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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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식분야 전반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거나 특정 분야의 지식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참고서.

목차

접기
  1. 구성의 변화
  2. 백과사전 일반적 특성
  3. 편집과 출판
  4. 종류
  5. 역사
  6. 동양의 백과사전
  7. 한국의 백과사전

백과사전을 뜻하는 영어 'encyclopaedia'는 그리스어 'enkyklopaideia'에서 유래되었으며 완벽한 학습체계나 방법을 뜻하는 포괄적인 교육을 의미했다.

백과사전의 역사와 범주에 대한 설명은 학문발달에 대한 지침이 되어왔는데, 이는 백과사전이 수세기 동안 당대 지식과 학문을 포괄적으로 기록해놓음으로써 학문 발달에 있어서 이정표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는 적어도 2,000질 이상의 백과사전이 나왔고 그 가운데 몇몇의 백과사전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정판을 발간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의 어느 도서관도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백과사전을 전부 보관하고 있지는 못하다. 비록 낡아서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백과사전도 그 안에는 세계적 지도자들이나 석학들의 글이 실려 있기 때문에 보존 가치가 있다.

백과사전은 오랜 역사와 함께 그 성격도 상당히 많이 변해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도, 상세한 색인, 참고문헌, 삽화, 약자일람표, 외국어 표기, 지명목록 등을 곁들여 가능한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완벽하게 만든 여러 권의 해설집이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백과사전을 구성하는 이 모든 요소들은 옛날부터 그대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듭하면서 점차 변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
브리태니커백과사전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

구성의 변화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지닌 백과사전 중 하나로 꼽히는 〈스페쿨룸 마유스 Speculum majus〉('위대한 거울'이라는 뜻)는 1244년 프랑스 보베 출신의 학자 뱅상이 출간했는데 그는 자신의 백과사전은 숙독되어야 하며 독자들은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사상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사전 이름에 'speculum'(거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플라톤은 더 나은 사고를 위해서 지식은 필수적인 전제라고 생각했으며 로마 사람들은 일생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지식을 습득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점, 또는 지식 습득 과정에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참고도서로 백과사전을 정의하고 있다.

알파벳 순으로 배열된 백과사전은 그 역사가 1,000년이 채 안 된다.

유럽에 인쇄술이 소개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백과사전이 특정한 주제별로 편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접근방식이 대체로 실용적이어서 천문학이나 지리학 같은 일상생활과 관련된 주제들이 중시되고 미술분야는 맨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같은 로마 시대라도 6세기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카시오도루스가 만든 〈인스티투티오네스 Institutiones〉는 성서와 교회에 관한 주제로 시작한 반면 산수나 기하학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랍의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븐 쿠타이바는 권력·전쟁·신분 등으로 시작해서 음식과 여자로 끝을 맺는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백과사전을 배열했다.

한편 페르시아의 화리즈미는 법과 스콜라 철학을 먼저 싣고 의학·기하학·역학 같은 보다 실용적인 학문들은 '외국 지식'이라고 이름붙여 소홀하게 취급했다.

중세기 백과사전 내용분류의 일반적인 경향은 뱅상의 〈스페쿨룸 마유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사전을 '자연'(Naturale)·'학문'(Doctrinale)·'역사'(Historiale)의 3부분으로 나누고 '자연'부분은 다시 신·창조·인간으로, '학문'은 언어·윤리·공예·의학으로 분류했으며, '역사'는 세계 역사를 다루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기존의 이러한 접근 태도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는데 그는 미완성의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Instauratio magna〉를 계획하면서 크게 '자연계'(External Nature), '인간'(Man), '인간의 활동'(Man's Action on Nature)으로 분류했다.

'자연계'에서는 천문학·기상학·지리 및 광물·동물·식물 등의 종류에 관해서 다루었고, '인간'에서는 해부학, 생리학, 사회구조와 권력, 활동 등을 기술했으며, '인간의 활동'에서는 의학, 화학, 미술, 감각, 감정, 지적 능력, 건축, 교통, 인쇄, 농업, 향해, 산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백과사전 편찬자가 인간의 지식영역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인간의 생각과 노력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빠짐없이 실을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가 제시한 이러한 백과사전의 내용배열 방식은 매우 과학적이고도 훌륭한 체계였다.

이러한 베이컨의 생각은 후대의 많은 백과사전 편집자들의 편집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130년 후의 디드로조차 이 방법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백과전서 L'Encyclopédie〉 초안(1750)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뒤에 나온 백과사전들은 모두 디드로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베이컨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콜리지도 베이컨의 안(案)에 크게 감명을 받아 1817년 다소 색다른 배열방식으로 〈메트로폴리타나 백과사전 Encyclopaedia Metropolitana〉을 펴냈다.

그는 5개의 범주, 즉 순수과학, 응용과학, 인명과 역사, 어휘와 지명, 색인으로 자신의 사전을 구성했다. 콜리지의 이러한 분류는 편집자에 의해 수정되었고, 사전 자체가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분류방식은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모두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는 방법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백과사전을 만드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 무렵에 세크스투스 폼페이우스 페스투스가 〈단어의 뜻에 대하여 De verborum significatu〉라는 책을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여 발간했다.

10세기 혹은 11세기에 나온 백과사전식 사전 〈수이다스 Suidas〉는 완벽하게 알파벳 순으로 배열된 사전이지만 그뒤에 출판된 백과사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1674년에 루이 모레리는 〈역사 대사전 Le Grand Dictionnaire historique〉을 펴냄으로써 대중들이 알파벳 순의 자기나라 말로 씌어진 백과사전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사실은 앙투안 퓌르티에르가 만든 〈세계사전 Dictionnaire universel〉(1690)이 성공함으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백과사전의 출판 초기부터 중세 대학의 3학(문법·논리학·수사학)과 4과(기하학·산수·천문학·음악)는 백과사전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왔다.

