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받침

발받침

[ 足枕 ]

시신을 무덤에 매장할 때 발을 받치기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 보통 족좌(足座)라고 불리운다. 발받침은 시신의 머리를 받치는 베개(頭枕)에 비하여 사용례가 희소한데, 백제 25대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523년에 죽어 525년에 묻힘)과 왕비(526년에 죽어 529년에 묻힘)의 목제(木製)발받침이 있다. 무녕왕릉은 동쪽에 왕을 서쪽에 왕비의 널을 안치하였는데, 왕과 왕비 모두 남쪽에 베개가 있고 북쪽에 발받침이 놓여 있었다.

무녕왕 발받침

무녕왕 발받침

무녕왕비 발받침

무녕왕비 발받침

왕의 발받침은 바닥길이 38㎝, 윗부분 길이 43.2㎝, 높이 20㎝, 너비 9.7㎝에 발을 받치기 위하여 ‘W’자 형태로 파낸 윗부분의 길이가 25.4㎝이다. 표면 전체에 검은 칠을 하였으며, 발을 놓는 부분과 아랫부분을 제외하고 길이 4㎝, 너비 0.4㎝의 금판을 오려 거북이등모양(龜甲形)으로 배치하고 각 모서리에는 중앙에 영락(瓔珞)이 달린 지름 1.8㎝의 6화형(花形) 금장식을 각기 2개의 금못으로 부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비록 금판이 일부 떨어져 나갔지만, 원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왕비의 발받침은 바닥길이 39.5㎝, 높이 21.9㎝, 너비 11㎝에 발을 받치기 위하여 파낸 윗부분 길이가 22㎝로서 왕의 것보다 약간 크다. ‘W’자형으로 파낸 부분 중 발이 놓이는 곳이 바닥으로부터 높이가 전면이 8㎝, 후면이 8.5㎝로 약간 경사지도록 되어 있는데, 높은 쪽이 발목, 즉 신발 쪽으로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표면에 붉은 칠을 하였으며, 발을 놓는 부분과 아랫부분을 제외하고 0.4㎝ 너비의 금박띠를 윤곽을 따라 돌린 다음 그 안에 검은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앞뒷면의 그림 상태는 부식으로 선명하지 않지만, 전면에는 중앙 ‘∧’모양 아래쪽에 측시연화문(側視蓮花文)을 그리고 그 양측에서부터 공작꼬리 같은 것을 뽑아 옆의 주공간을 메우고 있으며 후면에도 비슷한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여진다. 윗부분에는 한쪽 면의 중심부에 높이 1㎝, 직경 0.8㎝의 나무못이 꽂혀 있고 다른 면에도 못이 꽂혔던 흔적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연화문이 각기 그려져 있다. 이 못은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베개에서와 같은 장식물을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금제삼엽형부철기(金製三葉形付鐵器)가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한편 ‘W’자 형태의 발이 놓이는 부분에 비단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이곳에는 비단을 1겹 입혔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중 왕의 발받침은 국보 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武寧王陵(文化財管理局,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