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유적

신암리 유적

[ 釜山 新岩里 遺蹟 ]

지역 부산
부산 신암리 유적 출토토기

부산 신암리 유적 출토토기

부산시 서생면 신암리(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1935년 일본인 齊藤忠가 조사하여 알려졌다. 당시의 유적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약 200m 떨어진 저습한 토지에 있었으며 모래질이 많은 흑갈색 토양에서 토기편이 드러났다고 한다. 토기는 비교적 두텁고 곧은 입술에, 둥근밑(丸底)도 1점 나왔다고 하였다.

토기무늬는 짧은 빗금무늬 밑에 생선뼈무늬가 있는 조각도 나오지만 대부분이 삼각형이나 마름모 안에 굵은 빗금이 채워져 있는 삼각집선문이나 능형집선문으로, 둥근밑의 존재와 더불어 전형적인 두도태선문이 출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齊藤忠가 조사한 유적은 두도기의 단일 문화층에 해당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1960년대에 들어와 조사된 지점은 주로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를 출토한다고 보고되었는바, 신암리에 두도기 보다 앞서는 시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8월에는 국립박물관이 정식으로 신암리 유적의 2곳을 발굴하였다. 유적의 주변은 표고 100m 이내의 야산지역으로, 덧무늬토기가 출토된 곳(1지구)은 야산지대가 끝나는 동쪽의 도로변, 마을의 중심에 있으며 바다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빗살무늬토기 유적(2지구)은 도로를 지나 시냇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지점의 낮은 충적지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의 층위는 1지구에서 표토-밝은 갈색의 모래섞인 진흙층(1층)-모래섞인 암갈색 진흙층(2층)-다갈색 진흙층(3층)-부식이 심한 흑갈색 진흙층(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서는 길이 6m 가량의 돌무지 유구가 나타났는데 20~30㎝의 검은 부식토가 깔려 있고 유물도 주로 이곳에서 나온다. 유구의 바깥쪽에는 일종의 배수구로 보이는 폭 60㎝ 정도의 홈이 파져 있다.

유물은 3층의 바닥과 4층에서 출토되는데 덧무늬토기가 가장 많고 덧무늬와 새김무늬가 복합된 종류도 많은데 특히 2줄의 덧띠 아래 번개무늬(雷文) 모티프의 새김무늬를 베푼 것이 특징적이다. 두 평행선 사이를 빗금으로 메운 번개무늬 모티프는 한국 신석기 후기 이후에 나오는 무늬로 알려져 있으나, 남해안 지방에서는 이와 같이 독립적으로 또는 붉은간토기(紅陶)에 베풀어지는 것으로 이른 시기부터 자주 등장한다. 입술새김(口脣刻目) 토기들도 나오며 토기의 안벽은 빗질한 자국이 뚜렷하다. 둥근밑과 납작밑이 다 나오며 납작밑 바닥에는 나무잎 자국이 찍혀있는 경우도 있다.

석기는 주로 화산암계통을 사용하였는데 도끼, 톱니날 등과 여러 점의 몸돌격지가 있다. 숫돌(砥石), 공이(敲石), 갈돌(石棒) 등이 나온다. 토제품에는 대롱모양의 그물추(漁網錘) 1점과 함께, 모양이 명확치 않은 것이 있는데 2지구 출토 예를 보면 인체에 대한 조상(彫像)으로 여겨진다.

2지구는 1지구에서 동쪽으로 50m 떨어진 곳인데 층위는 지표 아래 80~100㎝ 깊이에서 나타나는 황갈색 모래흙의 생토 위에 4개의 모래퇴적층이 거의 수평상으로 쌓여있다. 유물포함층은 4층인데 이 층의 모래는 새까만 색이며, 꽤 많은 유물들이 깔린 듯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있어 원래의 퇴적상태가 아닌 듯이 보인다고 한다. 2지구에서는 두도태선식의 새김무늬와 함께 이른바 ‘지두문토기’라고 불리우는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납작밑은 보이지 않고 뾰족밑과 둥근밑이 있다. 붉은간토기와 토기손잡이도 나온다. 토제품 가운데는 귀걸이와 여인상으로 보이는 토우가 주목된다. 석기로는 돌도끼와 숫돌 및 미완성품들이 있다. 유적의 해당시기에 대해 1지구는 신석기 이른 시기, 2지구는 신석기 중기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신암리 1·2(국립중앙박물관, 1988년·1989년)