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왕

안장왕

분류 문학 > 인물 > 왕

기본정보

고구려 제22대 왕.
생몰년 : ?-531
재위기간 : 519-531

일반정보

이름은 흥안(興安)으로 아버지는 제21대 문자명왕이다. 안장왕의 시기는 고구려가 5세기에서 6세기 초의 전성기에서 벗어나 쇠퇴기로 접어드는 과도기로 생각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이름을 흥안(興安)이라 하였으며 아버지는 고구려 제21대 문자명왕이다.『삼국사기』권19 고구려본기7 안장왕 즉위년조에서는 이름을 흥안(興安), 문자명왕의 맏아들이라 하였다. 문자명왕 7년(498)에 태자가 되었고 문자명왕 28년(519)에 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안장왕은 보통 고구려가 5세기에서 6세기 초의 전성기를 벗어나는 과도기의 왕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시기에 고구려는 5세기에 확립되었던 “대왕전제체제(大王專制體制)”가 무너지면서 점차 귀족들의 힘이 강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일본서기』권17 계체기 25년 12월조의 기사를 근거로 안장왕이 피살되었음을 말하면서 이것이 6세기 중반 고구려의 외척 간 왕위 계승 분쟁과 그로 인한 대규모 학살 사건을 초래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보았다.(김현숙, 2005)

안장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국내성을 세력 근거지로 하는 국내계 귀족 세력의 동향과 관련지어 파악하기도 한다. 이들은 본래 5세기 장수왕의 평양 천도에 반대했던 세력으로서, 평양 천도 이후에도 국내성 지역에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안장왕 역시 즉위한 후에 국내계 세력과 일정한 정치적 타협을 모색했다고 하였다. 따라서 안장왕의 시해에는 문자명왕대 말에서 안장왕대에 다시 세력을 만회해 가는 국내계 세력의 동향이 하나의 변수가 되었다고 하였다.(임기환, 2004)

안장왕은 재위 12년(531)만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우 보영(寶迎)이 뒤를 이어 고구려 제23대 안원왕(安原王)이 되었다.『삼국사기』권19 고구려본기7 안장왕 13년조(531)에는 여름 5월에 왕이 죽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임기환, 2004,『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김현숙, 2005,『고구려의 영역 지배 방식 연구』, 모시는 사람들

관련원문 및 해석

第二十二 安藏王 [名興安 己亥立 理十二年]
제22 안장왕 [이름은 흥안이다. 기해년에 즉위하여 12년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