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풍작에 도전한다

만년 풍작에 도전한다

벼 도열병 균 유전자 완전 해독

주제 생명과학, 농림/수산(축산/임업)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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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에도 ‘암’이 있다.

생산량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만, 마땅히 치료할 방법이 없어 농민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병이 있는 것이다. 쌀 수확량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도열병’도 그 중의 하나다.

조선시대인 1429년에 편찬된 농사직설에도 실려있는 도열병은 볍씨가 싹이 틀 때부터 수확 직전까지 농민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골칫거리다. 잎, 마디, 이삭 목, 이삭가지, 볍씨 등 벼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발생하는데다 일단 걸렸다 하면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도열병은 ‘농민들의 가장 큰 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가 쌀을 먹고 있는 만큼 피해도 세계적이다. 1962년 필리핀, 1965년 인도에서는 도열병 때문에 수확량이 최고 80% 이상 줄어들었다고 보고됐고, 지금도 세계 매년 쌀 수확량의 10% 정도가 도열병 때문에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정도면 전 세계 6,00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도열병을 막기 위한 벼 품종 개량이 활발하게 연구돼 왔다.

최근에는 첨단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을 통한 품종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문제는 도열병에 저항성을 갖는 벼 품종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다는 점이다. 도열병에 강한 품종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몇 년 못 가서 내성을 갖는 도열병 균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벼 육종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서 있고, 지난 1세기 동안 200개가 넘는 벼의 품종이 개발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열병에 대항할 수 있는 벼 품종 개발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결국 현재까지 벼의 잎이나 줄기 심지어 이삭까지 말라죽는 벼 도열병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농약을 쓰는 것이다. 볍씨를 벤레이트티, 리프졸 등의 약품으로 종자소독 후 심고, 못자리의 어린 싹과 이삭이 올라올 때부터 수확을 바로 앞둔 시기까지 다양한 농약을 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제도 곧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적인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화학농약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이용환 교수팀은 21일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과학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벼 도열병을 일으키는 곰팡이 균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해내, 도열병 퇴치에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벼 도열병의 병원균이 염색체 7개에 유전자(Gene)가 1만1,109개라는 사실과 유전체(염색체 + 유전자) 전체를 구성하는 염기 3,787만8,070개의 배열 순서와 도열병 균(Magnaporthe Grisea)이 일반 균에 비해 7~10배 정도의 유전자가 많은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도열병 균이 벼의 세포벽을 분해하는 등 벼에 침입하는데 필요한 단백질이나 신호전달체계와 관련된 유전자를 다수 찾아내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도열병의 침투 메카니즘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새 품종 개발과 환경친화적 방제의 새 기틀을 마련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또한 이번 연구는 지난 2002년 벼의 유전자 지도가 나온 뒤여서 의미가 더 크다.

벼의 유전자가 밝혀지면서 기존의 우량종과 교배시키는 등의 방법뿐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통한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품종개량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한 두 가지 병해충에 강할 뿐 갖가지 병에 두루 강한 품종은 개발하지 못했다. 벼와 도열병 균의 전체 그림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열병과 벼의 유전자를 완전히 해독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아직까지 각 유전자의 기능에 대한 연구를 더 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기고 있지만, 벼와 함께 곰팡이의 유전자 설계도를 확보한 만큼 방어와 공격무기를 만드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쉬워지게 된 셈이다.

미래로 갈수록 식량은 무기화 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이교수팀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쌀(벼)을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연구를 주도하게 됐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를 손에 넣었으니, 조만간 보물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 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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