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산

성부산

분류 문학 > 지리 > 산

기본정보

현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위치한 산

일반정보

성부산(星浮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위치한 산으로 성손호산(星損乎山)이라고도 한다. 고구려군에게 포위당한 신라의 군사를 구하기 위해 김유신이 신술로써 별을 띄워 보낸 산으로 유명하다. 성부산의 동남쪽에는 현재 사적 제23호로 지정된 신라 경덕왕릉(新羅 景德王陵)이 위치해 있다.

전문정보

성부산(星浮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위치한 산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2 문호왕법민(文虎王法敏)조 세주(細註)에는 이 산과 관련하여 성손호산(星損乎山)이라는 이칭도 언급하고 있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조에는 성부산의 명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승을 소개하였다.

그 중 하나는 김유신과 관련된 전승이다. 이에 따르면 태종 무열왕 재위시 한산성에 신라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고구려와 말갈의 연합군의 포위로 인해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김유신(金庾信)은 이러한 신라군의 위기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신술을 부려 커다란 독과 같은 광채를 고구려군의 진영에 별처럼 날려 보내 적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김유신이 신술을 부리기 위해 제단을 설치한 곳이 바로 성부산이며, 이 산의 명칭도 김유신이 별을 띄운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승은 김유신 관련 전승의 세주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경(王京)에 어떤 사람이 관직(官職)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시켜 큰 횃불을 만들고 밤에 산에 올라가 들게 하였다. 그날 밤 서울 사람들이 보고서는 모두 괴이한 별이 그곳에 나타났다고 하자, 왕은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을 모아 제사를 지내려고 하였다. 이에 그 아버지가 왕의 제사에 참가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일관(日官)이 왕에게 아뢰기를, “이것은 큰 괴변이 아니라, 단지 한 집안의 아들이 죽고 아버지가 울 징조일 뿐입니다.”라고 하니, 왕은 끝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날 밤 그 아들은 산에서 내려오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다. 이와 동일한 내용의 전승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1 경상도 경주부 고적조에도 실려 있다.

현재 성부산의 동남쪽 기슭에는 사적 제23호로 지정된 신라 경덕왕릉(新羅 景德王陵)이 위치해 있다.(경주시사편찬위원회, 2006)

참고문헌

경주시사편찬위원회, 2006, 『慶州市史』1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태종춘추공)
… 王師定百濟 旣還之後 羅王命諸將 追捕百濟殘賤 屯次于漢山城 高麗靺鞨二國兵來圍之 相擊未解 自五月十一日 至六月二十二日 我兵危甚 王聞之 議群臣曰 計將何出 猶豫未決 庾信馳奏曰 事急矣 人力不可及 唯神術可救 乃於星浮山 設壇修神術 忽有光耀如大甕 從壇上而出 乃星飛而北去[因此名星浮山 山名或有別說云 山在都林之南 秀出一峯是也 京城有一人謀求官 命其子作高炬 夜登此山擧之 其夜京師人望 人皆謂怪星現於其地 王聞之憂懼 募人禳之 其父將應之 <日>官奏曰 此非大怪也 但一家子死父泣之兆耳 遂不行禳法 是夜其子下山 虎傷而死] 漢山城中士卒 怨救兵不至 相視哭泣而已 賊欲攻急 忽有光耀 從南天際來 成霹靂 擊碎砲石三十餘所 賊軍弓箭矛戟籌碎皆仆地 良久乃蘇 奔潰而歸 我軍乃還 …
… 당의 군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돌아간 후 신라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여 백제의 잔당을 쫓아 잡게 하였다. 한산성에 주둔하였는데 고구려·말갈의 두 나라 군사가 와서 포위하였고, 서로 싸웠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5월 11일부터 6월 22일까지는 우리 군사가 매우 위험하게 되었는데, 왕이 이를 듣고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무슨 계책이 없는가?”라고 하였으나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하였다. 유신이 달려와서 아뢰기를 “형세가 위급하니 사람의 힘으로는 미치지 못하고 오로지 신술로써만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성부산에 제단을 설치하고 신술을 부리자 홀연히 커다란 독과 같은 광채가 제단 위에서부터 나와 별처럼 날아 북쪽으로 갔다.[이로 인하여 성부산이라고 하였다. 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설이 있다. 산은 도림(都林)의 남쪽에 있는 것으로 솟아난 한 봉우리가 이것이다. 경성(京城)에 어떤 사람이 관직을 구하는 계책으로 아들을 시켜 큰 횃불을 만들어 밤에 산에 올라가 들게 하였더니, 그날 밤 서울 사람들이 보고서는 모두 괴이한 별이 그곳에 나타났다고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사람들을 모아 제사지내려 하였고, 그 아버지는 장차 거기에 응하고자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것은 큰 괴변이 아니라, 단지 한 집안의 아들이 죽고 아버지가 울 징조일 뿐입니다.”라고 하니, 마침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날 밤 그 아들이 산에서 내려오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한산성 안에 있던 군사들은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며 서로 바라보고 울기만 할 뿐이었다. 적병이 급히 공격하려 하자 홀연히 광채가 남쪽의 하늘 끝으로부터 오더니 벼락이 되어 포석 30여 개를 때려 부쉈다. 적군의 활과 화살, 창은 부서졌고, 군사들도 모두 땅에 엎어지더니 한참 후에서야 깨어나 흩어져서 돌아갔으며, 아군도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