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보다 비싼 바이오 신약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바이오 신약

주제 보건/의료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4-11-22
원본보기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바이오 신약 본문 이미지 1

에리스로포이에틴(EPO)란 약품이 있다.

혈액의 생성을 돕는 이 약품은 1g에 67만 달러에 달한다. 가장 비싼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도 EPO앞에는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EPO 뿐만 아니라,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으면 평균 수익률이 20~35%가 넘는 신약산업은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대박’으로 꼽힌다.

이러한 신약은 전통적으로 화합물 합성 방식에 의해 개발되어 왔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제약회사는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은 최대한 만들어 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인위적으로 수백만 종류의 화합물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하나씩 특정한 질병에 약효가 있는지 테스트를 해본다. 끝없는 시행착오(Try And Error)을 거쳐, 약효가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는 수백만 가지를 테스트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약효가 있는 물질을 발견됐다 하더라도 아직 신약은 아니다.

신약으로 시판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독성실험(전임상)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등을 거쳐, 사람에게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신약이 탄생하기까지는 평균 14.2년의 기간과 8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14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하고 연구개발과 테스트를 해야 한다니, 결국 거대한 자본력을 갖춘 화이자, GSK, 머크 등 다국적 제약 회사들 시장을 독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대에 새로운 주인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이오 신약을 들고 나타난 제넨텍, 암젠 등 벤처기업들이 그들이다. 바이오 신약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세포 배양의 방식, 인체호르몬의 유전자 재조합, 유전자 조작 등의 방법으로 만들어낸 신약이다. 지난 85년에 제넨텍이 내놓은 성장호르몬제, 암젠이 개발한 에리스로포이에틴(EPO), 적혈구 생성을 돕는 이포젠(Epozen), 백혈구 생성을 돕는 뉴포젠(Neupogen) 등이 대표적인 바이오 신약들이다.

이들 바이오 신약들은 유전자와 단백질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된 덕분에 탄생했다.

우선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나 단백질의 구조가 밝혀지고, 면역 메커니즘과 약물이 체내에서 전달되는 구조가 하나씩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인을 진단하면 치료제를 만들기는 쉬운 법.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DNA 재조합이나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아주 낮은 비용으로 필요한 치료제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더구나 미국과 일본 등 각국 정부들은 미래 바이오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휴먼게놈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단백질 구조를 밝히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다 바이오 신약의 가능성을 확인한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유전자 치료제 등의 시장에 뛰어 들면서 바이오 벤처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M&A), 라이센스 공유 등 R&D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신약개발에 뛰어들어 성공하게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더구나 매년 급성장하는 바이오 신약 시장 역시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뛰어 들도록 유혹하고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경 바이오 시장 규모는 3400억 달러(약 442조원)에 이르고, 이 중의 대부분을 바이오 신약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지난해 LG생명공학이 전통적인 시행착오 방식으로 개발한 퀴놀렌계 항생제인 펙티브가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로부터 신약승인을 받아 신약 개발국 대열에 올라서긴 했다. 이 펙티브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40여 개국 1,500개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거쳤는데, 총 2,800여 억 원이 넘게 투자됐다.

그러나 이런 투자는 대기업으로서도 쉽지 않다. 실제로 LG생명과학을 비롯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신약개발 보다는 우선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의 바이오제네릭 제품, DDS(약물전달시스템) 기술을 이용한 2세대 바이오 의약품 개발을 통한 수익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바이오 신약을 직접 개발하기에는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미국 바이오 벤처들처럼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인수합병(M&A), 라이센스 공유 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최근 바이오 신약개발에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시뮬레이션 방식 도입이 늘어나는 등 BT와 IT가 결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창의력과 집중력이 높은 한국인의 특성을 살린다면 바이오 신약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연관목차

74/1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