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지도

다른 표기 언어 map , 地圖

요약 지표의 일부 또는 전체를 축소시켜 각종 기호와 문자를 사용해 평면에 그림으로 표현한 것.

본격적으로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후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상업과 해상 활동이 활기를 띠면서이다. 이와 더불어 중국에서 나침반이 발명되고, 항해술·조선술이 발달하면서 지도 제작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왔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등고선식 지도는 18세기에 선박 항해를 위해 수심을 나타내는 데 먼저 사용하기 시작했고, 육상에서는 18세기말부터 사용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육지의 윤곽과 대륙 내부의 공백이 완성되어갔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지도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지도책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기원

지도의 영어 이름인 map의 어원은 라틴어 마파(Mappa)에서 유래되었으며, 마파는 고대 카르타고에서 '신호용 천'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지도제작은 자신의 거주지역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문자 대신 그림으로 표현했던 문맹의 미개사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태평양상의 마셜 군도 원주민들은 야자잎줄기에 작은 돌이나 조가비를 달아서 섬의 위치, 해류·파도의 방향 등을 표시한 지도를 제작했다. 작은 돌이나 조가비는 섬이나 환초를 나타내며 직사각형으로 엮은 야자의 잎줄기는 지도의 테두리와 뼈대를, 사선이나 반원인 것은 해류의 방향을 나타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잦은 홍수로 인해 변경되는 경작지의 경계를 정확히 하고 조세(租稅) 공납을 위해 현대의 지적도와 같은 측량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점토에 그려진 BC 1300년경 누비아 지방의 금광안내지도(金鑛案內地圖)뿐이다.

사르곤 대왕의 원정 이야기를 기록한 BC 700년경의 점토판 지도는 바빌로니아의 지도 중 현존하는 최고의 세계지도인데 원과 직선으로 그려졌다. 2개의 큰 원 중에 안쪽의 것은 육지를, 바깥쪽의 것은 육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나타낸 것으로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바빌로니아인들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히브리인들도 지도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세계의 중심을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했다.

발달

기원

지도의 영어 이름인 map의 어원은 라틴어 마파(Mappa)에서 유래되었으며, 마파는 고대 카르타고에서 '신호용 천'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지도제작은 자신의 거주지역과 그 주변지역에 대한 지리적 지식을 문자 대신 그림으로 표현했던 문맹의 미개사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태평양상의 마셜 군도 원주민들은 야자잎줄기에 작은 돌이나 조가비를 달아서 섬의 위치, 해류·파도의 방향 등을 표시한 지도를 제작했다. 작은 돌이나 조가비는 섬이나 환초를 나타내며 직사각형으로 엮은 야자의 잎줄기는 지도의 테두리와 뼈대를, 사선이나 반원인 것은 해류의 방향을 나타낸 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잦은 홍수로 인해 변경되는 경작지의 경계를 정확히 하고 조세(租稅) 공납을 위해 현대의 지적도와 같은 측량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점토에 그려진 BC 1300년경 누비아 지방의 금광안내지도(金鑛案內地圖)뿐이다.

사르곤 대왕의 원정 이야기를 기록한 BC 700년경의 점토판 지도는 바빌로니아의 지도 중 현존하는 최고의 세계지도인데 원과 직선으로 그려졌다. 2개의 큰 원 중에 안쪽의 것은 육지를, 바깥쪽의 것은 육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나타낸 것으로 당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바빌로니아인들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히브리인들도 지도를 갖고 있었는데 그들은 세계의 중심을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도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최초의 세계지도를 만들었으며, 헤카타이오스(BC 550경)는 그의 지도를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세계원정은 그리스인들의 지리적 지식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점차 지구구형설(地球球形說)이 확립되었다.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BC 273~192)는 처음으로 지도에 경·위선을 표시했고, 그의 세계지도에는 인도·영국·아일랜드가 포함되었다.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90~168)는 지구의 둘레를 360°로 등분한 경·위선망을 설정하고, 원추도법에 유사한 지도투영법으로 제작한 세계지도를 그의 저서 〈지리학 안내 Geographike hiphgesis〉에 실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값보다 적게 추정된 포세이도니오스의 자료에 기초했기 때문에, 특히 미지의 지역 부분이 실제보다 매우 작게 표현되어 후에 콜럼버스의 항해에 영향을 미쳤다.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절정을 이룬 그리스인들의 업적은 로마인들에게는 계승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당시 포이팅거 지도(Peutinger Table)로 불린 도로지도를 통해 로마인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로마 제국 영토 내의 도로, 도시, 역, 군 주둔지 등이 거리와 함께 표시되어 있다.

