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식물에도 카메라의 조리개가 달려있다고?

앗! 식물에도 카메라의 조리개가 달려있다고?

주제 농림/수산(축산/임업), 생명과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0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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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량이 적어도 대량의 작물생산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과 동물의 눈은 다양한 강도의 빛에 적응하며 물체를 인식한다. 빛이 강렬하면 눈의 홍채 크기가 작아져 빛이 적게 들어오게 하고, 빛이 거의 없는 어두운 곳에는 크기가 커져 빛이 최대한 많이 들어오도록 한다. 그래서 강한 빛에서도 눈의 자극을 최소화한다.

가령 고양이 눈을 관찰해 보면 낮에는 홍채가 좁아져 눈매가 날카로워 지고 어두운 곳에서는 홍채가 동그래져 순한 고양이처럼 보인다. 카메라의 경우도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너무 강하면 조리개를 조금만 열어 적당한 양의 빛만 들어오도록 하고, 반대로 흐린 날에는 조리개를 활짝 열어 가능한 한 많은 양의 빛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떨까. 식물도 사람의 홍채나 카메라의 조리개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물질을 가지고 있다. 바로 ‘피토크롬(Phytochrome)’이란 ‘청록색 색소 단백질’이 그런 역할을 한다. 1952년 미국의 생물학자 H.A. 보스윅과 S.B. 핸드릭스는 식물 속에 있는 ‘피토크롬’이 빛에 반응을 한 뒤 빛 신호를 다음 과정의 전달물질로 보내면서 광합성이나 식물생장에 관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런데 피토크롬이 무엇의 지시를 받아 햇빛의 세기나 강도를 적절히 조절해 식물세포가 빛을 최적의 상태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지에 대해서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올 초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세계 생물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 교수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유종상 씨는 ‘PAPP5’라는 유전자가 ‘피토크롬’의 기능을 조절하는 두뇌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

버섯처럼 빛이 없는 곳에서 자라는 균사식물을 제외한 모든 식물에 들어있는 ‘피토크롬’은 빛을 받아야 활동하는 색소 단백질이다. 이 ‘피토크롬’ 속에는 빛을 수용할 수 있는 ‘피토크토모빌린’이라는 화학물질이 박혀 있다.

‘피토크로모빌린’은 빛을 받으면 분자구조가 일부 바뀌면서 이것을 감싸고 있는 ‘피토크롬도 활성형태(PFR형)’로 바뀌어 다음의 신호 전달물질에게 빛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만약 너무 강한 햇빛이 들어오면 ‘피토크롬’은 너무 강한 신호를 전달해 결국 식물에 무리를 주고 또한 빛이 약하면 신호가 약해 이것도 식물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빛이 세기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준으로 빛의 신호를 다음 전달물질에게 보내도록 ‘피토크롬’에는 ‘인(P)’과 ‘산(O)’으로 구성된 ‘인산기’라는 자석 같은 놈이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 즉 햇빛이 강하게 식물을 내리쬐면 ‘인산기’가 ‘피토크롬’에 달라붙어 마치 커튼을 씌운 효과를 냄으로써 ‘피토크롬’이 빛을 조금만 인식하도록 한다. 반대로 햇빛이 약하면 ‘인산기’가 떨어지면서 커튼을 걷어 빛을 많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가 열리고 닫히는 원리와 같다. 연구에 의하면 식물마다 이 ‘인산기’의 개수는 다른 데 귀리의 경우 2개의 ‘인산기’가 이런 작용에 관여한다고 한다.

한편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 움직임은 사람의 뇌와 손이 관여를 하는 데 식물의 경우 어떤 놈이 빛의 양에 따라 ‘인산기’를 붙이고 떨어뜨리는 조정을 하고 있을까. 바로 ‘PAPP5’라는 유전자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빛의 양이나 세기에 따라 식물이 반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담고 있는 이 유전자는 빛의 양에 따라 ‘인산기’라는 자석에 신호를 내보내 ‘인산기’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도록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우리나라 포항공대 팀이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한 발 더 나아가 ‘PAPP5’에 유전공학 기법을 적용해 기능을 증폭시키거나 같은 유전자를 식물에 더 주입할 경우 햇빛이 적은 상황에서도 마치 햇빛을 많이 받은 것처럼 ‘인산기’가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작용을 통해 ‘피토크롬’을 통과한 빛 신호는 복잡한 단계의 신호전달체계를 거쳐 결국 식물이 적은 양의 햇빛으로도 마치 적당량의 햇빛을 받은 것처럼 생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 연구결과에 따르면 ‘PAPP5’ 유전자의 능력을 키운 결과 빛에 대한 유전자의 민감성이 최대 30% 증가했다. 이는 평소보다 30% 정도 빛의 양이 줄어들어도 똑같은 크기의 작물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농업 생산량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인자가 곰팡이에 의한 흰 가루병과 같은 ‘식물 병’이고 두 번째 인자가 바로 ‘일조량’이다. 이런 측면에서 ‘PAPP5’ 유전자를 조절하는 유전공학 기술이 각종 작물생산 농업에 적용될 경우 연간 일조량에 상관없이 꾸준하게 대량 작물생산을 기대할 수 있어 ‘제2의 농업혁명’ 도 기대된다.

  • 서현교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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