따라서 초기 백과사전 편집자들은 이 7개의 교양학문을 인간 지식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고, 이 학문들에 대한 지식없이는 백과사전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백과사전이 참고도서로 보다 나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였지만 이러한 배열방식이 지식을 조각낸다는 사실에 점차 고민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주제별로 분류한 초기 백과사전의 장점들을 보완해서 교육적 기능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15판(1974)을 들 수 있다.

이 15번째 판은 참고도서로서의 역할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교육적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 사전은 프로피디아(지식의 개요)·마이크로피디아(작은 항목 사전)·매크로피디아(깊이있는 지식)·색인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어떤 지식 범주에 속하는 짧은 정보를 제공하는 소항목들은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대항목들에 연계되어 있어 전체적인 지식체계를 얻을 수 있도록 상호 보완되게 만들었다(〈브리태니커 3〉).

백과사전 일반적 특성

일반적인 사전·지도책·인명사전 등 다양한 형태의 참고도서들 가운데 일체가 완비된 것은 백과사전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각각의 사전들은 그 사전이 다루고자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보를 줄 수 있으나, 백과사전은 전체적인 지식의 범주를 다루었으며 주어진 주제에 대해 그때까지 발표된 모든 정보를 포괄적으로 요약해서 제시한다. 이런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사진·지도·도표·통계자료 등이 쓰인다.

독일의 요한 하인리히 체들러가 쓴 〈우니베르살 레시콘 Universal-Lexicon〉(1732) 이후에 나온 백과사전의 대부분은 살아 있는 사람의 항목도 싣고 있다. 스페인에서 출판된 〈에스파사 Espasa〉(1905~)를 비롯한 여러 백과사전들이 외국어 표기를 병기하고 있다.

어느 백과사전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 전에 나왔던 사전의 내용과 경험들을 토대로 새로운 백과사전이 만들어진다. 제작자들은 대개 독자층을 미리 정해놓는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목표에 부응하여 백과사전에 기고해왔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누가 어떤 항목을 썼는지 기재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기고가들의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는 보통 이름의 첫글자만 남기지만 기고자의 신분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는 거의 없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백과사전들은 인쇄술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을 무렵까지 거의 전부가 라틴어로 쓰여졌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백과사전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초기부터 중요한 백과사전은 자국어로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나중에는 보다 여러 나라 말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백과사전이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성공하지는 않았다.

각 나라마다 백과사전이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은 때때로 그것이 출판되어 나온 사회의 문화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초기 백과사전 편찬자들이 사전의 이름에 '거울'(speculum)이나 '표상'(imago)과 같은 단어를 많이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 거듭해서 발행하는 백과사전들의 각 판(版)은 출판 당시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모든 위대한 백과사전 제작자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문명이나 문화를 충실히,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제시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완벽한 중립을 지키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다른 출판물들과 마찬가지로 백과사전 또한 정치 권력으로부터 검열·출판금지 등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에스파사(Espasa)
에스파사(Espasa)

편집과 출판

〈컬럼비아 백과사전 Columbia Encyclopedia〉·〈소(小)라루스 백과사전 Petit Larousse〉·〈허친슨 신(新) 20세기 백과사전 Hutchinson's New 20th Century Encyclopedia〉·〈랜덤하우스 백과사전 Random House Encyclopedia〉과 같이 단권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둔 백과사전들이 꽤 있지만 단권으로 된 백과사전보다는 여러 권으로 된 전집형태가 일반적이다.

백과사전의 권수도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데 중국에서 나온 백과사전들은 대부분 서구의 것들보다 훨씬 권수가 많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백과사전들은 20~30권 정도로 19세기의 백과사전들보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종이두께가 얇아지고 흑백뿐만 아니라 컬러 삽화까지 선명하게 재생하여 내용은 훨씬 풍부해졌다.

책의 권수보다 더 주목할 만한 변화는 항목들의 평균 길이이다.

과거에는 중요한 모든 항목들에 상당히 많은 공간을 할애했지만 19세기에 들어 큰 항목들을 작은 항목으로 나누어 알파벳 순으로 배열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높아졌다. 이처럼 보다 세분화된 접근방식을 선호한 편집자들은 구체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독자들이 특정한 정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거시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들은 각 부분항목에 제시되어 있는 관련항목을 찾아봄으로써 나름대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관련항목을 철저히 찾아보지 않으며, 조각낸 항목들은 넓은 범위의 주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접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전집(全集)을 통해 그 주제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반복해서 서술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로크하우스 Brockhaus〉·〈마이어 Meyer〉·〈라루스〉와 같이 짧은 항목들로 이루어진 백과사전이 여전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초기 백과사전 제작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 나머지 혼자서 백과사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그렇게 만들어진 사전은 아직까지 1권도 없었으며, 뱅상을 포함한 많은 편찬자들이 작가뿐 아니라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완성했다.

중요한 항목은 당대의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한편 각 분야별로 편집 책임자를 두어 학문의 각 영역과 그 내용을 관리하게 하는 오늘날의 방식은 앞으로의 백과사전 제작방식에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오늘날의 백과사전은 독자들이 정보를 보다 쉽고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많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첨가되어 있다. 과거에는 표제를 눈에 띄게 만들거나, 1칸 들여 쓰거나, 또는 굵은 활자를 사용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 항목과 다른 항목을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각 페이지 위에 다는 난외표제(欄外標題)나 알파벳 표시의 필요성도 깨닫지 못했으며, 이름이 똑같은 인명 항목들은 각각의 인물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백과사전의 내용을 보조하는 것들로 관련항목·색인·삽화 등이 있다. 현대 백과사전에서는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는 관련항목은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에서 처음으로 '……를 보시오'라는 말 대신 화살표를 써서 참조할 항목을 나타내어 오늘날 관련항목 표시의 시초가 되었다.