동서방향으로 심하게 변형되어 있어서 엄밀한 의미의 지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양 지도학의 여명

중세 후반 십자군 원정 이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상업과 해상 활동의 활발한 전개와 중국의 나침반 소개(12세기), 항해술·조선술의 발달은 지도의 발달에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왔다.

항해시 나침반의 사용은 〈포르톨라노 해도 Portolano Chart〉라는 지중해 중심의 해도를 등장시켰고, 이는 지리상의 발견시대에 이르기까지 해도로서 널리 이용되었다(→ 색인:항해도). 이 지도는 해안선의 윤곽이 뚜렷하고, 해안선을 따라 지명이 조밀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방위선이 방사상으로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사조가 대두됨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서가 라틴어로 번역되고(1406), 그의 세계지도는 권위 있는 지도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다. 포르투갈의 디아스(1450~1500)가 희망봉을 발견하는 일련의 지리적 발견을 통해 세계지도는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으나, 1492년에 제작된 베하임(1459~1507)의 지구의에서 보여지듯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은 지속되었다.

이 지구의에는 유럽의 서쪽에 중국이 그려져 있는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무렵 유럽인들이 생각했던 세계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중세의 지도

중세의 폐쇄적인 봉건사회에서는 지역간의 교역과 문화적 교류가 중단되고, 성서의 기록만이 진리인 것으로 간주되는 암흑시대였다.

중세의 대표적 지도인 〈TO 지도〉는 지도라기보다는 종교서적의 장식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는 중세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의 바다와 지중해, 나일 강, 돈 강에 의해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대륙이 3분되어 있어 마치 T자와 O자를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지도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자리잡고 있고, 낙원이 있다는 동쪽이 위에 자리한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리학이나 프톨레마이오스 세계지도의 전통은 중세 유럽에서는 사라졌지만 아랍인들에게 전해져 이들이 천문학·의학·지리학 등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와 지리서를 아랍어로 번역하여 보전했는데, 12세기에 제작된 알 이드리시(1100~65/66)의 세계지도에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을 뚜렷이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아시아 지역의 지리적 지식을 축적해 지도에 반영했다.

이슬람의 세계지도에는 육지의 형상, 산맥, 하천의 배열, 아시아 지역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지리상의 발견시대와 지도학의 부흥

유럽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육지가 지구 표면의 약 2/3를 덮고 있다고 생각했던 콜럼버스는 대서양 횡단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의 대서양 횡단은 대항해시대를 열었고, 마젤란(1480~1521)의 세계일주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탐험과 발견을 통해 수륙분포와 육지의 윤곽이 알려졌다. 지리상의 발견시대 초기의 지도학자인 네덜란드의 메르카토르(1512~94)는 세계지도를 만들면서(1538)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알려진 투영법을 고안했다(1569). 이 도법은 지도상의 임의의 항정선(航程線) 또는 방위선을 직선으로 나타내고 방위각이 항상 타각(舵角)이 되도록 고안된 것인데, 이는 시대적 필요성에 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 투영법은 해도로서는 가장 적합한 도법으로 쓰이고 있으며, 세계벽지도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근대지도의 성립

프랑스에서도 상송(1600~67)과 그 후계자들에 의해 지도와 지도책이 많이 출판되었는데,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점차 프랑스가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18세기에는 지도학의 발달을 주도하게 되었다. 지도 제작은 프랑스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카시니(1625~1712) 가문에 의해 주도되었다. 프랑스 학술원은 적도 부근의 페루와 북위 60° 부근의 라플란드에서 경도 1°의 길이를 측정하여 지구의 극반경이 적도반경보다 짧은 편평타원체(扁平楕圓體)라는 사실을 밝혔다.

또한 삼각측량(1740~44)에 의한 프랑스의 대축척지도인 축척 1/86,400의 지도형을 제작했다(1747~1818). 이 지도는 최초의 과학적인 근대지도로서 표현방법에서도 각종 기호를 사용하는 등 현대 지도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발명한 이후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자 18세기 중엽부터는 3각측량과 수준측량을 기초로 정확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의 지도는 경사가 급한 곳만 우모(羽毛)로 표시했으므로 기복 표현방법에서는 오늘날에 비해 뒤떨어졌다.

