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돈

돌돈

납작한 편암을 둥글게 원판형으로 다듬고 갈아 만든 것으로 가운데 구멍을 뚫어 놓기도 하였다. 남포 태성리 유적에서 나온 것은 화강암을 갈아 만든 것도 있다. 지름 40∼60㎝ 정도의 것이 대부분이며 두께는 2∼3㎝ 정도 된다. 큰 것은 지름 75㎝, 두께 8㎝에 이르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서북지방의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유적에서 많이 보인다. 평양 금탄리 유적 2호 집자리에서는 10개, 봉산 신흥동 유적 2호 집자리에서는 돌돈이 5개가 한곳에서 나오기도 하였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돌돈을 교환의 수단으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돌돈이 나오는 유적에서 함께 보이는 다른 석기들이 돌돈과 같은 석재로 만든 것들이 많아 아마도 석재 교환용 또는 석기의 재료로서 다른 자원들과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 돌돈으로 부른다. 청동기시대 교역 증거의 하나로 보고 있다. (장호수)

참고문헌

  • 신흥동 팽이그릇 집자리(서국태, 고고민속 3, 1964년)
  • 용어 : 돌돈(고고민속 3, 1967년)

동의어

석화(石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