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사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관음사

[ 觀音寺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사찰 · 사당>절
유물유적시대 조선
행정구역 황해북도>개성시>박연리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25호

황해북도 개성시 박연리 천마산 기슭 박연폭포 부근에 있는 절. 970년에 지은 관음사는 1393년에는 크게 확장 되었으며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듭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646년에 고쳐지은 것이다. 원래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관음사에는 지금 대웅전과 승방, 7층탑과 관음굴이 남아있다. 절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은 정면 3칸(8.4m), 측면 3칸(6.61m)의 크지 않은 건물이다.

대웅전의 평면배치에서 흥미있는 것은 장여와 장여 사이의 간격을 배수로 하여 두공을 배렬하고 평면을 이룬 것이다. 이 절에 세운 홀림기둥은 굵기는 43cm, 높이는 2.83m로서 높이가 밀굵기의 6.58배나 된다. 그리고 모서리기둥은 밑굵기 45cm로서 가운데기둥보다 굵으며 높이는 더 높게 하고 대각선방향으로 조금씩 기울여 세웠다.

평방 위에는 바깥 7포, 안 9포로 된 화려한 포식두공을 놓았다. 두공은 매개 기둥 위마다 1개씩 놓는 한편 정면과 측면 가운데칸에서는 기둥사이마다 2개씩, 측면 두 가녘 기둥 사이에는 1개씩 놓아 모두 32개이다. 소혀형제공으로 하면서 비교적 길게 뽑은 것이 특이하며 네 모서리와 정면 가운데기둥들의 두공 위에는 용머리조각을 하였다. 건물 안에는 소람반자를 높이 대고 거기에 잇대어 좁은 빗반자를 중도리까지 올려붙였다. 집 안 깊숙이 불단을 놓고 그 위에는 이층 짜리 닫집을 달아놓았다.

17포나 되게 섬세하게 짜올리고 붉은 빛이 돌게 한 닫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 관음사에는 겹처마를 댄 우진각지붕을 하였다. 지붕의 용마루는 짧게 하면서도 마루들과 지붕면, 처마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휘임을 주어 몸체에 잘 어울리며 아름다워 보인다. 건물전체에 입힌 금단청은 퍽 은근한 감을 준다.

이 절의 뒤벽에는 뚫음새김으로 장식한 문짝이 달려있는데 한짝은 완성된 것이고 하나는 채 완성되지 못한 것이다. 대웅전 앞 서쪽에 서 있는 높이 4.77m의 7층탑은 고려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수한 탑이다. 승방은 정면 4칸(10.7m), 서쪽측면 4칸, 동쪽 측면 2칸되는 ‘ㄴ’모양의 평면을 가진 뱃집이다. 관음사뒤의 관음굴은 관음사가 서기 전부터 있던 것이다. 그 안에 있던 2개의 관음보살상은 옛날의 조각상으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대리석상이다. 유백색대리석으로 조각한 높이 1.2m 정도의 앉은 모양의 관음상은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여러 가지 몸치레를 하였으며 부드럽게 드리운 옷주름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관음사 대웅전 뒤쪽의 미완성 문짝 하나를 두고 다음과 같은 기막힌 사연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이곳에 나이는 어리지만 손재간이 비상한 운나라는 소년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관가에서 나졸들이 마을에 달려들어 관음사 절건설에 나어린 운나까지 강제로 끌고 갔다. 절건설에 동원된 운나는 대웅전 문짝의 장식을 조각하였는데 누구도 그의 재간을 따를 수 없었다.

그가 문짝들을 다 조각하고 이 마지막 문짝을 조각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었다. 홀로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을 어머니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던 소년은 집에 잠깐 다녀오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매정하고 포악한 통치자들은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을 애타게 찾다가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는 비통한 소식을 전해듣게 된 운나는 크나큰 슬픔과 간악한 통치자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자기의 손재간을 원망하며 다시는 그들을 위해 자기의 재간을 바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칼로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는 절을 뛰쳐나와 농민군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대웅전 문짝중의 하나만은 지금까지 미완성품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유의 사항】

  • ⓘ 본 콘텐츠는 1999~2005년 남북공동 편찬사업에 의해 발간된 자료로서,
    북한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한 자료의 특수성으로 내용의 최신성이나 이미지의 선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점 양해 부탁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