색인은 이들 보조요소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훌륭한 색인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였다. 초기 백과사전에 실린 삽화들은 대개 유용성보다는 장식적인 효과를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17세기말부터 비교적 우수한 백과사전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동판으로 인쇄한 삽화를 싣기 시작했다. 지금은 보다 정교하고 다채로우면서 호화스러운 삽화를 싣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부록이나 연감 등을 이용해서 백과사전의 내용을 항상 최신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이미 2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부록을 펴냈지만 서구의 방식과는 크게 달랐다. 오늘날 백과사전의 일반적인 특징으로는 연감을 꼽을 수 있다. 연감은 매년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새로운 지식이 발견될 때마다 원래의 책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따로 기록함으로써 제작 작업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든다. 또한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잘못 보도된 사실을 알려주는 임무도 수행하며, 일간지나 주간지들보다 훨씬 조리있는 논평과 해설을 제시한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몇몇 우수한 백과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조수단을 제공한다.

즉 백과사전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독자들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주기 위해 때때로 주제별 안내서를 발간한다. 이 안내서는 대화형식으로 전체적 체계의 개요를 설명하고 각 주제를 부각시켜 독자를 필요한 항목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수준높은 독학(獨學)의 수단이 되며 백과사전의 귀중한 보조자료가 된다. 그외에도 조사 서비스 제도를 도입하여 백과사전에 잘못 다루어져 있거나 취급되지 않은 분야에 관해 출판사측에 일정 한도 내에서 질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유지비가 많이 들지만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며, 그와 동시에 백과사전 편집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만든 사전의 문제점들을 알게 해준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유명 백과사전의 모든 내용을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다. 사전 맨 앞부분에 명단이 실려 있는 여러 학자들로 구성된 편집진들이 사전에 담긴 모든 내용을 꼼꼼히 확인했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백과사전의 편집인들은 원고를 유명 학자보다 유명한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문가가 쓴 글은 이론중심적인 학자가 쓴 것과 많이 다르다.

백과사전의 항목을 집필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공간 예술이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내용을 압축해 넣어야 하므로 중요한 사항이 빠져서도 안되고 쓸데없는 사항이 들어가서도 안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백과사전 항목을 하나 집필하는 것보다 책을 1권 쓰는 것이 쉽다는 데에 공감한다.

그들은 또한 정기간행물에 기사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백과사전 집필이란 공동작업이므로 같은 주제에 관한 항목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지어서 편집해야 한다.

개정과 최신정보 보완이라는 작업은 백과사전 제작자들에게 가장 힘든 과제 중의 하나이다. 20세기초부터 각 판(版) 사이의 시간차를 메꾸기 위해 1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요약해서 연감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또 계속해서 개정을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융통성있게 개선되기도 하고, 최신 정보를 보충해넣기도 했다.

그러나 개정이라는 작업은 1질 안에 있는 항목들이 속보성(速報性)이라는 측면에서 불균형을 이루게 되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즉 항목의 개정이 요구되는 변화나 사건은 과학·기술·인명·역사 같은 분야에서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의 항목들은 변화가 미미한 인문과학분야의 항목들보다 훨씬 자주 개정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점으로는 수천 개에 달하는 항목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개정작업 자체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편집자들은 새로운 사실에 영향을 받을 모든 항목들을 빠짐없이 고치지는 못한다.

둘째로, 한 항목에 최신 정보를 넣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항목을 끝맺기가 어렵다. 또한 과학분야의 새로운 발견은 지금까지 다른 모든 관련항목들의 기초가 되어왔던 이론을 뒤짚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단순히 어떤 날짜나 단어, 문장을 끼워넣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부분 또는 항목 전체를 다시 써야 한다. 오늘날 과학분야의 연구·개발 속도로 미루어보아 이 문제는 머지 않아 백과사전 편집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현대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백과사전 편집자들은 정보의 저장·수정·분류에 관한 새로운 기술로 백과사전의 개정을 보다 쉽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해결책으로 초기에는 컴퓨터나 워드프로세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지만 소위 비디오디스크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는 방법도 한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다. 컴퓨터는 저장용량이 방대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과 조작이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백과사전 회사에서는 컴퓨터가 편집실의 귀중한 부대시설이 되었다. 미국의 그롤리어사와 엔사이클로피디아브리태니커사는 컴퓨터 기술을 응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전자 백과사전 시대가 열릴 것이며, 색인이나 알파벳 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사실이 나오는 그날로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백과사전들은 특정 항목이 편견을 가지고 씌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6·25전쟁의 경우 그 항목을 대한민국·북한·중국·미국 작가 중 누가 썼는지에 따라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몇 년 전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사항들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종류

16세기까지 대부분의 백과사전들은 가능한 한 많은 주제에 관해 쓴 당대의 가장 중요한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이 글 모음집은 각 편찬자마다 다르게 정의를 내린 인간 지식의 우선 순위에 따라 배열 순서가 달랐다.

10, 11세기경 어휘사전이 많이 발간되는 데 자극받아 새로운 양식의 백과사전이 등장했다. 초기 어휘사전들은 대부분 용어집을 확대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수이다스 Suidas〉 이후로는 백과사전식 어휘사전이 나오기 시작하여 단어의 정의와 어원뿐 아니라 사물이나 개념의 기능과 작용까지 덧붙였다.

16, 17세기의 백과사전 편집자들은 어휘사전들이 알파벳 순으로 항목을 배열하여 이미 독자들과 친숙해진 뒤였으므로 그 체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1600년 이전의 백과사전들은 이해관계와 성취동기·교육수준이 비슷한 소수 집단을 위해 씌어졌다. 그들은 대개 종교나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나아가 각기 다른 나라의 국민일지라도 자신들의 지식과 당시의 유럽 공동어인 라틴어로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 시기였으므로 백과사전에 있어서도 한층 나은 형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무르익었다.

로마의 티투스 황제(39~81) 시대에 플리니우스가 제작한 〈박물지 Historia naturalis〉는 고대 백과사전의 절정을 이루었다.

