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안 통하던 절연체가 도체로 변신?

전기 안 통하던 절연체가 도체로 변신?

주제 전기/전자, 재료(금속/소재)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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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김현탁 박사 모트 이론 밝혀내고 응용기술 선보여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 1949년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도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돼 논란이 됐었다.

가설의 주인공은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물리학과 교수였던 네빌 모트 박사로 당시 학자들은 그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며 터무니없는 가설이라고 폄하했다. 얼마 후 후배 물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거치면서 모트가 주장한 가설과 비슷한 현상이 존재함을 서서히 알게 되었고 일부 과학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험에 매달리기도 했지만 명쾌한 답을 구하지는 못했었다.

바나듐옥사이드, 전압에 따라 절연체↔도체 탈바꿈
그러나 올해 우리 나라 전자통신연구원(ETRI) 김현탁 박사가 마침내 네빌 모트 박사의 가설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해 일약 스타과학자가 됐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인이 됐다’는 말은 바로 김 박사를 두고 한 말이었다.

김 박사는 1992년 일본 스쿠바 대학 박사과정 시절부터 자연에 존재하는, 모트절연체1)로 알려진 100여 개 물질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그리고 지난 2003년 3월 25일 마침내 그 중 하나인 바나듐 옥사이드에 미세한 전압을 걸자 팽팽하게 밀고 당기던 전하 간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짐을 확인했다. 전압으로 인해 전자 하나가 밖으로 튕겨 나가면서 구멍(정공)이 생긴 것이다. 이 단계부터 바나듐 옥사이드는 전기가 통하지 않던 절연체에서 전기가 통하는 도체로 바뀌었다. 물론 전압을 가하지 않으면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로 다시 돌아갔다. 이는 일정한 전압을 가하면 도체로 변했다가 전압이 없으면 부도체로 바뀌는 반도체와 같은 원리다.

꿈의 ‘4나노 반도체’ 개발 가능성 제시
ETRI는 김 박사의 연구 성과와 관련된 핵심기술에 대해 특허 16건을 국내외에 출원했고, 그 중 3개가 이미 등록됐다. 김 박사의 이론 연구가 성공함에 따라 과학기술계는 반도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는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질 수록 내부 회로의 선폭을 좁혀야 하는데 선폭이 좁아질 수록 낮은 전압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일정 수준 이하로 전압을 낮추면 반도체 내에서 신호를 실어 나르는 전자의 흐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하면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데 쓰는 반도체(실리콘)는 특정 크기 이하로 작아지면 전기가 흐르지 않아 디지털 부품으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극소형 나노 시대가 열리려면 반도체를 지금보다 더 작은 사이즈로 줄여야 한다. 그런데 1년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높아진다는 ‘황창규 법칙’에 따르면 2010년 전에 실리콘 반도체의 물리적 한계가 와서 50나노 선폭 이하의 반도체는 만들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게 전문가들의 종전 관측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김현탁 박사가 규명한 기술을 응용하면 현재의 반도체와 같은 성질을 가진 트랜지스터를 4nm까지 작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기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경우 ▲휴대전화 ▲열 감지소자 ▲형광등 과전압 방지소자 등 거의 모든 전기*전자기기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응용범위가 넓어 상업적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국내 언론도 김 박사의 연구가 ‘앞으로 20년간 100조원 이상의 시장가치를 창출 할 수 있다’며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성급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김 박사의 연구논문이 <뉴저널 오브 피직스> 5월호와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 6월호에만 실렸고 모트 가설에 대해 세계적으로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유일한 것이라 단정하기 어려워 상용화나 노벨상 후보 얘기가 성급하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핸드폰 폭발 막는 응용기술 선보여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김현탁 박사는 최근 모트 현상을 응용한 초기모델을 내놓으며 상업화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 박사는 우선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응용해 고장이 잦고 폭발까지 일으키는 휴대전화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65도가 넘는 고온으로 배터리의 압력이 높아지면 배터리 내부의 전지가 부풀어 오르는데 김 박사가 개발한 절연체를 사용하면 이런 압력에 따른 과저항을 떨어뜨려 전지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는 댐의 물이 넘칠 만큼 늘어나 압력이 높아질 경우 수문을 열어 물꼬를 터줌으로써 수압을 낮추는 원리와 같다. 이 응용연구는 배터리 폭발도 막고 수명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모트 이론의 또다른 응용사례로 김 박사는 전자제품의 고장 원인인 소위 전류과다현상을 잡을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전류가 높아서 부품이 깨지던 것을 신소자가 역으로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제품 파손을 막아주는 것이다. 다섯 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했던 화재경보기도 이 센서 하나로 대처가능해서 50%이상의 원가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김 박사는 기술검증을 마친 관련 제품들을 올 연말 내에 공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 박사가 과연 일부 학계의 우려에서 벗어나 연구 성과의 상업화에 골인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 서현교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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