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도 유적

연대도 유적

[ 統營 煙臺島 遺蹟 ]

지역 통영

경상남도 통영군 산양면 연곡리(현재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대도에 있는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학계에 알려져 있었으나 1987년의 태풍 셀마호에 의해 바다에 접해있던 밭에 단애부가 생기면서 유적이 노출되었다. 1988-1991년까지 4차례에 걸쳐 국립진주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고, 그동안 유적의 일부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연대도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들이 밀집해 있는 남해안 통영군에 있으며 주변의 욕지도·상노대도 유적들보다는 육지 쪽에 훨씬 가깝다. 연안의 섬뿌리는 다른 섬들보다 얕고 편평하며 어패류가 번성하고 식수도 풍족하여 남해도서 가운데 가장 다양하고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지녔다.

발굴구역은 가·나 지구로 나뉘었는데 가 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물포함층과 집단무덤이, 나 지구에서는 신석기 중기 이후의 유물포함층이 나타난다. 층위는 가 지구의 단애부가 가장 많은 13개의 퇴적층위로 나뉘어지나 발굴 구덩이 지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연대도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집단무덤이 나타난 점으로 가장 유명하다. 신석기시대 무덤의 존재는 연대도와 함께 욕지도, 상노대도 산등, 부산 범방 유적 등 남해안 조개무지 유적에서 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연대도에서는 많은 양의 껴묻거리(副葬品)와 함께 15기의 무덤이 찾아져서 신석기시대 무덤의 구조 및 매장방법, 껴묻거리 등에 대해서 귀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관계에 대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무척 많다.

무덤은 모두 15기이나 이 가운데 인골이 같이 나온 경우는 13기이다. 조사지역 내에 매장시설이 밀집하고 있으므로 무덤군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이며, 따라서 당시에 이미 집자리같은 생활공간과는 구별되는 매장구역이 정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대개 구덩을 파고 큼직한 냇돌(川石) 등을 깐 뒤, 시신을 놓고 그 위를 작은 돌들로 덮고 사이사이에 고운 흙과 토기조각 등의 유물로 덮은 형식이다.

7호 무덤의 경우 머리 쪽이 발치께 보다 넓어 이른바 두광족협(頭廣足狹)을 이룬다. 대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끔 머리를 틀어 서침을 하였으며 펴묻기(伸展葬)를 하였으나 특이하게 엎드려 묻은 것(俯身葬)도 있다. 모두 한 사람씩 묻었으나 2호 무덤의 경우 세 사람이 찾아져 합장의 풍습도 있었다고 보인다. 무덤 주위에, 혹은 죽은 사람을 직접 꾸며준 껴묻거리도 많이 나왔다. 이 가운데 7·11·14호 무덤의 껴묻거리는 질과 양에서 다른 무덤의 것과 뚜렷이 구별되어 신분지위상의 차이가 인정된다고 한다. 그밖에 몇몇 구덩이나 기둥구멍 등이 있으며 불탄 흙과 일괄토기들이 나오는 구조도 있다. 구덩이에서도 숯, 불탄 흙, 불탄 짐승뼈 등이 출토되고 있어 매장풍습에 따른 시설물이거나 조리시설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연대도 무덤에서 나온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특징을 종합하면 우선 머리의 최대길이와 최대너비가 다 크고 길이너비지수(長幅指數)가 79.0으로 중두(中頭)의 상한, 즉 단두(短頭)에 가까운 형이다. 인골 가운데 키를 알아낼 수 있는 것으로는 남성의 두 예가 있는데 1호 167㎝, 7호 161㎝이다. 이곳 사람들에게서는 특히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과 아래턱융기(下顎隆起)가 잘 관찰된다. 외이도골종(골류)은 욕지도의 신석기시대 사람에게서도 발견된 바 있어 남해도서지방은 외이도골종의 다발지대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현상은 어로, 잠수 등 바닷가의 생업형태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대도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짐승뼈, 조가비 등의 자연유물과 인공유물로 크게 나뉘며 인공유물로는 석기, 토기, 뼈도구, 치레걸이 등이 있다. 석기는 작살·이음낚시 허리·그물추 등의 물고기잡이 도구, 사냥도구인 화살촉·긁개·자르개류의 뗀석기(打製石器), 도끼·끌·대패·갈돌·갈판·숫돌·절구·공이·망치돌 등의 간석기(磨製石器)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작살은 모두 마연면을 가졌으며 무덤의 껴묻거리로는 쓰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4점 밖에 없는데 비해 화살촉이 41점이나 되는 것으로 보아 화살촉 가운데 물고기잡이 도구로 쓰인 것도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살촉의 형태는 촉머리와 날개의 경계가 직선인 것, 안쪽으로 오목한 것, 세장(細長)한 것, 정삼각형 등 많으므로 앞으로 출토 층위나 시기간의 차이를 밝히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음낚시 허리는 7점이 나왔는데 완성품은 없다. 대개 바늘과 결합되는 부분이 남아 있지 않는 반면에 실을 묶기 위한 홈이 남아 있는 것은 몇 점 있다. 전면을 갈았으므로 자른 면이 원형에 가까우면서도 약한 각이 있다. 껴묻거리로도 자주 출토된다. 그물추는 납작한 냇돌(川石)의 가장자리를 떼어낸 것으로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지던 것이지만 강가나 내륙지방의 것보다는 크고 무겁다. 화살촉은 흑요석이나 Sunukite 같은 단단한 재료로 주로 떼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살촉 뿐 만 아니라 뗀석기류도 흑요석, Sunukite, 호온펠스 등의 단단한 암질로 많이 만드는데 특히 일본에서 석시(石匙)로 불리우는 것이 있어 흥미롭다. 더우기 Sunukite 암질로도 일본 구주(九州)지방과의 교류를 상정하고 있다. 현재 남해안 및 도서지방의 여러 유적과 연대도에서 출토된 흑요석의 성분분석 및 산지추정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남해안문화권의 실체를 밝혀주는 데 직접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구분야이다.