이 방법은 기복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 19세기 후반부터 등고선식 기복 표현법이 사용되었다(→ 색인:등고선도법). 등고선식 표현법은 18세기 전반에 선박 항해를 위한 국지적인 수심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육상에서는 18세기말부터 사용되었다. 19세기에는 육지의 윤곽이 거의 정확하게 그려졌고, 대륙 내부도 많은 탐험으로 공백이 메워졌다. 또한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지도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지도책들도 출판되었다.

20세기에는 양극지방의 탐험이 활발해지면서 세계의 윤곽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고도로 발달된 항공사진측량기술, 20세기 후반의 원격탐사(remote sensing) 기법 등이 지도제작에 이용되어 오늘날에는 지형도를 비롯한 각종 지도들이 대량으로 신속·정확하게 제작되고 있다.

속성

축척

지도를 그릴 때 줄인 정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지표상의 실제 거리와 지도상에 표현된 거리의 비율을 말한다.

지구의에서는 전체적으로 축척이 균일하지만 구면(球面)을 평면(平面)으로 나타낸 지도에서는 축척이 동일할 수 없으므로 지표 전체를 나타내는 세계지도의 경우에는 축척의 기준을 어디로 정했는가를 표시해야 한다. 축척의 표시는 일반적으로 지도상에 비율로 표시하거나, 비율과 더불어 그 척도를 난외(欄外)에 그림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림척도는 그 지도상에서 실제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도를 확대하거나 축소시킬 때 편리하다.

축척이 서로 다른 2개의 지도를 비교할 때는 많이 축소한 것을 소축척(小縮尺), 적게 축소한 것을 대축척(大縮尺)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삼각측량이나 항공사진측량에 의해 제작된 지형도와 같이 축척이 1:50,000 또는 1:25,000인 지도는 대축척지도, 1:250,000 또는 1:500,000인 지도는 중축척지도, 그리고 그 이하는 소축척지도로 구분한다.

축척은 거리의 비율로 표시된 것이므로 한 지도에서 축척을 1/2로 축소시키면 면적은 1/4로 줄어든다.

종류

지도는 분류기준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내용에 따라 일반도(一般圖)와 주제도(主題圖)로 나누어지는데, 일반도에는 지형·행정경계·교통망·가옥·토지이용 등 일반적인 내용이 종합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1:50,000 지형도, 1:25,000 지형도, 교육용 한국전도 또는 세계전도 등이 이에 속한다. 특정한 사항만을 중심적으로 선택하여 나타내는 주제도에는 토지이용도·식물분포도·지질도·교통도 등이 있다.

일반도에는 직접 측량하여 작성한 지형도와 같은 실측도와 실측한 자료를 모아 편집한 편찬도가 있다. 한국의 경우 대축척지형도인 1:50,000 국가기본도·지적도·해도 등은 실측도이고, 축척이 작은 지세도·총람도 등은 편찬도이다. 축척에 따라 대축척·중축척·소축척으로 구분된다. 소축척지도는 주로 교육용 지도나 괘도제작에 이용되고, 중축척의 지도에는 게시용·산업·교통망도·행정·전략용 지도 등이 포함된다.

축척 1:50,000 또는 1:25,000의 대축척지도는 군사·학술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며, 그 이상의 대축척지도는 도시계획·군사작전 등 더욱 세밀한 작업을 필요로 할 때 사용된다.

기호

각종 주제를 나타내는 기호는 지도의 난외에 표시되는데 정성적(定性的)인 것과 정량적(定量的)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기호는 점·선·면으로 구성된다. 점 기호는 도시·묘지·등대·광산·병원·학교 등과 같이 위치관계를 명확히 하는데 사용되고, 각각의 기호는 특정한 모양을 갖거나 색을 달리하여 기호의 기능과 특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선기호는 점기호와 마찬가지로 지리적 자료의 명목·순서·간격 등의 특징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들 상호간의 결합관계를 표현한다. 도로, 철도, 하천, 경·위선, 행정경계 등을 나타내는 데는 주로 선기호가 이용된다.

삼림·늪지·논·밭·과수원 등은 여러 형태의 점 기호를 모아서 만든 면 기호로 표시하거나 색으로 표현한다. 이상과 같은 정성적인 기호는 토지이용도·식생분포도·지질도·교통도 등과 같이 특정한 사항을 나타내는 주제도에서 많이 쓰인다. 인구·산업·기후 등과 관련된 통계자료는 점·선·유선(流線)·면 등의 기호를 사용하여 정량적으로 지도에 나타낼 수 있으며, 각 기호는 굵기·크기·넓이 등으로 통계값의 크기나 서열을 나타낸다.

