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글라스

로만글라스

[ Roman glass ]

로마제국 시기에는 로마(Rome)와 속주(屬州)에서 유리그릇 및 장식품들의 제작이 성행하였는데 이들 중 일부가 멀리 극동지역에까지 교역되어 한국, 중국, 일본 등지의 고분에서 출토되거나 귀중품(貴重品) 혹은 위세품(威勢品)으로 보관되는 유리제품이 있다. 이러한 유리제품은 중국의 경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북조(北朝)의 영역에 분포하는 고분에서 출토 예가 많고 일본에서도 몇 점 발견된 예가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로만글라스가 출토되는 예를 보면 오직 경주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즉 신라고분에서만 발견되고 있어서 다른 서역(西域)으로부터 유입된 유물이나 문화요소와 함께 신라문화의 북방기원설을 주장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 발견된 고대 유리용기는 80여 점에 이르지만 그 중 수입된 로만글라스는 제한적이며 한국에서 자체 제작된 것도 있고, 기원이나 수입경로가 다른 서방 유리제품이나 중국식 납유리 등도 있다. 현재 고분에서 발굴되어 출토지가 확실한 로만글라스는 20여 점이 있다. 이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로만글라스들은 거의 대부분 고신라고분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황남대총(皇南大塚)의 남분과 북분에서 각각 5점씩 10점이 출토된 것을 비롯하여 금관총(金冠塚)에서 2점, 금령총(金鈴塚)에서 2점, 천마총(天馬塚)에서 2점, 서봉총(瑞鳳塚)에서 3점, 월성로(月城路) 가-13호분에서 1점, 안계리(安溪里) 4호분에서 1점 등 경주지역의 고신라 왕릉급이나 최고지배자의 무덤급에 준하는 고분에서만 출토되었다. 예외적으로 경주지역 밖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1991년에 발굴조사된 합천 옥전 고분군(玉田 古墳群) M1호분에서 출토된 반점문유리배(斑點文琉璃杯) 1점이 그것이다. 대체로 이들 로만글라스들이 한국 고분에서 출토되는 예들은 현재까지의 자료로 보는 한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전반대에 집중되고 있다.

유리제작의 기원은 B.C. 2000여 년경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달한 고대 근동의 소다-석회유리제작전통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 뒤 B.C. 7-6세기경부터 안티몬의 함유량이 높은 유리제작기술 전통이 생겨나는데 그리스와 소아시아, 시리아 등 동지중해연안을 중심으로 성행한다. 로마제국시대에 이르러서 안티몬유리와는 성격이 다른 착색제로서 망간 함량이 높은 유리제작기술이 발전하게 되는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연안과 흑해연안, 유럽 전역에 걸치는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서 비잔티움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이를 보통 로만글라스라고 하는데 한국 신라고분 및 극동지역에 주로 출토되는 로만글라스는 대체로 A.D. 4세기경을 중심으로 하는 후기 로만글라스에 속하는 것들이고 그 원산지는 시리아와 흑해연안에 걸치는 지역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라고분에서 출토되는 로만글라스는 장식적인 특징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신라고분과 중국 남북조시대 귀족묘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장식적인 특색은 망목문(網目文), 커트문, 반점문(斑點文) 혹은 귀갑문(龜甲文)으로 장식된 평저(平底), 원저(圓底) 혹은 대족부(臺足附)의 컵모양유리배(杯)와 완(盌) 등이다. 망목문유리배는 황남대총 남분과 서봉총에서 출토된 것이 있고, 중국에서도 遼寧省 北票縣, 北燕 馮素弗墓에서 출토된 5점 및 河北省 景縣의 조씨묘(祖氏墓) 출토품이 있다. 원형 혹은 귀갑형커트문배는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서봉총에서 출토되었는데, 남경시 산상 7호분(南京市 山象 7號墳), 북주(北周)의 이현묘(李賢墓)와 일본에서도 니이자와센쓰가(新澤千塚) 126호분에서 출토되었다. 무색 혹은 그에 가까운 바탕에 녹색 혹은 남색의 구슬을 박은 듯한 반점문유리완은 금령총 출토품이 있고 합천 옥전 고분군의 출토품도 이 유형에 속한다. 그밖에 이례적인 것으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손잡이에 금실(金絲)을 감은 녹색유리봉수병(鳳首甁)과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암문식(暗文式)의 나무결무늬의 대부배(臺附杯)가 있다.

이들 로만글라스는 특히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로는 이들이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매우 먼 거리의 교역을 통해서 중국, 한국, 일본지역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리고 삼국 중에서 고신라고분과 신라계통의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옥전 M1호분에서만 출토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그 유입과 분배경로 및 당시 교역체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는 신라지역의 고분 중에서도 최상위급으로 갈수록 그리고 5세기 후반에 접근하는 무덤에서 그 출토 예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만 글라스의 수입과 부장에는 당시의 신분질서 혹은 당시의 정치·사회 구조상의 어떤 규제가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시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의 고대유리(李仁淑, 도서출판 창문, 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