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리총

식리총

[ 慶州 飾履塚 ]

지역 경주

1924년에 금령총과 함께 梅原末治에 의하여 발굴조사된 고분으로 매우 치밀한 보고서가 남아 있다. 발굴당시 봉분은 많이 파괴되어 있었는데, 원래는 직경 약 30m, 높이 약 6m 정도의 중형급 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무지(積石部)는 직경 9m 정도였는데 돌무지의 표면은 점토대로 뒤덮여 있었다. 덧널(木槨)은 외덧널식(單獨槨式)으로 지하에 무덤구덩이(墓壙)을 파고 설치하였다. 덧널의 바닥면은 원래 지표 아래 2.7m에서 나왔으며, 무덤구덩이의 바닥면에 냇돌(川石)과 자갈을 45㎝의 두께로 깔았다. 덧널은 동~서 방향, 두향(頭向)은 동침(東枕)으로 놓여 있었고, 크기는 길이 5.25m, 너비 3.3m, 높이는 약 1.2m를 보인다. 덧널과 무덤구덩이 내부의 돌무지벽 사이에는 자갈을 채워 넣었고, 덧널의 중앙 약간 서쪽으로 나무널(木棺)이 놓여 있었다고 추정되었는데, 나무널의 크기는 길이 약 2.4m 폭은 0.78m이다. 나무널의 내면은 주칠(朱漆)이 되어 있었고, 금박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나무널의 동편 머리맡에는 부장품이 놓여 있었는데, 부장구역의 밑바닥에서도 목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금속제관류는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백화수피제관모(白樺樹皮製冠帽)와 금제귀고리, 금동제귀고리가 은제허리띠 등의 장신구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외에 금속제용기, 칠기, 토기류 등과, 금동제안장, 발걸이, 금은장식쌍룡고리자루큰칼(金銀裝雙龍環頭大刀)이 널 내부에서 나왔다. 철제무기와 이기류의 부장도 확인되었다. 유물들은 덧널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덧널 상부에서도 철제이기류와 다수의 토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 고분은 신라의 왕족이나 최고의 귀족무덤으로, 그 축조연대는 5세기말이나 6세기초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慶州金鈴塚飾履塚發掘調査報告(梅原末治, 大正十三年度古蹟調査報告, 193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