플리니우스나 그 이전 시대의 백과사전 제작자들은 종교에 관해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대신 정치·지리·동물학·의학·역사와 그밖의 실생활과 밀접한 문제들을 강조했다. 철학자들의 이론을 전개할 때는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5, 6세기 이후 700년간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아 서구의 백과사전 제작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같은 시기의 아랍 백과사전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이때의 백과사전들은 종교를 과도하게 선전하지는 않았지만 사전 전체가 종교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백과사전 발전의 3번째 단계는 자국어로 된 사전이 소개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신학이 더이상 분류의 척도가 아니었으며, 성장하는 상인계층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실질적인 문제에 보다 많은 공간과 의미를 부여했다.

17,18세기는 16세기 프랑스의 에스티엔가(家)가 개척한 백과사전식 사전이 번성했다.

이때의 백과사전 정책은 2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하나는 독일의 요한 테오도르 야블론스키와 요한 하인리히 체들러가 만든 것들처럼 역사와 인명을 특히 중시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술과 과학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것을 고전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것은 현대적인 사전이라 할 수 있다.

백과사전식 사전 시대인 18세기는 눈부신 시기였다.

그러나 초기의 체계적인 방식 대신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참고서적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았다. 즉 백과사전식 사전에서는 항목의 길이가 비교적 짧으므로 독자들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실의 단편적인 지식밖에 얻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방안은 스코틀랜드의 앤드루 (1726~1809), 콜린 맥파쿠하(1745~93), 윌리엄 스멜리(1740~95) 등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초판(1768~71)을 제작하면서 어느 정도 제시되었다.

그들은 〈백과전서 L'Encyclopédie〉의 결점을 잘 알고 새로운 방안을 고안해냈다. 즉 백과사전을 45개의 중요한 주제로 구성하고, 주제가 바뀔 때마다 한 페이지 전체에 그 제목을 달아줌으로써 다른 주제들과 구별되도록 했다. 또 이 주제들을 30개의 대항목으로 보충했고 그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소항목을 배치하여 필요한 곳에 전체 주제에 대한 관련항목을 증가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알파벳 순으로 배열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유형이 영어권 국가들을 거의 독점한 반면 비영어권에서는 독일의 〈브로크하우스〉가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은 총체적인 지식을 매우 전문적인 주제로 분석하는 방식을 따랐다. 주제들은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었고 정선된 항목들은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또 관련항목을 독창적으로 이용하여 색인없이도 항목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 있었다. 〈브리태니커〉나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이 19, 20세기 백과사전의 전형이기는 하지만 이전 시대의 백과사전들도 상당수 남아 있었다.

한편 〈브로크하우스〉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위세를 떨칠 무렵 미국에서는 노아 웹스터가 자신의 사전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대부분의 백과사전들은 순수한 학문적 견지에서 편집되었지만 그 사회의 이해관계와 정책에 따라 어느 정도는 표현의 자유가 억제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심사숙고해서 만든 백과사전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사학자들이 높이 평가하는 독특한 사전으로 16세기 스페인에서 나온 〈신(新)스페인 박물지 Historia general de las cosas de nueva España〉가 있다.

이 사전은 지금까지 출판된 백과사전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들 중 하나로 꼽히며, 언어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특히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고대 아랍, 중국의 백과사전들은 업무에 필요한 문화적 정보를 얻고자 하는 관리들이나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 많다. 이 백과사전들은 또 7~15세기 중국, 이슬람 사회의 행정과 법에 관한 개념을 분명히 했다. 특별한 목적으로 백과사전을 제작할 때는 종교나 정치문제가 주요대상이 되었다.

19세기 이전에 어린이 백과사전을 펴낸 사람은 〈아동도서 모음 Pera Librorum Juvenilium〉(1695)을 출판한 요한 바겐세일(1633~1705)뿐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라루스가 재미있는 〈어린이 소(小)백과사전 Petite Encyclopédie du jeune age〉(1853)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속 판인 〈라루스 어린이 백과사전 Encyclopédie Larousse des enfants〉은 1957년에 나왔다. 현대 어린이 백과사전 가운데 뛰어난 것으로 영국의 작가이자 편집자인 아서 미(1875~1943)가 만든 백과사전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백과사전은 영국에서는 〈어린이 백과사전 The Children's Encyclopaedia〉(1910), 미국에서는 〈지식에 관한 책 The Book of Knowledge〉(1912)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출판되었으며, 여기에 실린 색인은 오늘날까지 여러 사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1971년 엔사이클로피디아브리태니커사에서는 〈어린이 백과사전 Young Children's Encyclopaedia〉을 펴냈다.

이 백과사전은 글을 막 깨우치기는 했으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총 16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삽화들은 모두 컬러로 인쇄되었으며 내용도 짧고 간략했다. 이 사전은 뒤에 일본어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1922년 프랑크 E. 콤프턴은 그 시대에서는 완전히 새롭고 획기적인 〈콤프턴 그림 백과사전 Compton's Pictured Encyclopedia〉을 출판했다. 〈콤프턴 백과사전 Compton's Encyclopedia〉·〈브리태니커 주니어 백과사전 Britannica Junior Encyclopaedia〉·〈옥스퍼드 주니어 백과사전 Oxford Junior Encyclopaedia〉 등은 11세 이상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류, 박물지, 우주, 통신, 위인(偉人), 농어업, 공업과 상업, 공학, 레크리에이션, 법과 규범, 가정, 예술(기술) 등을 체계적으로 기술해놓았다.

삽화가 많았으며, 모든 내용은 알파벳 순으로 배치되었고 색인을 따로 1권에 묶었다.

18세기 이전에는 전문화된 백과사전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백과사전이 나오게 된 동기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은 과학과 기술 백과사전의 수가 늘어난 데 있다.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전문 백과사전은 독일의 전기작가 크리스티안 고틀리브 예허가 편집한 〈일반 학구사전 Allgemeines Gelehrten Lexicon〉(1750~51)이다.