기온·해발고도 등의 분포는 같은 값을 갖는 지점들을 연결한 등치선(等値線)으로 표현할 수 있다. 교통량·물자이동·인구이동과 같은 현상은 선의 굵기를 달리한 화살표로 표시해 각각의 이동방향과 이동량을 나타낸다.

기복의 표현

3차원적인 지표를 평면으로 나타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등고선(等高線)이다.

등고선은 고도가 같은 지점들을 연결한 등치선으로 그 값은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폐곡선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1:50,000 지형도에서는 20m, 1:25,000 지형도에서는 10m가 기본간격으로 등고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주곡선(主曲線)이라 한다.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보다 쉽게 판별하기 위하여 주곡선 5개마다 등치선을 굵은선으로 표시하며, 이를 수곡선(首曲線)이라 한다.

수곡선의 간격은 1:50,000 지형도에서는 100m가 되고 1:25,000 지형도에서는 50m이다. 평탄한 지역에서는 등고선 20m간에서 나타나는 세밀한 지형적 특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점선으로 고도 10m 간격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이를 간곡선이라고 한다.

등고선은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간격이 좁고 완만한 곳에서는 넓어지므로 시각적으로 경사를 판별할 수 있다. 따라서 등고선으로부터 절대고도와 사면의 경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등고선식 기복표현법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우모가 지형도의 제작에 많이 쓰였다. 사면의 경사 방향을 따라 그려진 짧은 선인 우모는 급경사는 간격이 좁고 굵게 나타나고 완경사는 간격이 넓고 가늘게 표현되므로 마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러나 지표의 고도를 계량적으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산봉우리의 높이는 수치로 표시했다. 기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는 등고선에 음영(陰影)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널리 사용된다. 이는 태양광선이 지표에 비치면 지표기복의 형상에 따라서 명암이 생기는 원리를 응용한 방법으로 일반적으로 소축척도에 널리 채택되는데, 그 효과는 마치 석고로 만든 지형의 모형에 조명을 가해 찍은 사진과 흡사하다.

소축척도에서는 지표의 고도를 임의의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마다 지정된 색을 입히는 채단식(altitude tint)으로 기복을 표현하기도 한다. 낮은 지대는 녹색으로, 고지대는 진한 갈색으로 표현하며, 시각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영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경도·위도

지표상의 한 지점의 위치를 지도상에 나타내고, 그것을 찾기 위하여 가로·세로로 그린 등간격의 가상선을 좌표(座標)라고 한다.

좌표는 구면상의 좌표(spherical coordinate system)와 평면상의 좌표(plane coordinate system)로 구분되며, 구면상의 좌표는 경도와 위도로 구성된다. 일반지도에는 모두 경선과 위선이 기입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통해 어느 지점이라도 위치를 비교적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경도와 위도의 설정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위도의 경우에는 지구의 자전축인 북극과 남극을 중심으로 지구를 2등분하는 적도를 기준으로 했다. 즉 적도를 0°, 양극을 90°로 정하고, 지구를 완전 구형이라고 가정하면 지표상의 어느 한 지점의 위도는 적도면과 그 지점이 지구 중심에 대하여 이루는 각도로서 정해진다. 이와 같이 정해진 위도를 지구중심적 위도(geocentric latitude)라고 하는데, 위도의 간격이 등간격으로 나타난다. 소축척 세계지도를 작성할 때는 지구가 완전히 구(球)라고 가정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체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의 실제 모양은 양극 부분이 평평하고 적도 부분이 불룩한 타원체로 되어 있으므로 대축척지도에서는 이러한 점을 반영해야 한다. 지구상의 실제 위도는 근본적으로 천체관측을 통해 얻어지는 각도차로 정해지기 때문에 위도 1°의 간격은 적도에서 양극으로 갈수록 조금씩 차이가 있다. 즉 위도 1°의 거리가 적도에서는 11만 569km인 데 비해 양극에서는 11만 1,700km로 길어진다. 이와 같이 천체관측을 통해 얻어지는 위도를 천문학적 위도라 부른다. 위도가 같은 지점들을 연결한 선이 위선이며 이들은 적도와 평행하다.

경도는 양극간의 지축을 따라 교차하는 2개의 면이 이루는 각도로서 표시되며, 경선은 2개의 면이 지표와 만나는 선을 가리킨다.

위도의 경우는 적도와 같은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있으나 경도의 경우에는 그러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각국마다 자국의 수도를 통과하는 경선의 경도를 측정하여 기준으로 사용했다. 런던 부근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을 국제적인 기준경선인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으로 삼은 것은 1884년의 일이었다. 경도는 본초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서로 각각 1~180°로 나누어 동경(東經)과 서경(西經)으로 표시한다.

