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피부가 필요해!

나도 피부가 필요해!

주제 기계, 재료(금속/소재)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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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강성철 박사팀은 지난 7월 일본이 개최한 세계지능로봇 경진대회 구조로봇 부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구조로봇 경기는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재난 구조로봇의 성능을 평가하는 시합이다. 이번에 준우승을 차지한 구조로봇 로스큐(ROSCUE=robot for rescue)의 전신은 2004년에 미국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 롭해즈(ROBHAZ=robot+hazard).

롭해즈는 그 성능을 인정받아 자이툰 부대가 파병되어 있는 이라크 아르빌 현지에 파견돼 정찰 및 폭발물 처리 등 시험 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로스큐는 카메라 가이드용 팔, 지도작성 기능 그리고 CO2 센서를 활용한 희생자 신체상태 감지기능 등을 롭해즈에 추가한 것으로,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조차도 아쉬울 만큼 그 성능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재난 상황에 처해 있는 나에게 로스큐가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재난에서 구조된다는 안도감도 잠시. 내 손을 잡은 로봇의 차갑고 딱딱한 감촉은 이내 날 불안하게 할 것이다. “혹시 내 손을 으스러뜨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물에서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라고? 그럼, 가사일을 도와주는 컴퓨터를 상상해 보자. 가사 로봇이라면 대게 휴보(HUBO)나 아시모(ASIMO)와 같은 인간형 로봇을 상상할 것이다. 휴보나 아시모는 생김새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나 행동도 사람과 제법 비슷해서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집을 깔끔히 청소해 주어서 고맙다고 이 로봇을 안아 줄 수 있을까? 우린 곰 인형을 껴안고 입을 맞추긴 하지만 기계와 스킨십을 나눌 만큼 감성이 풍부하지는 않다.

그런데 노인이나 장애인이 자신의 팔과 다리가 되어 준 로봇에 대해 아무런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 또한 슬픈 일일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의 핵심기술은 바로 사람 피부와 같은 부드러움과 사물의 촉감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인공피부. 한국의 과학자들은 로봇용 인공피부 연구 분야에서도 선두에 있다. 표준과학연구원의 강대임, 김종호 박사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윤의식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강대임 박사와 김종호 박사가 개발한 손가락용 인공피부는 잘 구부러지는 폴리아미드필름의 3축 촉감 센서가 들어있어서 수직방향의 압력과 수평방향의 미끄러짐을 느낄 수 있다. 물체와 접촉하면 센서의 모양이 바뀌어 저항 값이 변하는데, 이 차이로 힘을 측정한다. 이 센서는 100g의 물체를 집었을 때 10g 이내의 오차로 무게를 인식할 수 있다. 또 1mm 떨어진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 피부의 분해능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윤의식 교수의 인공피부에는 사물이 누르는 압력을 측정하는 센서가 붙어있어 역시 사람과 같은 1mm 분해능력과 사물이 접근하는 것을 피부 스스로 알아내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압력이 가해질 때 전기를 띤 입자 양의 변화를 감지하는 원리가 촉각센서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체처럼 전기가 통하는 사물이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센서에 감지되는 전하량이 변하게 된다.

꼭 이렇게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인공피부 개발을 시작한 일본의 로봇용 인공피부는 곡면에 완전히 적용할 수도 없고 분해능력도 2mm로 우리보다는 한 발 뒤져있다.

강성철 박사팀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아펙(APEC) 행사장에서 인공피부가 적용된 노인생활 지원용 로봇 실버 메이트(Silver Mate)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젠 곧 우리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로봇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 같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개발된 실버 메이트의 손가락에는 표준과학원의 인공피부가 그리고 팔에는 한국과학기술원의 인공피부가 부착된다. 옛말 가운데 틀린 것 없다지만 요즘 말도 그렇다. "혼자 꾸는 꿈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이정모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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