예허의 백과사전은 독일의 언어학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델룽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맥이 이어졌으며, 지금도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문 백과사전의 발전은 학문세계의 또다른 발전을 의미한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윌리엄 니콜슨(1753~1815)은 그 분야에서는 최초로 〈화학사전 Dictionary of Chemistry〉(1795)을 펴냈다.

독일 과학자 레오폴트 그멜린이 쓴 〈이론화학 핸드북 Handbuch der theoretischen Chemie〉(1817~19) 역시 매우 뛰어난 사전으로 지금도 그멜린 협회에서 신판을 찍어내고 있다. 러시아계(系) 과학자 프리드리히 콘라드 베일슈타인의 〈유기화학 핸드북 Handbuch der organischen Chemie〉은 1880~8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발행되었으며, 오늘날 이 분야에서 가장 상세한 백과사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랫동안 시장을 휩쓸었던 화학 백과사전이나 핸드북에 견줄 만한 전문분야 백과사전으로는 음악분야를 들 수 있다.

이 분야에서는 독일 작곡가이자 음악사전 편찬자인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가 〈음악사전 Musikalisches Lexikon〉(1732)을 만든 것을 시초로, 독일의 오르간 연주자이자 음악 역사학자인 에른스트 루트비히 게르버가 〈음악가 인명, 역사 사전 Historischbiographisches Lexikon der Tonkünstler〉(1790~92)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또 프랑스의 알베르 라비냐크가 만든 〈음악 백과사전 및 음악학교 사전 Encyclopédie de la musique et dictionnaire du Conservatoire〉(1913~31)은 리오넬 드 라 로랑시가 뒤를 이어 출판했다.

독일 철학자 G. W. F. 헤겔의 〈철학지식 백과사전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1817)은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3부분, 즉 논리학·자연·정신으로 나누어 해설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이 사전은 그뒤로 일반 백과사전을 만드는 편집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철학분야에서는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마크 볼드윈이 발행한 〈철학·심리학 사전 Dictionary of Philosophy and Psychology〉이 오랫동안 표준이 되어왔지만, 현대적 취향에 더 잘 맞게 씌어진 것은 〈철학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Philosophy〉(1967)이다.

한편 건축출판협회에서도 1852년 〈건축 백과사전 Dictionary of Architecture〉을 발행하기 시작했지만 이 사전은 완성될 때까지 40년이 걸렸다.

보다 현대적인 것으로는 〈세계 예술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World Art〉(1959~68)·〈그리스도교와 고대 유물에 관한 백과사전 Reallexikon für Antike und Christentum〉(1950~) 등이 있다.

독일 언어학자 아우구스트 폰 파울리(1796~1845)는 1837년 〈고대 유물·유적에 관한 백과사전 Real Enzyklopädie der classischen Altertumswissenschaft〉을 출판했으며, 1893년 독일의 다른 언어학자 게오르크 비소바가 이 사전의 신판을 만들었다.

고대 학문에 대한 이 거대한 작업은 세계 어디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값진 업적이다. 그결과 '파울리-비소바'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위스 신학자 J.J. 헤르초크(1805~82)는 처음으로 종교 백과사전인 〈개신교와 신학에 관한 백과사전 Real-Enzyklopädie für protestantische Theologie und Kirche〉을 펴냈으며, 그 뒤를 이어 그리스도교에 관한 많은 종교 백과사전들이 편찬되었다.

그리스도교 이외에도 이슬람교·유대교에 관한 백과사전도 있다.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3개의 핸드북이 나왔다. 1864년부터 정치·통계 자료로 유명한 〈정치가 연감 The Statesman's Year-Book〉이 출판되기 시작했으며, 1868년 영국의 조지프 위테이커는 〈위테이커 연감 Whitaker's Almanack〉을 처음 발행했고, 〈세계연감 World Almanack〉도 같은 해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외에 1885~1946년 〈시카고 데일리 뉴스 연감 Chicago Daily News Almanac〉이 나왔으며, 1930~35년에는 〈사회과학 백과사전 Encyclopaedia of the Social Sciences〉이 출판되었다.

문학분야에서는 아이작 디즈레일리의 〈문학 진사(珍事) Curiosities of Literature〉(1791)를 제외하면 영국의 에버니저 코브햄 브루어(1810~97)가 쓴 〈경구(警句)·속담 사전 Dictionary of Phrase and Fable〉(1870)이 가장 중요하다.

19세기말에는 3개의 중요한 전문 백과사전이 나왔다. 프랑스의 앙리 바용이 만든 〈식물학 사전 Dictionnaire de botanique〉(1876~92), 독일의 오토 루에거가 쓴 〈기술용어사전 Lexikon der gesamten Technik〉(1894~99), 베를린 아카데미에서 펴낸 〈수학 백과사전 Enzyklopädie der mathematische Wissenschaften〉(1898~1935)이 그것들이다.

물리학은 화학이나 화공학 분야만큼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따라서 1922~23년에야 이 분야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응용물리학 사전 Dictionary of Applied Physics〉이 영국 물리학자 리처드 글레이즈브룩에 의해 나왔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제임스 솔리스가 만든 〈물리학 백과사전 Encyclopaedic Dictionary of Physics〉(1961~64)이 있다.

의학분야에서는 〈영국 의료 백과사전 British Encyclopaedia of Medical Practice〉(1936~39)이 발판을 마련했고, 뒤이어 〈일반 진료에 관한 백과사전 The Encyclopaedia of General Practice〉(1963)이 나왔다.

그밖에 최근에 출판된 중요한 백과사전이나 핸드북으로 〈사진술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Photography〉(1949), 지금까지 상연된 모든 연극에 대한 자료가 풍부한 삽화와 함께 실린 〈연극 백과사전 Enciclopedia dello spettacolo〉(1954~62), 〈영화·텔레비전 사전 Dictionnaire du cinema et de la television〉(1965~), 〈맥그로 힐 과학기술 백과사전 McGraw-Hill Encyclopedia of Science and Technology〉(1960), 〈도서관학·정보처리학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1968~) 등이 있다.

