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아문

양지아문

다른 표기 언어 量地衙門

요약 1898년(광무 2) 전국의 양전 사업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

1898년 7월 6일 칙령 제25호로서 전24조의 '양지아문직원급처무규정'을 반포하여 직제를 마련했다. 양지아문은 양전을 지휘·감독하는 총본부로서 총재관 3명, 부총재관 2명, 기사원 3명, 서기 6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총재관은 경무사·한성판윤·도관찰사를 지휘할 수 있었다. 총재관에는 박정양(朴定陽)·심상훈·이도재(李道宰) 등이 임명되었다. 1899년 4월 양전에 종사할 실무진으로 각 도에 양무감리를 두고 현직군수나 양전에 밝은 사람을 선임하여 측량·양안작성을 책임지게 했다. 각 군에는 양무위원을 두어 감리의 감독을 받게 하는 한편, 양무위원과 학원들이 작성한 양안초안을 재검토하기 위해 아문령으로서 조사위원을 두었다. 기술진으로는 수기사·기수보·견습생을 두었는데, 초대수기사에는 미국인 크럼이 초빙되었다.

2년 6개월 동안 전국 124군에 양전을 시행했지만, 1901년 심한 흉년으로 계획의 1/3만 시행한 채 중단되었다. 1902년 지계아문에 흡수·통합되었고, 다시 1903년 탁지부 양지국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양전·지계사업도 실질적으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