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화계리 유적

하화계리 유적

[ 洪川 下花溪里 遺蹟 ]

지역 홍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의 강안단구 상에 위치한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의 1지구는 크게 6개 지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의 세부층을 분류한다면 모두 9개의 지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중 2지층에 문화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 문화층의 위 부분은 건열(乾裂, mud crack)이 있었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이것은 아마도 얼음쐐기인 듯 하다. 이 층위는 갱신세 퇴적층이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은 모두 7,151점이며 그중 83.3%인 5,958점은 석영으로 만들어졌으며, 11.7%인 834점은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유물(6,526점)은 발굴과정에서 찾아졌다. 보고자는 세부적인 형태분석을 시도하였는데, 가장 많은 양의 석기는 긁개로서 841점이 출토되었으며 그밖에 칼, 째개, 새기개, 찌르개, 끝날긁개 등이 발견되었다. 보다 특징적인 유물은 화살촉, 세형몸돌, 세형돌날 등이다. 배모양 기술격지의 발견은 전형적인 세형돌날떼기의 기술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대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잔손질된 돌날, 기술-형태학적인 측면에서 여러 형태의 세형몸돌, 즉 양면박리한 기술격지상에 만든 세형몸돌, 작은 격지로 만든 평평한 타격면을 가진 세형몸돌, 전형적인 양면석기를 예비몸돌로 한 세형몸돌, 각주형의 작은 부스러기로 만든 세형몸돌, 전형적인 각주형 세형몸돌, 측면이 쐐기형몸돌형을 유지한 각주형 세형몸돌 등은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많은 양의 각주형 세형몸돌의 등장, 전형적인 양면석기로부터 만든 세형몸돌의 외형을 갖지만 박리면은 각주형 세형몸돌인 것, 부정형의 세형몸돌의 등장 등은, 이 유적의 연대를 후기구석기시대 최말기 혹은 신석기시대로 전환하는 시점으로 상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와 같이 쐐기형 세형몸돌에서 각주형 세형몸돌이 추가되는 과정, 혹은 변형되어 가는 과정이 나타나는 현상은 동북아시아 세형돌날문화의 늦은 시기에 나타나는 양상이다. 이러한 양상은 주산리, 송전리, 죽산 유적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과정은 후기구석기인들이 이주하면서 남긴 문화적인 산물로 보이지만 상무룡리 유적 등을 고려할 때 자체적인 변화과정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술형태학적 측면에서 이 유적은 구석기시대를 마치는 유적들에서 보여지는 성격과 동일하다. 보고자는 건열을 기초로 12000~10000년 전에 해당하는 중석기시대로 보았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그 동안 발견된 새로운 유적을 통해서 볼 때 ‘중석기시대’라는 용어는 부적당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보고자가 상정한 시기는, 동북아시아에서 구석기시대 최말기의 다양한 성격이 나타나며 또한 새로운 시대, 즉 신석기시대로 전환하려는 많은 문화적 갈등이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석기 중에서는 많은 양의 잔손질된 세형돌날, 대각선 새기개, 돌날상의 끝날긁개, 흑요석제 석기들과 세형돌날, 가파른 잔손질이 된 손톱형 긁개 등도 출토되었다. 하화계리 유적에서 돌날떼기 기술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다. 이러한 특징은 전라남도 지역의 구석기유적들과 그 성격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 유적은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상무룡리 유적 보다는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북한강유역의 구·중석기시대문화(최복규, 향토서울54집, 1994년)
  • 홍천 하화계리 중석기시대 유적의 조사 연구(최복규, 박물관기요 9, 1993년)
  • 홍천 하화계리 중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최복규·김용백·김남돈, 中央高速道路 建設區間內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1992년)

유의사항

  • ⓘ 본 콘텐츠는 과거 인류들이 남긴 유물, 유구, 유적 등의 고고학적 내용으로, 유적명과 주소는 2001년 발간 당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