19세기에는 한 국가나 지역만을 다룬 특수한 백과사전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리 백과사전들은 다른 책에서는 지극히 짧게 다루고 있는 섬이나 소도시 등을 자세히 실어 그 분야에 특히 도움을 많이 주었다. 현대 지리 백과사전들 가운데 뛰어난 것으로 〈베스터만 지리 사전 Westermanns Lexikon der Geographie〉(1968~), 〈마이어 대륙·해양 사전 Meyers Kontinente und Meere〉(1968~), 러시아의 〈지리 소사전 Kratkaya geograficheskaya entsiklopedya〉(1960~66), 〈지리학 사전 Länderlexikon〉(1953~60)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백과사전에는 구하기 어려운 지도나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Brockhaus Enzyklopadie)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Brockhaus Enzyklopadie)

역사

최초의 백과사전은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푸스(BC 339/338 죽음)가 삼촌의 사상을 박물지·수학·철학 등으로 분류해서 편찬한 여러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는데,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들은 이 책의 제작에 플라톤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폭넓은 문화적 배경을 전달한 백과사전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것이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한 반면 로마인들은 현존하는 지식을 읽기 쉬운 형태로 요약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마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일종의 광대한 정보 모음집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이다. 이 책은 사실과 공상을 별 구분없이 기록해놓기는 했어도 그뒤 적어도 1,500년 동안은 다른 백과사전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지금까지 로마 시대의 조각과 회화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11세기말에서 12세기경에 〈수다 Suda〉 또는 〈수이다스〉라는 백과사전식 사전이 나왔는데, 이 사전은 전통을 깨고 알파벳 순으로 내용을 정리했으며, 유익한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그뒤 오랫동안 중요한 자료원으로 쓰였다.

12세기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호노리우스 인클루수스의 〈세상의 거울 Imago mundi〉을 꼽을 수 있다. 이 책은 약 200년 동안 엄청난 부수를 기록했고, 불법 표절과 끊임없는 비평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증보판을 찍어냈다.

여성이 편집한 최초의 백과사전은 수녀원장이었던 헤라드(1195 죽음)가 자신이 맡고 있던 수녀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쓴 〈호르투스 델리키아룸 Hortus deliciarum〉이다.

가장 뛰어난 중세의 백과사전은 뱅상의 〈스페쿨룸 마유스〉로 뱅상 혼자서 모든 항목을 집필한 것은 아니었다. 이 백과사전은 80권에 약 1만 장(章)으로 구성되었으며, 18세기 중반까지 그 규모에 있어 어떤 백과사전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방대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었고 '자연'·'학문'·'역사'로 나누어진 3부분에 거의 비슷한 공간을 할애했다. 뱅상이 죽은 뒤 첨가된 '윤리' 부분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기초로 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 1863~79년에는 완벽한 재판(再版)이 나왔다. 이 책의 가치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13세기 중반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뱅상 시대 이후로는 종교인들만이 아닌 보다 많은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백과사전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라틴어에서 벗어난 첫번째 백과사전은 단테의 스승이었던 브루네토 라티니(1220경~95)가 쓴 〈Li livres dou tresor〉이다. 배열방식은 뱅상과 비슷했지만 접근방식은 훨씬 간결했다. 이 백과사전은 프랑스어로 제작되었는데 간단하고 정확해 단시간 내에 널리 보급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신이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Instauratio magna〉를 쓴 목적이 사물과 이성 간의 논리적이고 진정한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서 "완전한 기초 위에 세워진 과학과 예술 및 인간의 모든 지식을 완벽하게 개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 거대한 계획은 일부분밖에 완성되지 않았지만 '자연계'·'인간'·'인간의 활동'으로 나눈 지식에 대한 새로운 분류법이 주목할 만하다.

앙투안 퓌르티에르가 펴낸 백과사전 〈과학기술 일반사전 Dictionnaire universel des arts et sciences〉(1690)은 한층 더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어진 것이었다. 그는 과학과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의 과학·기술·문화에 대해 급속히 늘어가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프랑스 백과사전들의 번역판으로 만족했던 영국 사회는 과학과 기술에 역점을 둔 존 해리스의 〈기술용어사전 Lexicon Technicum〉(1704)이 출간되자 영국 내의 판도가 뒤바뀌었다. 이프레임 체임버스〈사이클로피디아 Cyclopaedia〉(1728)을 펴낼 때, 해리스가 그랬듯이 인명은 생략하고 과학과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고대와 현대의 철학체계를 명확히 밝히는 데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의 백과사전은 관련항목을 적절하게 사용해 지금은 현대 백과사전의 아버지로 불린다.

프랑스의 디드로달랑베르가 편집한 〈백과전서〉(1751~65)는 규모의 방대함뿐만 아니라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선진 사상가들이 기고한 뛰어난 집필로도 유명하며,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사전은 당시 논쟁의 대상이었던 문제들을 길게 다루기 위해, 필요한 항목들을 많이 빼버렸다는 결점을 안고 있다. 한편 외국 백과사전의 번역판에 의존하고 있던 독일에서도 프리드리히 아르놀트 브로크하우스가 독일 국민들의 진정한 필요를 인식하고 〈Konversations-Lexikon〉(1796~1811)을 제작했다. 이 사전은 간결·정확하고 내용이 평이하면서도 최신 정보를 담고 있는 등 성공적인 백과사전의 요소들을 갖추어 뒤이어 나온 서구사회 백과사전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베이컨의 〈인스타우라티오 마그나〉, 디드로의 〈백과전서〉, 〈브리태니커〉, 〈브로크하우스〉 외에도 백과사전 편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것으로 프랑스의 피에르 라루스가 만든 사전을 들 수 있다.

