실은 삶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도피처였다.

초기의 영화는 움직이는 영상은 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 무성영화(silent movie)였기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를 북돋기 위하여 영화를 반주하는 별도의 음악이 필요했다. 대형 영화관의 경우 영화는 큰 쇼의 한 부분이었다. 영화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었고 막간에 노래와 춤이 제공되었다. 음악은 이러한 쇼를 반주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래서 극장들은 보통 몇 명의 연주자들을 고용하거나 규모가 큰 극장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다른 극장들과 차별화 전략을 고심하던 극장주들은 ‘활동사진의 대성당’이라는 호칭에 걸맞도록 파이프오르간을 극장에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 아이디어의 실행으로 연주자들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극장에 설치된 오르간은 영화를 반주하고 당시의 유행하는 음악들을 연주하는 데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한편 오케스트라를 고용할 여유가 없는 소규모의 영화관에서는 자동피아노나 피아노에 여러 개의 파이프를 부착하고 특수 사운드 효과를 별도의 캐비닛에 넣은 포토플레이어를 사용하였다.

영국 출신의 음악가이자 발명가인 로버트 호프존스는 이러한 악기들을 기반으로 하여 1900년대 초에 극장오르간의 시초인 유니트 오케스트라(unit orchestra)를 만들었다. 유니트 오케스트라란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내는 악기를 뜻한다.

로버트 호프존스

1900년대 초에 호프존스가 고안한 유니트 오케스트라는 1910년 월리차사(Wurlitzer Company)에 의해 채택되어 본격적인 극장오르간으로 발전하였다. 당시의 명칭은 월리처 호프존스 유니트 오케스트라(Wurlitzer Hope Jones Unit-Orchestra)였다.

월리처 호프존스 유니트 오케스트라

이 모델은 곧 극장 소유주들의 관심을 끌었고 몇 백 대가 팔렸다. 이후 다른 회사들에서도 이를 모방한 극장오르간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2. 극장오르간의 개량과 발전

호프존스는 기존의 오르간을 영화의 반주라는 용도에 맞게 개조하였다. 그가 이룬 획기적인 기술적 발전으로는 전기 뉴매틱 액션(electro pneumatic action)과 유니피케이션(unification)의 고안, 혀 모양의 스톱탭(stop tab) 사용, 새로운 음색의 개발 등을 들 수 있다.

전기 뉴매틱 액션은 이전에는 로드와 와이어를 사용하여 건반과 오르간 파이프를 연결하였으나 전선을 통하여 콘솔과 그 외의 부분들을 연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필요에 따라 콘솔을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었다.

유니피케이션은 각 랭크에 오프세트 파이프를 추가하여 한 파이프로 다른 매뉴얼의 음높이들도 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결과 적은 수의 랭크로도 다양한 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로버트 호프존스는 또한 극장오르간에 새로운 음색을 부여하는 일에 힘썼다. 이 결과 기존 오르간에 없었던 새로운 음색이 생겼는데, 대표적으로 티비아 클로자(Tibia Clausa), 티비아 플레나(Tibia Plena), 다이아폰(Diaphone)이 있다. 이러한 소리들은 비브라토가 많으며 풍성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극장오르간 특유의 음색을 지녔다.

이 외에도 피아노, 드럼, 심벌즈, 실로폰, 마림바, 벨, 차임, 캐스터네츠, 우드 블록, 슬레이벨 등을 오르간 건반으로 연주할 수 있게 하여 영화의 상황에 맞는 효과음을 연출하였다.

3. 극장오르간의 전성기

극장오르간이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오르간 제조사들이 앞다투어 극장오르간 시장에 합류하였다. 대표적인 극장오르간 제조사로는 미국의 오시코시(Oshkosh)와 위스콘신(Wisconsin)에 위치한 바톨라 악기사(The Bartola Musical Instrument Company), 페이지 오르간사(The Page Organ Company), 마르 앤 콜튼사(The Marr & Colton Company), 로버트 모튼사(The Robert-Morton Company) 에스티 오르간사(Estey Organ) 등이 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오르간을 만들던 제작사들도 극장오르간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킴벌사(The Kimball Company), 영국의 존 컴튼 오르간사(John Compton Organ Company)와 윌리엄 힐 앤 선 앤 노먼 앤 비어드사(William Hill & Son & Normnan & Beard Ltd, 보통 힐, 노먼 앤 비어드라고 불림)가 있다.

