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제품

유리제품

[ 琉璃製品 ]

유리용기 각종. 높이(최대) 24.7cm

유리용기 각종. 높이(최대) 24.7cm

유리는 규사·탄산석회 등의 원료를 용융된 상태에서 냉각하여 얻은 투명하며 단단하고 잘 깨치는 물질로, B.C. 3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청동이나 철과 같은 야금술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는 사용 초기에는 구슬 등의 소형 장식품으로 주로 애용되었으며, 보석으로 취급받았다. 그 후 B.C. 16~15세기경에는 작은 유리용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동·서양으로 널리 퍼졌다.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리의 사용은 청동기시대부터이다. 부여 합송리 돌널무덤(石棺墓) 출토 유리제 대롱옥(管玉)이 가장 오래된 유리 제품이며, 같이 출토된 주조쇠도끼(鑄造鐵斧), 동종방울(銅鐸), 동꺾창(銅戈) 등으로 미루어 보아 B.C. 2세기 전반에 해당한다. 이들 대롱옥의 조성성분을 분석한 결과 규사가 주성분을 이루며 납과 바리움, 나트륨 등의 성분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납-바리움계로 중국의 전국(戰國)말에서 전한(前漢)에 걸쳐 중국에서 유행하였던 것으로 유리의 원료가 유입되어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일한 유리제품이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철기시대의 유리로는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남색 유리구슬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B.C. 1세기경에 해당하는데 이 역시 납-바리움계이다. 그리고 해남 군곡리 유적에서 남색 및 초록색 대롱옥과 초록색 작은 구슬 등이 출토되었는데 납-바리움계 유리 이외에도 소다 유리인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중국이 아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국시대에는 팔찌목걸이용의 장신구, 그리고 의식기나 사리장치로도 사용되었다. 경주 금관총에서는 2개의 유리잔이, 금령총에서는 2개의 유리 주발이, 서봉총에서는 암청색의 반투명 기포유리로 된 유리 주발과 유리제 팔찌가 발견되었다. 또한 천마총에선 유리잔과 유리그릇이, 황남대총(98호)에서는 10점의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리는 지중해 유역에서 제작된 로만글라스로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유입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성부산 기슭에서 유리용 가마가 발견된 바가 있어 신라시대에는 유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古代유리(李仁淑, 創文, 1993년)
  • 부여 합송리유적 출토 일괄유물(李健茂, 考古學誌 2, 1990년)
  • 한국 고대 유리의 분석적 연구(1)(李仁淑, 古代文化 34,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