간석기 가운데 도끼, 끌, 대패 같은 공구류는 41점이 나왔는데, 날부분만 간 것이 대부분이며 껴묻거리로도 쓰인다. 갈돌, 공이 등은 음식물의 조리와 가공에 쓰였을 터인데 역시 껴묻거리로도 나타난다. 이들 석기조합은 남해도서지방의 거의 모든 조개무지 유적에서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 특이한 것으로는 14호 무덤의 껴묻거리인 마노(agate)제 대롱구슬 1점과 옥제 대롱구슬이 있다. 뒤지개나 굴따는 도구로 여겨지는 석제품도 3점 출토되었는데 그 쓰임새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조개무지 사람들에게는 중요했을 도구이므로 앞으로 다른 유적에서도 눈여겨보아야 할 도구이다.

뼈도구에는 사슴뼈로 주로 만든 송곳 및 찌르개류가 가장 많다. 그리고 이음낚시의 바늘이나 허리부분과 작살도 있는데 사슴뼈 외에 간혹 멧돼지의 이빨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치레걸이로는 7호 무덤의 경우처럼 발목에 채워진 채로 나온 조가비발찌가 있으며 조가비팔찌, 비녀, 구멍 뚫은 치레걸이 등이 있다. 팔찌류는 거의 전부 투박조개로 만들며 구멍 뚫은 것들은 사슴, 멧돼지 외에 고라니이빨, 돌고래뼈, 쥐상어 등뼈 등이 쓰였다.

토기는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이다. 가지구에서는 주로 신석기 이른 시기의 무늬인 덧무늬(隆起文), 누른무늬(押捺文, 押引文), 가는 새김무늬(細沈線文) 등이 베풀어진 토기들이 나오며, 이들 무늬가 복합된 경우도 나오고 있다. 입술 끝 면을 새긴(口脣刻目) 토기도 많은데, 특히 누른 무늬계통에 그 빈도가 높아 2층에서 가장 많다. 입술은 대개 직립하나 덧무늬토기는 바라진 것이 많다. 무늬의 출현빈도를 전체 층위별로 보면 덧무늬토기는 아래 4층에서 2층으로 가면서 급히 줄어드는 반면 누른 무늬·가는 새김무늬 및 이들이 복합된 무늬의 토기는 증가하고 있어, 남해도서지방의 다른 조개무지 유적의 양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연대도 3층의 조가비를 시료로 하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와도 잘 조화된다. 연대측정 결과는 6010±160 B.P., 6090±160 B.P.로 나왔으며, 이를 보정한 실연대는 B.C. 5256-4540, B.C. 5328-4660년이다.

자연유물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여기서는 사슴과와 멧돼지를 비롯한 육지산의 짐승류, 오리, 농병아리류의 철새(조류), 도미를 비롯한 각종 어류, 상어류, 그리고 고래류를 포함하여 모두 40여 종의 등뼈동물이 나왔다. 물고기들은 철새와 더불어 대개 회유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앞으로 이들을 잡은 시기, 나아가 유적의 점유기간 등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조개무지 사람들이 잡아먹은 조개류는 패각층 분석을 통하여 밝혀지는데 굴이 80% 정도로 대표적이다. 그 다음이 홍합이며 소라, 전복, 맵사리 등이 적은 양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조개류가 많이 나온 상노대도나 동삼동 유적에 비해 매우 빈약한 양상을 띄는 것이지만 유적의 입지 및 당시 사람들의 기호 등에 고루 관계되는 문제로 보이므로 앞으로 흥미있는 연구분야가 될 것이다. 굴꺽지로 보아 굴따기는 유적이 입지한 바로 그곳의 바위해안 가까이에서 행해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한편 유적 주변의 자연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뭍달팽이들을 분석한데 의하면 모두 14종이 분류되었다. 전체의 80-90%가 깨알달팽이를 비롯하여 삼림지역에 서식하는 9종의 달팽이로 이루어져 있어 당시의 유적 주변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도 유적은 유적의 형성범위가 넓은데다가 신석기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처음 나오는 희귀한 유물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종합하면 남해도서지방 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 구주지방과의 교류를 증명할 수 있고 또 당시의 문화권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유물의 분석도 빼놓지 않고 이루어져 있다. 이들과 자연과학적 분석결과들을 종합하면 앞으로 당시의 식생활, 주거생활 및 풍속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신석기시대의 무덤쓰는 법을 알게된 점의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사회구조에 대한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나온 인골에 대한 형질인류학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 신석기시대 주민의 정체도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고문헌

  • 연대도 1(국립진주박물관,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