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항암제를 단 움직이는 나노 분자

꼬리에 항암제를 단 움직이는 나노 분자

분자추진체

주제 생명과학, 물리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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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항암제를 단 움직이는 나노 분자 본문 이미지 1

‘꼬리에 항암제를 단 나노 사이즈의 분자가 몸을 요동치며 암세포로 열심히 달려간다. 그리고 암세포에 도착하면, 꼬리에 붙은 항암제가 작용하면서 암세포를 죽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치료기술이 실제로 구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외부로부터 힘을 얻어 분자 스스로 움직이는 ‘분자추진체(molecular vessel)’ 기술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연구진흥사업으로 포항공대 김광수 교수(단장)가 이끄는 기능성분자계연구단은 이런 분자추진체 연구를 수년간 진행해 왔다.

이 연구단의 관심은 빛이나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통해 분자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것. 보통 분자하나의 크기는 0.2나노에서 0.3나노 크기다. 즉 머리카락 굵기의 수십만 분의 1크기다. 현재 나노 기술은 1나노에서 100나노 사이즈를 다루기 때문에, 연구단은 현재 나노 기술보다 훨씬 더 미세한 기술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분자추진체는 수소결합이나 전기적인 인력, 유도기전력, 분산력, 반발력 등 각기 개별 분자 마다 당기는 힘과 미는 힘이 작용한다. 그리고 이들 각 분자는 마치 레고 블록처럼 이가 맞춰져 하나의 결합체를 형성한다.

가령 0.3나노 사이즈의 벤젠 분자 한 개와 역시 비슷한 크기의 퀴논 계열 분자 한 개, 그리고 탄화수소(CH2)들로 이루어진 사슬을 함께 놓아 ㄷ자 모양의 분자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ㄷ자 ↔ ㄱ자 모양 반복 운동하며 전진
재미있는 점은 이 분자를 물에 섞어 놓은 후 5V이하 건전지에서 나오는 교류 전류를 흘려주면, ㄷ자의 아래 획에 해당하는 부분이 펴지면서 ㄱ자 형태가 되고 또다시 접히면서 ㄷ자 모형으로 되돌아가는 운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반복되면, 마치 수영선수가 물장구를 치는 원리와 같이 물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복운동을 통한 전진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이런 운동이 지속적이고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즉, 아직 배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자를 찾지 못해 이 분자추진체가 수 차례 꼬리질을 하다가 방향을 놓친다고 한다.

더욱이 나노 사이즈 차원에서 물 분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데, 이 물 분자 움직임보다 더 빨리 ㄱ자와 ㄷ자 형태의 반복운동이 일어나야 분자추진체가 물을 계속 치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연구단은 현재 건전지가 아닌 레이저 광선으로 동력을 주면, 이 추진체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으로 밝혀내고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연구단은 이런 기술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려 하고 있다.

우선, 나노 크기의 서로 다른 각 분자끼리 가까이 놓으면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결합하는 분자결합체들이 건전지나 빛과 같은 에너지를 이용할 경우 몸체가 꺾이면서 자기보다 작은 특정 물질을 잡아 가두는 성질을 활용하는 것이다.

가령 바닷물에서 이온상태의 소금만 잡아 가두는 분자결합체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렇게 소금 이온을 잡아 가둔 분자결합체를 따로 분리해서 다시 꺾인 부분이 펴지도록 하면 이온상태 소금만 따로 모을 수 있게 된다. 즉, 소금 이온만 잡아 가두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분자결합체에 또다른 힘을 가해 꺾인 부분을 펴셔 그 속에 잡아 가둔 소금 이온을 뱉어내도록 하는 기술을 추가로 연구하고 있다.

또한 우리 몸 속의 대뇌 피질에서 생성되는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생기는 치매의 경우, 분자결합체로 아세틸콜린을 잡아서 필요한 위치에 옮긴 뒤 풀어주면 치매 문제도 해결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연구단은 불소, 칼륨, 염소 등도 잡아 가둘 수 있는 분자결합체도 개발한 상태다.

앞으로 새로운 기능성 분자결합체를 개발하고, 아직 미완의 연구에 결실을 거두기 위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를 포함한 전세계 10여 개 국에서 온 20여 명의 연구진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 연구진이 연구를 성공하게 되면, 암만 공격하는 분자추진체가 우리 몸을 돌아다니며 치료하거나 치매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주도하는 연구결과로 인류의 질병치료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서현교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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