경도 1°간의 길이는 적도에서는 약 111km로 가장 길고, 남북위 60°에서는 1/2로 줄어들고 양극에서는 한 점으로 나타난다. 위도는 고대부터 태양고도 등 천체관측을 통해 비교적 쉽게 측정해왔으나 경도는 1765년 영국의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를 발명하기 전에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다. 경도는 본초자오선과 경도를 알고자 하는 지점간의 시간의 차로 얻을 수 있으며, 360°는 24시간에 해당한다.

평면상의 좌표란 대축척지도에서 방위를 바르게 하기 위해 정형도법상에 격자방안을 개발한 것이다.

이 좌표 시스템은 국가마다 목적에 따라 다르게 시스템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유티엠(Universal Transverse Mercator grid system/UTM) 좌표이다. UTM 좌표는 정확한 위치를 필요로 하는 지도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UTM 좌표로는 남위 80°에서 북위 80° 구간만이 표시된다. 이 시스템에서는 우선 경도 6° 간격으로 60등분하여 남북방향의 구역을 정하고, 이 구역을 다시 위도 8° 간격으로 나눈다.

그리하여 동서방향으로 6°, 남북방향으로 8° 간격인 4각형의 좌표구역을 모두 1,200개 설정한다. 4각형을 이루고 있는 좌표구역의 열(列)에 대한 명칭은 남위 80°부터 북쪽으로 I와 O를 제외한 C~X의 영문자를 차례로 명명하고, 행(行)에 대한 명칭은 경도 180°선을 기준으로 1~60의 숫자로 동쪽을 향해 차례로 붙인다. 그러므로 좌표값은 각각 숫자와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좌표를 읽을 때는 먼저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쪽으로 읽는다.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지형도와 미국의 군사지도 등은 UTM 좌표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지도투영법

개요

구면인 지구 전체를 평면으로 옮기고자 할 때는 지구의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면적·각도·방위·거리 등 4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왜곡되는 지역이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투영법이다. 대부분의 투영법이 위의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실제 목적에 따라 어떤 기준에 의해 제작된 지도인지를 이해하고, 적절한 투영법으로 제작된 지도를 선택해야 한다.

투영법의 선택

투영법을 크게 정적도법(正積圖法)·정형도법(正形圖法)·방위도법(方位圖法)·정거도법(正距圖法)의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적도법은 각종 현상의 세계적인 분포도를 작성할 때 많이 사용되는데, 지도상에서 면적의 정확성을 얻으려면 경선과 위선의 간격을 조절해야 한다. 즉 일정한 간격의 경선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을 지구의상의 해당부분 면적의 비율과 동일하게 조절하여 면적을 바르게 할 수 있는데, 이 도법은 주변부로 갈수록 왜곡이 심하다. 정형도법은 경선과 위선으로 이루어지며 각도가 정확하고 모양이 바른 도법으로, 경선과 위선의 축척이 동일한 비율로 전개될 때 얻어진다.

지도의 주변부에서는 축척이 심하게 확대되지만 국가나 대륙의 모양을 바르게 나타내고자 할 때 이용된다. 방위도법은 방향을 정확하게 나타내며 지도상의 두 지점 간의 최단거리가 직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교통과 통신을 목적으로 하는 지도제작에 유리하다.

정거도법은 거리가 정확하게 나타나는 도법으로 정거성은 투영법의 중심에서만 방사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도법을 방위도법과 결부시킬 때 매우 바람직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방위도법의 유형
기본투영도
기본투영도

방위도법은 크게 방위도법과 임의방위도법으로 나뉘며 각각 유형에 따라 세분화된다.

방위도법은 평면의 종이를 지구의에 접하도록 배치하고 지정된 점에서 빛을 비추어 종이에 나타나는 경선과 위선을 정하는 도법이다. 지구의와 투영점의 접점에 따라 극중심 방위도법, 적도 중심 방위도법, 사각의 방위도법 등 3가지 형태로 나뉘고, 광원(光源) 또는 시점(視點)의 위치에 따라 정사도법(正射圖法)·평사도법(平射圖法)·심사도법(心射圖法)으로 나누어진다.

① 정사도법은 평행광선에 의해 경선과 위선이 구면에 접한 평면에 투영된다고 가정하는 도법으로 반구 이상은 그릴 수 없다.

중심부에서는 국가 또는 대륙간의 관계가 비교적 정확하게 나타나지만 주변부에서는 경·위선의 간격이 좁아져 축척이 크게 줄어들며 형태의 왜곡도 심해진다.

