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리 고인돌

오덕리 고인돌

[ 燕灘 五德里 支石墓 ]

지역 연탄
연탄 오덕리 31호 고인돌 전경(上)과 껴묻거리(下)

연탄 오덕리 31호 고인돌 전경(上)과 껴묻거리(下)

황해북도 연탄군 오덕리와 송신동 일대에 위치한다. 1971년에 발굴조사하여, 고인돌〔支石墓〕 21기와 집자리〔住居址〕 1기, 그리고 돌두름유구 1기를 확인하였다.

연탄읍에서 연산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12㎞에 황주천으로 흘러드는 큰개울이 있고, 개울앞쪽은 벌판을 이루고 있다. 벌판 동쪽에 오덕산이 솟아 있고, 오덕산 남쪽 골짜기에 송신동을 비롯하여 석장골, 평촌마을 등 골짜기에 고인돌이 수십기씩 떼를 지어 있다. 오덕리에는 적어도 200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탁자식〔卓子式, 五德型〕 고인돌이 대부분이고 개석식〔蓋石式, 沈村型〕도 있다. 송신동 남쪽 골안 화산동에도 고인돌 8기와 선돌〔立石〕 1기가 있다.

오덕리 고인돌 구조는 적석(積石) 묘역시설(墓域施設)이 있고 그 안에 2기 이상의 고인돌이 들어있는 것과, 묘역시설이 없이 홀로 서있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묘역시설이 있는 것을 1류형이라고 한다. 묘역시설이 없는 것은 다시 세가지로 나누어, 무덤방〔墓室〕 둘레에 적석이나 흙무지를 보강한 것을 2류형, 고임돌〔支石〕을 잘 다듬고 무덤방 바닥에 강돌〔川石〕이나 판돌〔板石〕을 깐 것을 3류형, 고임돌과 덮개돌〔上石〕을 잘 다듬고 무덤방 한쪽에 문이 있는 웅장한 것을 4류형으로 하였다.

평촌마을 고인돌은 송신동에서 1㎞ 떨어진 강건너 마을로, 마을 앞으로 서북으로 흐르는 큰 개울 왼쪽 기슭에 구릉진 충적벌판 한가운데 4개군에서 51기를 발견하여 5기를 발굴조사하였다. 1, 2, 3류형이 섞여 있으며, 오덕리 고인돌군 중에 1유형이 유일하게 확인된다.

1유형에 속하는 10호와 11호는 1,700×800×100㎝ 규모인 묘역에 2m 간격을 두고 1열로 놓인 고인돌 3기 가운데 중간과 북쪽에 각각 위치한다. 10호는 뚜껑돌과 고임돌이 상대적으로 작고 매우 거칠게 다듬어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덮개돌은 230×180×30㎝, 무덤방은 85×60×45㎝ 크기이다. 11호 덮개돌의 크기는 320×280×35㎝이며, 무덤방은 140×80×58㎝ 크기로 일정한 두께로 흙을 쌓고 그 위에 고임돌을 세웠다. 유물은 10호에서 돌도끼〔石斧〕, 간돌화살촉〔磨製石鏃〕,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 11호에서 간돌검〔磨製石劍〕이 출토되었다. 평촌 고인돌떼 북쪽으로 흐르는 강 맞은편 광대바우 밑에는 고인돌 석재를 떼어낸 채석장(採石場) 자리가 남아 있다.

석장동 고인돌은 송신동에서 능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 올라가면 석장골 사이로 흐르는 작은 냇가 북쪽 양지바른 구릉지대에 3개 지점에 분포하는데 그 중 2기를 발굴조사하였다. 탁자식(오덕형) 고인돌이 대부분이다. 2지점 2호 고인돌은 남북으로 고임돌을 세우고 동서에 막음돌〔閉塞石〕을 세운 구조이다. 무덤방 크기는 160×100×100㎝이고 2개의 칸막이 시설을 하여 3칸으로 구획하였는데 1칸의 길이는 무덤방의 너비와 같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440㎝, 너비 240㎝ 이다. 3지점 1호 무덤방은 120×700×60㎝ 크기이다. 모두 출토유물은 없다.

송신동 고인돌떼는 송신동 북쪽에 있는 담터벌에 있다. 1지점에 27기, 2지점에 6기, 3지점에 8기 등 모두 41기를 지표조사하였고, 1지점에서 11기, 3지점에서 1기를 발굴조사하였다. 또한 고인돌 무리 한가운데 돌두름유구가 1기씩 자리하고 있다.

오덕리 고인돌 2유형인 31호는 큰 고임돌 2개를 동서로 나란히 세워고 무덤방 안에 칸막이 시설을 3개하여 4칸으로 구획하고 바닥에 판돌을 깔았다. 무덤방 크기는 남북 길이 220㎝, 동서 너비 140㎝이며, 유물은 간돌화살촉, 간돌검, 뼈구슬 등이 나왔다. 오덕리 고인돌 3유형인 4호의 덮개돌 크기는 510×385×50㎝이며, 동서 고임돌과 북쪽 막음돌을 세우기 위한 기초홈을 팠다. 고임돌은 안기울임을 주었고, 무덤방의 크기는 190×190×175㎝로 무덤방 안에 막돌이 25㎝ 두께로 쌓여 있다. 오덕리 고인돌 4유형인 5호, 6호 고인돌은 덮개돌 밑에 뚜껑돌이 있다. 20호와 22호 고인돌은 무덤방에 칸막이 시설이 있는 구조로 칸막이 구획 가운데 한 곳에만 바닥에 막돌을 깔아 높게 만들어 다른 칸과 차별화를 두었다. 무덤의 껴묻거리〔副葬品〕로는 10호에서 슴베있는간돌검〔有莖式磨製石劍〕, 간돌화살촉, 5호에서 바퀴날도끼〔環狀石斧〕와 팽이모양토기편, 22호에서는 사람뼈〔人骨〕와 조가비 등이 나왔다.

돌두름유구는 송신동 고인돌떼 3개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1지점의 유구는 130×100×80㎝ 크기의 큰 돌덩이를 모죽은 네모꼴로 둘러놓고 그 안에 지름 30∼40㎝ 크기의 둥글둥글한 강돌을 깔아 길이 1,200㎝, 너비 850㎝ 규모의 일정한 구역을 설치하였다. 2, 3지점에 있는 돌두름유구도 1지점의 것과 비슷한 구조를 이루며 크기만 다르다. 돌두름유구는 고인돌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선돌은 높이 3m 가량 된다.

집자리는 송신동 3지점 1호 고인돌 동북쪽 10m 거리에 있다. 집자리 크기는 800×430×45㎝로, 화덕〔爐〕은 무시설식(無施設式)으로 중심선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에 각 1기씩 있고, 기둥구멍〔柱穴〕은 4모서리에 1개씩 위치한다. 유물은 팽이모양토기, 돌도끼, 간돌검, 갈판〔耉石〕, 돌돈〔石貨〕 등이 출토되었다.

오덕리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 돌두름유구, 선돌이 서로 관계가 있는 거석문화(巨石文化) 관련 유적이다. (장호수)

참고문헌

  • 오덕리 고인돌 발굴 보고(석광준, 고고학자료집 4, 1974년)
  • 우리나라 서북지방 고인돌에 관한 연구(석광준, 고고민속론문집 7, 19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