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싸라기 같은 플라스틱

금싸라기 같은 플라스틱

주제 재료(금속/소재), 화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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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리스어로 성형하기 쉽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컴퓨터, 의자, 볼펜, 냉장고, 자동차, 건물 등 다양한 모양으로 우리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신이 창조할 때 실수로 빠뜨린 유일한 물질로 꼽히는 이 플라스틱이 탄생한 것은 당구공 덕분이었다.

1860년 무렵 아프리카 코끼리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 일로 당구공의 재료로 쓰이던 상아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올랐다. 그러자 미국 당구업자들은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개발하는 자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한다는 공모에 나섰다.

1869년 하야트란 인쇄업자가 상금을 탈 욕심으로 동생과 함께 톱밥과 종이를 풀과 섞어 당구공을 만들려다, 우연히 니트로 셀룰로오스와 장뇌(녹나무를 증류하면 나오는 고체 성분)을 섞었을 때 매우 단단한 물질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천연수지로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 ‘셀룰로이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09년 베이클랜드가 페놀포르말린 수지(베이클라이트)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이것은 인공재료로 만들었지만 외관상 송진(수지 resin)과 비슷했기 때문에 합성수지라고 불렀다. 그 후 뒤퐁사(社) 캐러더스가 1938년 나일론을 합성, 스타킹을 만들면서부터 플라스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재 전세계 플라스틱 시장규모는 1억 톤에 달하고 1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100조 원대에 이르고 있다고 추정할 정도다.

플라스틱은 작은 분자인 단량체 혹은 저분자가 중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고 거대한 분자사슬을 이룬 물질이다. 예를 들어, 에틸렌이라는 물질은 CH2=CH2의 구조식을 갖지만, 이것이 중합된 폴리에틸렌은 CH2-CH2-CH2-CH2-CH2-CH2······이런 식의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특성을 갖게 되는데, 바로 이 점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컵, 쇼핑백, 포장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바로 썩는 플라스틱의 개발이다. 플라스틱이 빛이나 박테리아 혹은 화학물질에 의해 분해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토양을 보존하기 위해 1~3년이면 썩는 광분해성 플라스틱 필름을 밭에 쓰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일조량이 일정해야 효과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쉽게 외과 수술 후 상처를 꿰맬 때 쓰는 실을 생각하면 된다. 이 실은 체액 속에 천천히 용해되기 때문에 환자는 실 뽑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여기에 쓰이는 물질이 바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녹말을 첨가해서 만들었다. 이 플라스틱을 땅 속에 묻으면 녹말을 먹고 사는 박테리아가 서서히 플라스틱을 작은 조각으로 분해시켜 무해한 상태로 땅속에서 사라지도록 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카길 다우 폴리머즈(CDP)사는 2001년 말부터 옥수수 전분을 분해해서 포도당을 만들고 이것을 발효법으로 젖산균으로 변환시켜 화학중합법으로 생분해성플라스틱을 제조하고 있는데 2010년까지 그 생산규모를 45만 톤으로 늘릴 계획이고 보면 지금의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일본에서도 다이닛폰 잉크화학공업, 쇼와 고분자 등에서 양산화 체제의 정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원료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제조원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드는 또 한가지 방법은 미생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원자력연구소 방사선생물학연구실 김인규 박사팀이 개발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방식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생분해성 플라스틱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대량으로 복제해서 대장균 속에 집어넣자는 것이다. 그러면 대장균은 체내에 생분해성 물질인 PHB라는 물질을 대량으로 만들게 되는데, 이것을 분리해내 플라스틱 원료로 쓰자는 것이다. 원자력 연구소에서 이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양성자 이온빔(35Mev)을 쬐어 체내에 PHB를 잘 만들어내는 돌연변이가 된 대장균주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술개발은 김박사가 처음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종전기술은 균주 내 PHB축적도가 70~80%에 그쳤고 축적된 PHB를 균주와 분리시키는 데 다량의 독성 유기용매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2차 환경오염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이번에 김 박사팀이 균주 내 PHB의 축적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필요한 중간 분리공정을 크게 줄여서 생산단가를 절반 정도 낮췄기 때문이다.

김박사는 이번 기술을 적용할 경우 생산 원가를 Kg당 2.5~3달러 수준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Kg당 1~2달러인 석유합성 플라스틱 제조 원가에 한층 더 다가선 수치다. 물론 아직까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일반화되기까지 가야 할 길이 험난하다. 하지만 원유값이 오르고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생각보다 빨리 썩는 플라스틱이 일반화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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