② 평사도법은 투영면을 지구의 상의 한 점에 접하도록 배치하고 접점의 대척점(對蹠點)에 시점을 두고 지구의 상의 경선과 위선을 투시하는 도법으로 경선과 위선의 간격이 주변부로 갈수록 넓어지며 축척이 확대된다. 평사도법은 정각도법에 속하기 때문에 지구의에 그리는 원은 지도에서도 모두 원으로 나타난다.

③ 심사도법은 지구의의 중심에 시점을 두고 지구의 상의 한 점에 접하도록 배치한 투영면에 경선과 위선을 투시하는 도법인데 반구 전체를 나타낼 수 없다. 주변으로 갈수록 축척의 확대와 형태의 왜곡이 심해지나 두 지점 간의 최단거리가 지도와 일치하기 때문에 대권항로를 직선으로 표시할 수 있으므로 항공노선을 표시하는 지도에 사용된다.

임의방위도법은 방위도법의 특성에 임의로 다른 특성을 살려 제작하는 도법이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다음과 같다.

① 방위정거도법은 지도의 중심에서 방사상으로 모든 지점까지의 직선거리가 정확하게 나타나도록 인위적으로 경선과 위선의 간격을 조절한 도법이다. 모든 방향으로 거리가 정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특정한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항공·통신·군사적 목적의 세계지도 제작에 유용하다.

② 방위정적도법은 1772년 독일의 수학자 람베르트가 고안한 도법으로, 극 중심의 경우 경선은 극에서 방사상으로 뻗은 직선을, 위선은 극을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을 이룬다. 지도상에서 경선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면적은 지구의 상에서의 면적과 동일하도록 고안되었다.

원추도법

지구의에 평면을 접하게 하는 대신 원추를 씌운 후 지구의 중심에서 원추에 경선과 위선을 투영한 다음 원추의 면을 펼친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도법으로 단원추도법(單圓錐圖法), 표준위선이 2개인 원추도법, 람베르트 정각원추도법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① 단원추도법은 가장 간단한 원추도법으로서 지구의에 접하도록 원추를 씌우고, 투시점을 지구의의 중심에 두고 경선과 위선을 투시하는 도법이다. 이 경우 중앙 자오선과 지구와 접하는 표준위선 부근의 지역에서는 축척이 정확하나 이곳에서 양쪽으로 멀어질수록 확대된다.

② 표준위선이 2개인 원추도법은 단원추도법을 개선한 것으로, 표준위선을 2개 선택하여 2개의 원추를 각각의 표준위선에 접하게 하고 있다. 이 경우 표준위선의 남쪽과 북쪽에서 축척의 증감이 단원추도법보다 훨씬 적어지므로 유럽이나 미국처럼 중위도에서 동서로 퍼진 지역에서는 축척과 형태의 왜곡이 적게 나타난다.

람베르트 정각원추도법은 표준 위선이 2개인 원추도법을 개선한 것으로, 위선의 간격을 조절하여 각도의 왜곡이 없도록 한 도법이다. 경선이 방사상의 직선이고 위선이 동심원의 호이기 때문에 작도가 쉽고 대축척에 적용할 때 도엽들이 잘 맞추어진다.

북위 33°와 45°선을 표준위선으로 선택하여 작성한 미국 전도의 경우, 90%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축척의 오차가 최대 5% 정도이다. 또한 지도상에서 대권(大圈)이 거의 직선에 가깝게 나타나기 때문에 비행할 때 심사도법 대신 많이 사용된다.

수평위선도법

수평위선도법은 원통중심도법, 메르카토르 도법,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 시뉴조이달 도법, 몰바이데 도법, 구드 단열도법, 에케르트 제4도법으로 나누어진다.

원통중심도법은 적도에 접하도록 지구의를 둘러싼 원통에 지구의의 중심에서 경선과 위선을 투영하여 원통의 면적을 전개하는 도법이다. 적도는 원통에 접하기 때문에 그 길이가 지구의의 적도 길이와 같아 축척이 정확하지만, 고위도 지역으로 갈수록 축척이 심하게 확대되며 극지방은 나타낼 수 없어서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다.

메르카토르 도법은 어느 위도에서나 동서방향으로 경선 간격이 확대되는 비율만큼 남북방향의 위선 간격을 수학적으로 조정하여 각도 관계가 정확하도록 고안한 도법이다. 적도 부근은 정확하지만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축척이 급격하게 늘어날 뿐 아니라 대륙의 형태상 왜곡도 수반되므로 세계지도 작성시 위도 80~85°에서 자르고 있다.

