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목걸이

[ 頸飾 ]

가슴 꾸미개(胸飾). 길이(曲玉) 4.5cm

가슴 꾸미개(胸飾). 길이(曲玉) 4.5cm

김해 양동 349호(頸飾). 길이(曲玉) 3.2cm

김해 양동 349호(頸飾). 길이(曲玉) 3.2cm

목에 걸어서 몸을 장식하는 치레걸이로, 청동기시대에는 주로 벽옥(碧玉)으로 된 대롱옥(管玉)을 엮은 끝에 천하석제옥(天河石製玉)을 걸었다. 유리제작이 시작된 삼한시대 이후로는 유리와 수정, 호박, 마노 등의 재료로 목걸이를 만들었으며, 특히 목걸이가 성행하기 시작한 삼국시대에는 유리옥 외에도 금으로 된 구슬을 엮어 목에 걸기도 하였다.

신라와 가야는 일반적으로 청색유리옥에 구멍을 뚫어 연결하고 늘어지는 끝에 비취·호박·수정의 굽은옥(曲玉)을 다는 형식이다. 또한 목걸이 구성의 주된 재료가 되는 청색유리옥은 그 크기에 따라서 경주와 지방, 대형분과 소형분이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목걸이를 구성하는 구슬의 배열은 유기질인 끈이 부식되어 완전히 추적하기는 힘드나, 출토상태가 양호한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복원이 가능하다.

유리구슬 1련 혹은 2련을 배열하고 그 가운데 곡옥을 쓰거나 대롱옥, 다면옥, 곡옥을 교대로 연결하여 배치하기도 한다. 또 금이나 은으로 중공옥을 만들어 연결한 것도 있다. 한편 황남대총, 천마총, 금령총과 같은 대형고분에서는 금속판대에 5-7줄을 끼워 금제곡옥과 콩알 정도 크기의 남색유리구슬을 번갈아 배열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순한 목걸이라기보다는 가슴전체를 장식하는 가슴꾸미개(胸飾)라고 볼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의 경우는 가슴 양편에서부터 복부까지 드리우고 뒤쪽인 등부분으로도 대칭되게 드리웠다. 이러한 흉식은 주로 신라의 중앙인 경주의 대형분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허리띠장식과 같이 착장자의 신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목걸이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무녕왕릉의 예로 보아 황색, 감색, 녹색, 청색, 금박유리로 된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구슬목걸이와 다른 한가지는 금제목걸이로 중간부분이 굵고 약간 휜 금봉을 9절 혹은 7절로 연결한 형태이다. 이외에도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것으로는 탄목에 금테두리를 두른 장식을 연결한 목걸이가 있다. 이러한 탄목장식은 현재 백제지역 외에서는 전혀 발견되는 예가 없어 이 지역의 독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구려는 출토 예가 알려진 것이 없어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다.

참고문헌

  • 三國時代 耳飾과 帶金具의 分類와 編年(李漢祥, 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1999년)
  • 考古資料를 통해 본 우리나라 古代의 冠(咸舜燮, 三國時代 裝身具와 社會相, 1999년)
  • 羽毛附冠飾의 始末(申大坤, 考古學誌 8, 1997년)
  • 高句麗考古學硏究(東潮, 1997년)
  • 신라와 가야의 裝身具(李仁淑, 韓國古代史論叢 3, 1992년)
  • 裝身具(윤세영, 한국사론 15, 국사편찬위원회,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