그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백과사전을 만들어 남다른 명성을 얻었다. 전권을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집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간략함을 위해 문체를 손상시키는 경우도 없었으며, 프랑스 독자들의 기호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노아 웹스터의 등장은 브로크하우스나 라루스에 비길 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웹스터의 〈아메리칸 영어사전 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1828)은 백과사전적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긴 항목을 싣지 않고 보다 중요한 항목들이 많이 들어가도록 했다.

그의 이러한 방식은 미국인들의 구미에 잘 맞아서 거대한 시장을 장악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해나갔다.

19세기 영국의 백과사전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듯이 보였으나 대부분의 출판업자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 파산했다. 그러나 로버트 체임버스와 윌리엄 체임버스 형제가 처음으로 발간한 이래 지금까지 출판되고 있는 〈체임버스 백과사전 Chambers's Encyclopaedia〉(1860~68)은 유일한 예외이다.

19세기 초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백과사전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늘어났다. 그 가운데 러시아의 〈Entsiklopedichesky slovar〉(1895)는 이 사전을 펴낸 그라나트 러시아 서지학협회(書誌學協會)의 이름을 따서 '그라나트'로 알려졌다. 이 사전의 2번째 판(1910~48)에는 '마르크스'와 '19세기 러시아의 농지문제'에 관해 쓴 레닌의 글을 비롯해 중요한 항목들이 들어 있다.

19세기는 실질적으로 현대 백과사전의 모든 특징이 나타난 시기였으며 편집수준도 상당히 높았다.

1890~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국에서 〈브로크하우스〉의 러시아판이 나왔다. 1926~47년에는 '그라나트' 다음으로 중요한 〈소비에트 대백과사전 Bolshaya sovetskaya entsiklopedya〉(총 65권)이 나왔지만 평판이 좋지 못했다.

이 사전의 재판(1949~58) 역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해서 내용을 전개했으나 비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다소 공정한 입장을 취했다. 이 백과사전은 소련의 거의 모든 문화적 자료를 제공했고, 8,000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기고했다. 부록으로 만든 참고도서 목록은 실로 세계적인 규모였다. 1970~78년에 나온 30권으로 이루어진 3번째 판은 내용을 재편집하고 작은 활자체를 써서 크기가 줄었다. 1973~82년 맥밀리언은 이 백과사전의 영어판을 출간했다.

〈에스파사 Espasa〉(1905~33)·〈Diccionario Salvat〉(1907~13)·〈Enciclopedia labor〉(1955~60) 등은 대표적인 스페인 백과사전들이다.

〈이탈리아 백과사전 Enciclopedia italiana〉(1929~39)은 모든 백과사전 가운데 최고의 것으로 꼽히며, 최고급 삽화, 길고 학문적이며 자료가 풍부한 항목들로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브로크하우스〉·〈마이어〉·〈헤르더 Herder〉의 독일 3대 백과사전이 계속 신판으로 나오고 있으며, 다른 어떤 사전들도 이들의 영역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의 프랑스 백과사전계는 라루스 백과사전의 인기가 계속되는 한편 주목할 만한 3개의 백과사전이 새롭게 발간되었다.

제일 먼저 나온 〈프랑스 백과사전 Encyclopédie fran이미지aise〉(1935~66)은 유명한 학자와 전문가들의 학술논문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뛰어난 백과사전으로 한장한장 뽑아볼 수 있게 제본되었으며, 별도로 색인을 계속 개정해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그 다음 나온 〈Encyclopédie de la Pléiade〉(1955~)는 백과사전식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데 때때로 1권 이상으로 발간된 각 부분들은 담화체로 쓰여졌으며 광범위한 주제들을 완성도 높게 취급하고 있다.

클로드 그레고리가 편집한 〈세계 백과사전 Encyclopaedia universalis〉(1968~75)은 현대 과학기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백과사전은 '합작'으로 제작되었는데, 합작 제작은 대개 2개국 이상의 편집자들이 그중 한 나라에서, 또는 여러 국가용으로 부분 수정해 판매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합작 백과사전들 가운데 성공한 대표적인 예로 일본에서 나온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Britannica International Encyclopaedia〉과 중국의 〈간명 브리태니커 백과전서 簡明大英百科全書〉를 들 수 있다.

한편 미국의 〈랜덤 하우스 백과사전 The Random House Encyclopedia〉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동양의 백과사전

동양은 서양보다 백과사전을 제작한 역사가 더 길며, 더 많은 공헌을 했다.

중국은 약 2,000년 동안 백과사전을 만들어왔지만 그들의 백과사전이란, 사전적 요소를 일부 가미한 문학작품 선집(選集)이라는 점에서 현대 서구 백과사전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최초의 중국 백과사전으로 알려진 것은 220년경 황제의 명령으로 제작된 〈어람 御覽〉이나 지금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620년경 구양순(歐陽詢:557~641)이 47부분으로 구분한 〈예문유취 藝文類聚〉 100권을 지었다.

우세남(虞世南:558~638)의 〈북당서초 北堂書鈔〉는 보다 중요한 저작으로, 조직과 일반 행정의 세부사항을 특별히 다루었다.

700년경에는 서견(徐堅:659~729)과 그의 동료들이 〈초학기 初學記〉를 펴냈다. 송(宋)나라 때는 칙명에 따라 이방(李昉)이 〈태평어람 太平御覽〉을 편찬했다. 〈책부원구 冊府元龜〉(1013경)는 전기(傳記)와 역사에 역점을 둔 책이었다.

중국 백과사전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내용이 풍부하다고 평가되는 〈옥해 玉海〉는 1267년경 송대의 유명한 학자 왕응린(王應麟:1223~92)이 편찬했고, 1738년 240권으로 된 재판이 나왔다. 15세기초에는 그때까지 출간된 중국 백과사전들 중 가장 규모가 큰 〈영락대전 永樂大典〉이 나왔다. 그러나 2만 2,937권 가운데 매우 적은 부분만이 후대에까지 전해져 1963년 이것들을 모아 다시 출판했다.