이 도법은 1569년에 네덜란드의 지도학자인 메르카토르에 의하여 고안된 것으로, 이 지도에서는 항정선이 직선으로 나타나므로 세계의 해류도·풍향도·항해도에 많이 이용된다.

③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 적도 대신 임의의 경선과 접하도록 지구의를 원통으로 둘러싼 후 투시하는 도법이다. 지도의 축척은 직선인 중앙 경선을 따라서만 정확하고, 이곳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히 확대된다.

그러나 중앙 경선을 중심으로 경도 6° 정도의 좁은 경도대는 축척이 비교적 정확하기 때문에 정각성을 겸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축척 지형도의 제작에 쓰인다. 세계 지형도를 작성하는 경우, 중앙 경선을 경도 6° 간격으로 옮기면서 세계를 60개의 경도대로 나누고, 위선이 원으로 나타나는 위도 80° 이상의 부분은 역시 정각도법인 극중심 평사도법으로 대치하면 된다. 이 도법은 국제횡축 메르카토르 도법 또는 UTM 도법이라 하며, 한국의 1:50,000 지형도는 이 도법에 의한 것이다.

④ 시뉴조이달 도법은 위선이 등간격의 평행수평선이고 그 길이도 실제와 같게 정한 도법이다. 경선은 중앙 경선만이 직선이고 그밖의 경선은 등간격의 사인곡선을 이룬다. 이들 경선에 의해 나뉘는 위선들의 길이는 모두 축척이 정확하고, 일정한 위도대에 일정한 간격의 경선과 위선으로 둘러싸이는 부분은 모두 면적이 같고 정확하다.

세계지도를 그리는 경우에는 주변부의 왜곡이 심하지만, 중심부에 위치하는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대륙지도를 제작할 경우에는 비교적 왜곡이 적게 나타난다. 한때 이 도법의 좌표를 상송-플램스티드 도법이라고 불렀는데, 그 까닭은 프랑스의 지도학자 상송과 영국의 천문학자 플램스티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도법이 메르카토르 등 다른 지도학자들에 의해 일찍이 사용된 것이 밝혀지면서 더이상 이 명칭은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⑤ 몰바이데 도법은 지구의의 반구를 원으로 나타내고 나머지 반구를 둘로 나누어 그 바깥쪽으로 연장한다는 원리를 적용한 정적도법으로서, 전체적인 윤곽이 타원형이다. 경선은 등간격이고 직선의 중앙 경선으로부터 90° 떨어진 경선은 원이며, 그밖의 경선은 모두 타원이다.

위선은 평행수평선인데, 정적성을 살리기 위해 그 간격을 극쪽으로 갈수록 약간씩 좁혔다. 위선의 길이는 40°44'에서는 정확하고, 이보다 저위도에서는 길어진다. 용도는 시뉴조이달 도법과 같다.

⑥ 구드 단열도법은 몰바이데 도법과 시뉴조이달 도법의 장점을 살려 남북위 약 40° 위선을 기준으로 고위도는 몰바이데 도법, 저위도는 시뉴조이달 도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 도법에서는 대륙의 모양을 바로잡기 위해 각 대륙의 중앙부를 지나는 경선들을 중앙경선으로 선정하고, 바다를 갈라서 펼친 것이 큰 특징이다.

⑦ 에케르트 제4도법은 중앙경선은 직선, 외곽의 두 경선은 원, 그밖의 경선은 모두 등간격의 타원으로 되어 있다. 중앙경선의 길이는 적도의 1/2이다. 양극은 모든 경선이 모이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적도의 1/2인 수평선으로 정해 고위도 지방의 심한 왜곡을 완화시킨 것이 특색이다.

위선은 평행수평선이지만, 정적성을 살리기 위해 그 간격을 극으로 갈수록 약간씩 조정했다. 바다를 단열하지 않고도 모든 대륙을 비교적 바르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근래 세계의 각종 분포도 작성에 많이 사용된다.

한국의 지도

도성도
도성도
조선시대와 그 이전의 지도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고문헌 또는 벽화 등을 통해 당시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는 628년(영류왕 11)에 〈봉역도 封域圖〉라는 지도를 중국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에서도 〈신라구주군현총도 新羅九州郡縣總圖〉 등의 지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 1402년(태종 2)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이다. 이 지도는 투영법이나 경·위선을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마테오 리치가 17세기에 양의현람도(兩儀玄覽圖)라는 세계지도를 들여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사용되던 가장 훌륭한 지도였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잘 나타난 〈천하도 天下圖〉는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원으로 표현된 지도이다.