아래는 보스턴의 엑서터 스트리트 극장의 내부이다. 이 극장은 천여 좌석이 있는 대형 극장이었으며 에스티사(Estey)의 극장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모션 픽처 뉴스》(Motion Picture News), 1919년 8월 9일자 판에 실린 에스티 오르간사의 광고에 삽입된 것이다. 이 광고에는 “보스턴의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엑서터 스트리트 극장에서는 최근 천여 석의 좌석을 구비하며 에스티 극장오르간을 설치하였다. 이 오르간에는 3개의 매뉴얼이 있어서 영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스턴에 있는 일류 극장 중 5개의 극장이 에스티 극장오르간을 설치하였다.”며 극장주들에게 어필하였다.

1919년 보스턴의 엑서터 스트리트 극장(Exerter Street Theatre) 내부

그러나 이러한 제조사들은 월리처사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월리처사의 극장오르간은 마이티 월리처(Mighty Wurlitzer)라고 불리며 극장오르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1915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전역에 약 7천여 대의 극장오르간이 설치되었는데, 이 중 월리처사의 극장오르간이 1/4 이상을 차지하였다. 극장오르간의 생산은 1926년에 절정에 달하였다. 월리처사의 각 공장들이 거의 하루에 한 대씩 극장오르간을 생산한 셈이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극장오르간이 출현하였다. 월리처사의 극장오르간이 수입되었다. 그 외 독일의 벨테사(Welte & Söhne)와 왈커사(Walcker), 네덜란드의 스탠다트사(Standaart) 등에서 극장오르간을 생산하였다.

4. 극장오르간의 쇠퇴

전성기를 누리던 미국의 극장오르간은 1927년 10월에 최초의 유성영화가 출현하며, 하루아침에 큰 타격을 받았다. 앨 졸슨(Al Jolson)이 노래와 연기를 펼친 《재즈 싱어》(The Jazz Singer)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극장마다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스피커를 설치하였다. 영화관들은 사운드 트랙이 있는 유성영화를 상영하였고 더 이상 극장오르간의 반주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

설상가상으로 2년 후인 1929년, 미국의 이 발생하며 극장오르간은 완전히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무성영화(silent movie)를 반주하던 극장오르간 역시 소리를 잃고 조용하게(silent) 되었다. 극장들은 연주자들에게 더 이상 비용을 지급할 수 없게 되었고 몇 천 달러를 들여 설치한 고가의 극장오르간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유럽 시장의 극장오르간은 여전히 어느 정도의 인기를 유지하였고 특히 영국에서는 1930년부터 1943년까지 극장오르간의 수요가 꾸준히 있었다. 월리처사는 극장오르간의 운임을 아끼기 위하여 영국 런던에 콘솔과 오르간의 부품을 제작하는 작은 공장을 설립하였다.

극장오르간 사업이 쇠퇴하자 대다수의 극장오르간들은 교회, 가정집, 박물관, 아이스링크, 롤러스케이트장, 레스토랑 등으로 팔려 나가거나 원래 설치되었던 자리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많은 오르간 연주자들은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경력을 이어갔다. 혹은 스포츠센터,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연주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 이후에도 극장오르간이 여전히 극장에 설치된 채로 있기도 하였다. 뉴욕의 라디오시티뮤직홀(Radio City Music Hall)에 있는 듀얼 콘솔 월리처(dual-console Wurlitzer), 버밍엄의 앨라배마 극장(Alabama Theatre), 미시건의 아이언우드 극장(Ironwood Theatre), 몬타나의 엘렌 극장(Ellen Theatre) 등에 있는 월리처사의 오르간이 이러한 예이다.

5. 극장오르간의 제2의 전성기와 현재

1950년대 레코딩과 가 출현하며 극장오르간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LP레코드는 극장오르간의 주파수와 다이내믹을 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대중음악의 연주에 최적화된 극장오르간은 하이파이 매니아들에게 인기를 끌며 극장오르간의 레코딩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조지 라이트(George Wright)는 5개의 매뉴얼이 있는 월리처 극장오르간으로 연주하여 녹음한 LP 시리즈를 발매하여 유명세를 얻었다.

1920년대에 극장오르간을 경험했던 세대에게 극장오르간의 재유행은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켰다. 1955년 리처드 사이먼턴(Richard Simonton, 1915~1979)은 이러한 관심을 모아 미국 극장오르간 동호회(Amerian Theatre Organ Enthusiasts, ATOE)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현재 미국 극장오르간 협회(American Theatre Organ Society, ATOS)로 명칭을 바꾸었다.

ATOS는 매년 컨벤션을 열어 극장오르간의 보존과 발전을 도모한다. 또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인 ‘ATOS Theatre Organ Radio’를 운영하며 매년 젊은 극장오르간 연주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대회를 후원하기도 한다.

극장오르간은 현재 몇 백 대 정도만 남아있다. 시애틀의 파라마운트 극장(Paramount Theatre)은 월리처사의 극장오르간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