육봉조(陸鳳藻)의 〈소지록 小知錄〉(1804)은 그 이전까지 무시해왔던 기술용어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진정한 최초의 중국 백과사전은 루얼쿠이[陸爾奎]가 쓴 〈사원 詞源〉(1915)으로, 이것은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백과사전들의 귀감이 되었다.

1984~85년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제15판을 중국어로 번역해 10권으로 된 〈간명 브리태니커 백과전서〉를 출판했다.

일본의 경우에는 에도(도쿠가와) 시대에 일본과 중국의 주요 저술들을 간추려 모아놓은 책이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대백과사전〉(28권, 1931~35)·〈국민백과사전〉(15권, 1934~37)·〈세계대백과사전〉(24권, 1955~68)·〈자포니카〉(29권, 1967~72) 등과 같은 보다 완성된 형태의 일반 백과사전이 쇼와 시대(1926~88)에 출판되었다. 1972~75년에 출판된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28권)은 미국의 엔사이클로피디아브리태니커사와 도쿄방송국(TBS)이 티비에스브리태니커사라는 이름으로 합작해 만들었다.

아랍권에서 나온 초기 백과사전은 크게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견문을 넓히고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급속히 늘어나는 행정관리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 2번째 유형은 아랍인들이 지중해 연안의 많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시절에 비롯된 것이었다. 최초의 진정한 아랍 백과사전은 이븐 쿠타이바(828~889)의 〈최상의 전통 Kitāb ⁽Uyün al-Akhbār〉이다. 이 사전은 전통적인 경구(警句), 역사인 예증(例證), 고대 아랍 시(詩) 등을 인용해서 만들었으며, 이후 아랍 백과사전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이집트의 알칼카샨디(1418 죽음)가 편찬한 〈수브흐 알 아샤 Ṣubḥ al-a⁽shā〉는 지리, 정치사, 박물지, 동물학, 광물학, 우주지(宇宙誌), 시간 측정 등을 다룬 중요한 사전이다. 그밖에 동양의 중요한 백과사전들로는 〈미얀마 백과사전 Encyclopaedia Burmanica〉(1954~), 〈인도네시아 백과사전 Ensiklopedia Indonesia〉(1954), 스리랑카의 〈싱할라 백과사전 Sinhalese Encyclopedia〉(1963~) 등이 있다.

영락대전(永樂大典)
영락대전(永樂大典)

한국의 백과사전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은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 芝峰類說〉(1614)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중국을 다녀오면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삼아 총 3,435항목을 20권으로 간행했다. 이 책에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동남아시아 및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에 관한 사실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뒤로는 1644년(인조 22) 김육이 편찬한 유서 〈유원총보 類苑叢寶〉가 간행되었고, 1654년(효종 5)에는 오명리가 편찬한 〈고금설원 古今說苑〉이 간행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중기의 백과사전류는 주로 개인 편찬으로 이루어졌다. 이밖에도 영조 때 이익이 편찬한 〈성호사설 星湖僿說〉 30권이 있고, 1770년 한국 최초의 관찬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 東國文獻備考〉가 영조의 명으로 홍봉한 등에 의해 편찬·간행되었다. 우리나라의 상고시대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문물제도를 총 망라한 이 책은 1908년(융희 2)에 홍문관에서 증보 수정해 〈증보문헌비고 增補文獻備考〉로 간행했다.

1798년(정조 22)에는 권문해(1534~91) 편저의 백과서인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郡玉〉이 간행되었다. 또 영조 때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잡동산이 雜同散異〉, 정조 때 이규경(1788~?)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 고종 때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 林下筆記〉 등도 널리 알려진 백과사전들이다.

현대로 접어들어서는 1958년 학원사에서 〈대백과사전〉을 전6권으로 간행했고, 1959년에는 동아출판사(지금의 두산동아)에서 〈새백과사전〉을 단권으로 간행했으며, 1974년에는 태극출판사의 분야별 〈세계대백과사전〉이 전16권으로 간행되었다.

이 〈세계대백과사전〉은 주제별로 항목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백과사전으로는 중앙출판사의 〈학생백과대사전〉, 금성출판사의 〈학생백과〉(1986), 계몽사의 〈컬러학습대백과〉 등이 있으며, 중고생을 위한 금성출판사의 〈중고학습백과대사전〉(1987)이 있다. 단권짜리 백과사전으로는 중앙일보사에서 출간한 〈VIP 중앙대백과〉(1985)와 일중당에서 나온 〈세계대백과사전〉(1988)을 들 수 있다. 이들은 1권으로 된 만큼 항목의 길이가 짧고 설명이 개괄적이다.

일중당의 〈세계대백과사전〉은 컬러 화보를 싣지 않았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백과사전의 시초는 1982년 동아출판사에서 전30권으로 발간한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1980년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도 총 27권, 6만 5,000항목으로 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개발하기 시작해서 1991년에 완성했다. 이 백과사전의 제26권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연표와 편람을 싣고 있으며, 제27권에는 색인을 실어 독자들의 편의와 폭넓은 이해를 도모했다.

1989년부터 발간에 착수한 〈브리태니커 세계 대백과사전〉은 영문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모체로 하여 일본어판 〈브리태니커 국제대백과사전〉, 중국어판 〈간명 브리태니커 백과전서〉의 중요 자료들과 한국·일본·중국 등 동양학 관련항목을 크게 보완 집필해 총 11만여 항목을 25권에 싣고, 제26권은 참고문헌으로, 제27권은 색인으로 한 총27권이 1994년 3월에 완간되었다.

완간 이후부터는 매년 연감도 발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학원출판공사가 93년 1월부터 발매한 전32권으로 된 〈학원세계대백과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