이 시대에 제작된 우리나라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이회의 〈팔도도 八道圖〉는 보존되어 있지는 않으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 그 윤곽을 짐작할 수 있다. 1463년 정척과 양성지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 는 세종·세조대의 지도발달 성과가 반영된 더 정확해진 우리나라 전도였다.

양성지가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 八道總圖〉는 전국의 유명한 산천을 중심으로 그린 간략한 지도이다. 1740년대의 실학자인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東國地圖〉 는 최초로 축척이 표시된 지도로서 100리를 1척(尺), 10리를 1촌(寸)의 측정단위로 하여 9폭의 지도첩으로 제작되었다.

제1첩은 총도이고, 그밖에는 주로 도별로 편집되어 있으며 산줄기·하천·해로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834년 김정호가 편찬한 〈청구도 靑邱圖〉는 4권으로 된 접는 책자인데, 1~29층에 걸쳐 두만강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나타내고 있다. 1861년 제작된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 는 김정호 자신이 직접 답사하여 수정·보완한 것으로 22층의 접는 책자로 만들어졌으며, 축척이 약 1:162,000이다.

산과 하천을 비롯하여 성지(城池)·진보(鎭堡)·역참(驛站)·창고·봉수 등 각종 내용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도로를 따라 10리 간격으로 점을 찍어 지도 읽기를 돕고 있다. 지도상에 축척이 표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제1층의 첫머리에 좌표와 매방십리(每方十理)라는 글이 표시되어 있어 실질적인 축척이 표시된 셈이며, 그 축척은 청구도와 같이 1:160,000 정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서양 지도학의 직접적인 영향 없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도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근대지도의 발달

경·위선의 좌표를 사용한 우리나라의 지도는 구한국정부에 측지사업(測地事業)을 관장하는 양지아문(量地衙門)이 설치되고 다음해인 1899년 학부 편집국에서 간행한 대한전도가 최초이나, 그후 측지사업이 부진하여 한반도의 지도는 일본인에 의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1:2,000,000의 한국전도를 제작했고,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1895년부터 평판측량으로 1:50,000 지형도 54도엽을 완성했다. 1900년까지 1:200,000 지도를 제작했고, 1914~18년 722도엽에 이르는 1:50,000 전국 지형도를 완성했다. 그밖에도 주요도시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는 1:25,000, 1:10,000, 1:5,000 등의 지형도를 제작했다. 1930년대 이후는 군사적 목적으로 지도제작 사업이 수행되었고 측량 결과는 비밀로 다루어졌다.

1946년부터 미국군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도제작용 항공사진을 촬영하고 1:50,000 지형도를 수정·제작하기 시작해 1954년까지 전국에 걸친 720도엽의 새로운 지도를 완성했다.

지도의 제작현황

한국인에 의한 지도제작은 1961년 국립건설연구소가 건설부 산하기관으로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국토종합개발계획과 더불어 국립건설연구소는 우선 미국군이 제작한 1:50,000 군사지도를 민수용으로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해 1963년까지 남한 전역에 걸쳐 350매의 지도를 완성했다. 1965년에는 한화협동항공사진측량사업(韓和協同航空寫眞測量事業)을 착수하고 항공사진측량법을 도입하여, 1974년까지 남한 전역에 대한 768도엽의 1:25,000 국토기본도를 우선 제작한 후 이를 축소·편집하여 1:50,000 지형도 239도엽도 동시에 완성했다.

1974년에는 국립건설연구소의 측지 및 지도제작 기능을 분리·독립하여 국립지리원으로 개편함과 동시에 대축척기본도인 1:5,000 지도의 제작을 착수하여 1991년말까지 1만 5,000도엽 중 1만 4,206도엽을 제작 완료했다. 새로운 정보를 수록하기 위한 지도 수정주기(修正週期)는 지형의 변화 정도에 따라 다른데, 국립지리원에서는 전국을 도시지역, 농촌지역, 기타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2, 5, 7년 주기로 수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립지리원에서는 1986년 이래 지도의 정확도 향상과 효율적인 제작 및 수정 체계를 확립하고, 국토지형 정보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성을 높이기 위한 전산화사업이 계획 진행중이다. 또한 1992년 컴퓨터 지도의 도식규정을 제정하고 지형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1992~96년에 1:25,000 국토기본도를 입력하고 2000년까지는 1:50,000 지형도 입력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