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리 유적

남양리 유적

[ 德川 南陽里 遺蹟 ]

지역 덕천
덕천 남양리 유적 13, 14, 15호 집자리 놓인 관계

덕천 남양리 유적 13, 14, 15호 집자리 놓인 관계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에 위치한다. 1994년에 군인들이 토목공사를 하면서 유물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1998년까지 5년동안 발굴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집자리〔住居址〕 31기, 고인돌〔支石墓〕 4기와 그 밖에 신석기시대 집자리 2기, 고구려 돌칸흙무덤〔石室封土墳〕 23기, 고려 돌덧널무덤〔石槨墓〕 7기를 확인하였다.

금성저수지 수몰지역에 포함된 수하리 마을의 원지형은 대동강의 지류인 마탄강의 서쪽기슭으로 강안 충적지가 남북으로 펼쳐져 이 일대에서는 드문 지형이며, 마을의 삼면은 양류봉(해발 692m), 선무봉(해발 840m), 금성산, 덕장산 줄기들이 마탄강 동쪽 기슭까지 뻗어 내려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집자리는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 시기의 집자리로 겹놓인 관계와 유물갖춤새로 보아 4개 시기로 구분된다. 겹놓인 집자리의 예는 아래층에서부터 15호→14호→13호, 23호→20호·21호→22호 순으로 각각의 내부시설인 화덕〔爐址〕의 수와 기둥구멍〔柱穴〕의 배치양상에서 차이가 있다. 15호는 크기가 600×400×20∼30㎝이며 내부에는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평면 육각형의 돌두름식〔圍石式〕 화덕〔爐址〕이 있으며, 기둥구멍〔柱穴〕은 확인되지 않으나 가장자리에 기둥그루가 확인된다. 14호는 685×(잔)400×23∼25㎝ 크기이며, 내부에는 돌두름식화덕 1기가 있다. 또한 중심축 상에 기둥구멍 2개가 1열로 있고, 벽 가장자리와 모서리에는 기둥그루가 다수 확인된다. 13호는 크기 732∼746×526∼542×30∼35㎝로 내부에는 돌두름식 화덕 2기가 있다. 기둥구멍과 기둥그루는 벽 가장자리를 따라 다수 확인된다.

이를 정리하여 시기를 구분하여 보면, 제1기의 집자리는 화덕이 1기 있고 벽 가장자리에 기둥그루와 구멍이 있다. 제2기는 벽 가쪽과 장변 중심선에 기둥이 있는 형태이며, 화덕은 1기 있다. 제3기의 기둥배열은 2기와 같으나 화덕이 2기 있는 것이고, 제4기는 화덕 2기가 있고, 주춧돌〔礎石〕이 있는 것들이다.

유물은 1기 집자리에서는 간돌검〔磨製石劍〕과 간돌화살촉〔磨製石鏃〕,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바퀴날도끼〔環狀石斧〕,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 돌도끼〔石斧〕, 돌끌〔石鑿〕, 대팻날도끼〔扁平偏刃石斧〕 등의 석기와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이다. 2기에서는 팽이모양토기가 다수이며, 일부 조롱박형단지인 묵방리형토기〔墨房里型土器〕가 있다. 3기 16호 집자리에서는 청동비파형창끝〔琵琶形銅棠鋒部〕과 원반형 단추〔銅瞿〕가 나왔는데, 비파형창끝은 상원 룡곡리 5호 고인돌, 호남리(표대) 집자리 유적 10호 집자리에서 나온 것과 비슷한 생김새이다. 제4기에서는 청동방울 거푸집〔銅鐸 鎔范〕이 보이며 목이 달린 팽이모양토기가 있다.

고인돌 무덤은 4기를 발굴하였으나 3기는 파괴되어 하부구조는 없었다. 3호 고인돌은 뚜껑돌〔上石〕은 남아있지 않고 2매의 고임돌〔支石〕이 장축방향을 남북으로 두고 놓여있다. 고임돌 사이에는 납작하고 네모난 강돌〔川石〕들로 담장을 쌓듯이 쌓아 올려 북벽과 남벽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1단(段)의 돌들이 확인된다. 무덤방〔墓室〕의 크기는 180×130×100㎝ 정도이다. 무덤방 바닥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한 벌 깔고 그 위에 흙을 펴서 시설하였다. 탁자식〔卓子式, 五德型〕 고인돌이며 무덤방 둘레에 적석(積石) 묘역시설(墓域施設)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장호수)

참고문헌

  • 남양리유적 발굴보고(서국태·지화산, 백산자료원,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