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베냐민

[ Benjamin ]

오른손아들’이란 뜻. 라헬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12번째(막내) 아들.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 지파의 선조가 되었다(민 26:38-41).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의 도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귀향하기 위해 벧엘에서 에브랏으로 여행하던 중 태어났다. 라헬은 분만 후 극심한 산고(産苦)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창 35:16-20). 숨을 거두기 전 라헬은 자신의 슬픔을 반영하여 아이에게 ‘베노니’(‘내 슬픔의 아들’이란 뜻)라 이름하였으나, 야곱은 그 아이를 ‘베냐민’이라 불렀다(창 35:18).

사랑하는 아내죽음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야곱은 베냐민을 지극히 사랑했고(창 42:4, 36; 44:29-30), 친형인 요셉 역시 베냐민을 특별히 사랑하였다(창 43:34). 그는 부친 야곱의 마지막 유언으로 ‘물어 뜯는 이리’라는 축복예언을 들었다(창 49:27). 이는 그 후손인 베냐민 지파의 용맹(호전)성을 시사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베냐민의 자녀는 벨라, 베겔, 여디아엘, 아스벨, 아하라, 노하, 라바(창 46:21; 민 26:38-41; 대상 7:6, 10; 8:1-2) 등이다.

한편 성경에는 베냐민 지파의 선조 베냐민 이외에 그 후손인 빌한의 아들 베냐민(대상 7:10)과 에스라 당시 이방인 아내와 이혼하림의 아들 베냐민(스 10:32; 느 3:23; 12:34) 등이 소개된다.

베냐민 지파의 역사

야곱막내 아들인 베냐민에게서 시작된 베냐민 지파(창 46:21; 민 26:38-41; 대상 7:6-12)는 출애굽 직후 1차 인구 조사 때 장정만 35,400명이었으며(민 1:37) 40년 후 광야 생활 말미의 인구 조사에서 장정만 45,600명(민 26:41)으로 늘어났지만 그 규모는 다른 지파에 비해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는 ‘물어 뜯는 이리’라는 야곱의 예언대로(창 49:27) 때로는 용감하였고, 때로는 잔인함을 보여 주었다. 이 지파에서는 뛰어난 궁수(弓手)나 왼손잡이 투석자(投石者)들이 많이 배출되어 국가를 위기 가운데서 건져 내는 데 일조한 바 있었다(삿 20:16; 대상 9:40). 모압 왕 에글론을 단검으로 살해하고 이스라엘구원사사 에훗(삿 3:12-20)이나 암몬 족속을 물리치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출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삼상 9:1-2; 11장)은 모두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삿 3:12-20; 삼상 9:1-2).

하지만 사사 시대 말기에 레위인의 첩을 겁탈하고 동족 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베냐민 지파가 멸절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다른 지파의 도움으로 회생했던 사건(삿 19-20장)은 베냐민 지파의 잔인한 동시에 굴곡 많은 삶의 일면을 보여 준다. 이후 통일 왕국 초기 자기 가문 출신인 사울 왕 대신에 왕위를 이은 다윗이 등극하자 처음에는 다소 비협조적이었다(삼하 16:5-13). 그러나 왕국 분열 시대에는 남유다 왕국의 일원으로서 유다 지파운명을 함께하였다(왕상 12:21; 대하 11:1-11).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도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렘 1:1), 모르드개와 에스더도 이 지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에 2:5). 그리고 신약 시대 사도 바울도 베냐민 지파로서의 자긍심을 나타낸 적이 있었다(빌 3:5).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인 맞은 자들(14만 4천 명) 중에 베냐민 지파의 숫자가 1만 2천 명이라고 언급되었다(계 7:8).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

가나안 정복 후 베냐민 지파는 제비뽑기에 의해 팔레스타인 중동부 지역을 분배받았다. 이 지역은 동쪽으로 요단 강, 서쪽으로 단 지파, 남쪽으로 유다 지파, 북쪽으로 에브라임 지파와 경계를 이루었는데(수 18:21-28), 대표적인 도시로는 여리고, 벧엘, 기브온, 예루살렘 등이 있었다. →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보라.

베냐민 지파의 거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