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납유적

매납유적

[ 埋納遺蹟 ]

마산 가포 유적 전경과 청동검 출토상태

마산 가포 유적 전경과 청동검 출토상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청동기(靑銅器)나 특정한 석기(石器) 등의 유물을 의도적으로 묻는 것을 매납(埋納) 또는 퇴장(退藏)이라고 한다. 유럽 각지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신석기시대의 장식적인 대형 돌도끼〔石斧〕나 청동유물을 의도적으로 묻은 사례가 확인되었으며, 일본에서는 특히 청동기의 매납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 일본 시마네켄(島根淵) 고진다니(荒神谷) 유적에서는 358점의 동검(銅劍)과 청동투겁창〔銅矛〕 16점, 청동방울〔銅鐸〕 6점이 매납된 유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매납의 목적은 제사나 의례와 같은 종교·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며, 이런 점에서 은익이나 폐기와는 차이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한반도에서도 매납이 있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개념이 분명하지 않고 유물의 출토 상태가 분명하지 않아 크게 주목되지 못하다가, 1999년 1월 마산 가포동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매납유적이 처음으로 정식 발굴조사되어 알려졌다.

이 유적은 바닷가에 접한 해안 급경사면에 굴러내린 2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위틈 사이에서 동검, 청동투겁창, 청동꺾창〔銅戈〕, 동사(銅蠣)와 돌보습〔石犁先〕, 민무늬토기〔無文土器〕편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투겁창은 4동강이 나 있었고, 청동투겁창과 청동꺾창은 고의로 떼어낸 일부가 남아있었다. 유구의 위치나 유물의 출토상태 등으로 보아 집자리〔住居址〕나 무덤〔墓〕 등이 아닌, 바위틈에 의도적으로 청동기를 밀어 넣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구나 유물 자체의 상태나 고의로 파손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정식 발굴조사를 거치지는 않았으나, 청도 예전리 유적(동검 2점), 성주 초전면 유적(동검 2점), 개성 해평리 유적(동검 1점), 완주 상림리 유적(중국식동검 26점), 산청 백운리 유적(동검 4점, 청동투겁창 1점, 동사 1점), 영암 심연리 유적(청동투겁창 1점, 칼자루끝장식〔劍杷頭飾〕 1점), 대구 만촌동 유적(광형동과 1점, 동검 3점, 칼자루끝장식 1점, 초미금구 1점, 기타 동제 부속구) 등 여러 유적에서 유구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동기가 수습되었다. 이 외에도 매납의 가능성이 있는 유적은 매우 많다. 당시의 전언이나 조사자의 보고를 종합해 볼 때, 이 유적들은 청동기 매납유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매납된 유물의 구성은 모든 유적에서 동일하지는 않으나, 동검, 청동투겁창, 청동꺾창, 동사, 칼자루끝장식, 칼집 부속구 등 이른바 청동기 일괄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매납유적은 강변이나 해안가 등에 위치하며, 주변을 조망하기에 좋은 높은 곳에 있다. 유구의 구조는 일정하지 않으나, 산에서 굴러 내린 자갈밭(너덜겅)을 파고 그 속에 유물을 배치한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사 전에 이미 훼손된 경우가 많으나, 매납 당시에는 유물을 의도적으로 가지런하게 배열하였던 것 같다. 매납된 유물이 비파모양동검(琵琶形銅劍)에서부터 세형동검(細形銅劍)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매납유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상길)

참고문헌

  • 한국의 청동기문화(이건무, 한국의 청동기문화, 국립중앙박물관, 1992년)
  • 청동기 매납의 성격과 의미(이상길, 한국고고학보 제42집, 한국고고학회, 2000년)

동의어

교장유적(暠藏遺蹟), 퇴장유적(退藏遺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