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갑문

귀갑문

[ 龜甲文 ]

복암리 출토 금동신발(귀갑문)

복암리 출토 금동신발(귀갑문)

거북의 등껍질 모양과 비슷한 육각형의 문양을 말하며,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연속된 무늬로 베풀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귀갑문(龜甲文), 귀쇄문(龜鎖文)이라고도 하는데, 거북이 지닌 상징적 의미인 장수(長壽), 상서(祥瑞), 선수(仙獸)의 뜻을 나타낸다. 거북은 예로부터 봉(鳳), 용, 기린, 범과 함께 오령(五靈 : 다섯가지 신령스러운 동물)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사신도(四神圖)에서는 현무(玄武)라 하여 북쪽을 담당하는 신으로 생각되었으며, 후대에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서 일컬어졌다. 거북의 이러한 상징적 의미는 고대미술에서는 조각, 장식품, 부적, 민화, 그리고 의복무늬 등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거북은 우주를 상징하였으니 거북의 등이 돔 형태로 되어 하늘의 천장을 상징하며, 가슴과 배는 수면 위에서 움직이는 대지를 표상하고, 또한 끝없이 긴 수명 때문에 거북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신성한 거북은 뱀의 머리, 용의 목을 지니고 있으며, 뼈는 몸 밖에 있고, 살은 몸 안에 있으며, 내장은 머리와 연결되어 있다. 숫놈은 봄에 나와 껍질을 갈고 겨울엔 동면을 하는데, 그 때문에 거북은 장수한다고 하였다.

귀갑문은 형태와 기원에 따라 2가지로 분류된다. 제1류는 문자 그대로 거북등무늬로 단순히 육각형 무늬로만 베풀어지며, 그 기원은 중국 한대(漢代)의 거북등무늬에서 시작하여 대부분 거북형상의 공예품에 나타나고 있다. 제2류는 기본 모티브는 같으나, 육각형의 꺾이는 부분에 점·원·꽃 등의 결절점(結節點)을 장식하고 귀갑문 내부에 각종 동·식물문을 추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2류의 귀갑문이 한국에 유입된 경로는 서아시아지방-실크로드(비단길)-중국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으로 들어온 귀갑문은 2세기에서 5세기 전반경까지는 화문과 조합된 형태로 유행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병령사(柄靈寺) 169호굴(A.D. 420년)을 들 수 있다. 5세기 후반경에 이르러서는 환상문(環狀文)이 있는 당초문(唐草文)과 함께 배치되기 시작하며 사산조페르시아 예술의 영향을 받아 귀갑문 내부에 금수문(禽獸文)을 채용하기 시작한다.

고구려의 경우, 5세기대의 천왕지신총(天王地神塚)이나 이보다 늦은 시기의 유적인 귀갑총(龜甲塚)의 고분벽화에 측시형의 연화와 함께 귀갑문이 등장한다. 백제지역에서는 무령왕릉(武寧王陵)의 부장품에 중요한 의장 요소로 다채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의 손잡이 테두리장식의 투각무늬를 비롯하여 귀갑문 내부를 동·식물문으로 각각 채우고 있는 금동신발(金銅飾履)과 채화 베게(頭枕)·발받침(足座) 등에서도 나타난다. 무령왕릉 이외에 남원(南原) 월산리(月山里) 고분군 출토의 칼자루는 소화문(小花文)과 귀갑문을 상감기법으로 시문한 점이 독특하다.

비교적 부장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신라와 가야지역의 귀갑문으로는, 먼저 5세기대의 유적인 황남대총 북분(皇南大塚 北墳)에서 출토된 은잔(銀杯)에서 볼 수 있다. 사산조페르시아 예술과 강한 친연성을 띠고 있는 이 은잔은 쌍조선으로 귀갑문을 구획하고 그 내부에 금수문(禽獸文)을 배치한 것으로서 이후 등장하는 귀갑문의 전형이 되고 있다.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식리총(飾履塚) 출토의 금동신발은 귀갑문과 수문(獸文)을 주요 모티브로 하여 정교하게 제작한 것으로 귀갑문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황남대총과 인접한 천마총(天馬塚)에서는 말안장(鞍橋)에 귀갑문이 시문되어 있다. 이보다 늦은 시기인 보문리 부부총 출토의 굵은고리귀고리는 정교한 누금세공으로 귀갑문 내부에 작은 화문을 배치하고 있다. 또 무령왕릉 고리자루큰칼과 같은 계열인 지산동(池山洞) 39호분 출토의 대도와, 대구 내당동(內唐洞) 55호분 출토의 말안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한국에 귀갑문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이며, 대부분 왕릉이나 수장층의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특히 비석의 받침을 거북모양으로 제작하게 된다. 특히 사실적인 거북조각으로서 돌비석 귀부(龜趺)의 거북등무늬는 시대적으로 다양한 변천을 보여주는데 무열왕릉 귀부를 효시로 하는 것 같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螺鈿漆器) 등 관복상자(官服箱子), 또는 거북모양의 목각 화약통에 많이 채용하였는데, 그것은 거북등무늬가 장수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 한국전통문양(임영주, 도서출판 예원, 1998년)
  • 韓國文化상징사전(동아출판사, 1992년)
  • 龜甲文과 鬼面文(國立中央博物館, 1990년)
  • 韓國紋樣史(林永周, 美進社, 198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